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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거나 감사하거나

기자명 한산 스님

출가 전 명상 처음 접했을 때
너무 많은 생각 떠올라 당황
주로 긍정이보다는 투덜이
당연한 것 감사함부터 실천

출가 전 템플스테이에 참여해 명상을 처음 접했던 때가 생각난다. 살면서 한 번도 마음에 관심을 가진 적도,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관찰해본 적도 없었다. 마음을 바라보기 위해 눈을 감았다가 나는 너무 놀라 금방 눈을 떠버리고 말았다. 무작위로 올라오는 많은 생각을 마주하니 머리가 어지럽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머리가 터지지 않고 지금까지 제정신으로 살아온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우리의 마음은 찰나 찰나 무상하게 변한다. 저절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생각 중에 내가 좋아하는 생각이 떠오르면 무의식적으로 잡고 늘어져 생각에 생각을 이어가며 즐긴다. 반대로 내가 싫어하는 생각이 떠오르면 무의식적으로 회피하거나 눌러 생각을 억압하고 가두어 버린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은 홀연히 생긴 생각을 자연스레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물고 늘어지는 성질이 있기에 집착이다. 부처님께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인 사성제(四聖諦)로 말씀하셨다시피 집착은 고통의 원인이다. 

마음을 관찰하다 보면 생각의 많은 부분이 자기 혐오, 타인 비난, 상황 판단, 비교 분별로 계속 이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가 이렇게 형편없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다니’ 하며 놀라거나 스스로 다시 바라보게 될 수도 있다. 생각이란 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접하고 받아들인 온갖 정보와 기억들이 뒤섞여 저절로 일어나기에 내 것이라 주장하거나 나와 동일시할 필요가 없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마음에는 긍정이보다 투덜이가 등장하는 비율이 꽤 높았다. 마음속으로든 소리를 내서든 걸핏하면 불평불만을 토로했다. 투덜이가 등장해 불평불만을 늘여놓기 시작하면 지금 내가 누리는 것을 당연하게 치부하고, 더 원하고, 더 바라고, 더 기대하며 불만족한 상태라는 걸 알아차려야 한다. 왜 이렇게 못마땅한 마음을 내면서 살았을까? 마음이 지금 여기에 있지 않고 감사한 줄 모르는 무지 때문이라는 걸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되었다. 지금 있는 그대로 진실이고 온전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행복이라는 환영을 만들어 만날 수 없는 행복을 찾아 나서게 된다.

내원사에서 출가하고 행자 생활을 하면서 그동안 누리던 것들이 당연한 게 아니라 감사한 것이라는 걸 발견했다. 출가 전에는 자유롭게 살았는데 행자 생활을 시작한 날부터 모든 생활의 패턴이 절 스타일로 바뀌었고 한 방에서 다양한 연령대의 행자 8명이 부대끼며 생활해야 했다. 씻는 시간도 부족해 물을 끼얹는 수준으로 샤워하고, 화장실도 멀리 있어서 자주 가지 못했다. 먹고 싶은 음식을 먹을 수도 없었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하는 등 뭐 하나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행자 생활은 마음대로 하려는 업, 카르마를 닦는 하심에 최적화된 시스템이지만 당시에는 억울하고 힘들었다. 그러면서도 재미있고 신심이 났다. 

따뜻한 물은 샤워기에서 당연히 나오는 것으로 알고 별생각 없이 살았는데 겨울에 물이 얼고,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는 도량에서 살아보니 온수가 나온다는 건 참 감사하고 대단한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결핍의 불편함을 느껴보지 못한 자가 처음부터 가진 것에 대해서 감사하며 산다는 건 희유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고 보면 결핍된 경험이 꼭 나쁘거나 불완전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하루에 몇 번이라도 지금 내 마음이 어떤 것에 주의를 기울이는지, 어떤 마음을 일으키는지 살펴보는 것은 좋은 습관이 될 수 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과 누리는 것이 당연해서 감사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고 더 가지기 위해 구하고 바라는 욕심만 키우는 투덜이로 살고 있는지, 지금 있는 이대로 감사함과 풍요로움을 느끼며 긍정이로 살고 있는지 자주 알아차려 보자. 내 삶을 불만족으로 물들일지, 감사로 물들일지 지금 선택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고 안심이 되는지 모른다. 알면 바꿀 수 있다. 오늘 하루도 감사한 마음을 가득 채워 가볍고 설레는 하루를 살아가길 발원한다.

한산 스님 일상다감사 지도법사 happyhansan@naver.com

[1694호 / 2023년 8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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