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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묘년 하안거 해제법어] 덕숭총림 수덕사 방장 달하우송 스님

기자명 법보
  • 교계
  • 입력 2023.08.29 10:53
  • 호수 1695
  • 댓글 0

추산(秋山)의 전설이 강물처럼 밀려옵니다. 여름은 가고 가을이 울려오니 너도 가고 나도 또 가야지.

‘일격망소지 갱부가수치 동용양고노 부타초연기(一擊忘所知 更不假修治 動容揚古路 不墮悄然機). ‘탁’ 부딪히는 소리에 아는 바 잊어버렸네. 다시 닦을 일이 없네. 움직이니 옛길이요, 망상에 떨어질 일이 없네.‘

납승의 오도송입니다. 납자의 살림살이가 이와 같더라. 산하대지에 크고 작은 온갖 생명들 충만한 허공이, 태양이, 바람이, 흐르는 물이 감싸 안아 서로서로 끝없이 어루만져주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이 몸 사대는 어디서 밀려온 끝 물결일까? 광활하고 신비한 이 몸, 이 몸은 어디서 불어온 끝 파도일까? 알 수 없다, 이~뭘까? 이뭘까 화두로 백천만 번 파도치고 물결쳐서 뒤집어 돌이키고 돌이키자.

부처님의 제일성은 ‘천상천하 유아독존’. 누구를 탓하고 원망할 것인가? 철저하게 내 책임이다. 보고 듣는 이 물건, 이~뭘까? 굴리고 굴려 원아세세 생생처(願我世世 生生處) 언제 어디서나 상어반야 불퇴전(尙於般若 不退轉) 그때그때 알 수 없는 이 물건, 이 반야, 이탈하지 않겠습니다. 관세음보살 대자대비 큰 사랑으로 이 관심, 한 덩어리, ‘응관법계성’ 이 응관, 이~하는 이 자체 끝없이 끝없이 돌이켜 어루만져 돌이켜라.

‘소가 되어도 코 꿸 구멍이 없다.’ 이 한 마디에 경허스님은 확철대오! 의심이 몰록 사라졌습니다. 돈각삼천 시아가(頓覺三千 是我家) 삼천대천세계가 ‘이것’이라고 통쾌하게 선언하셨습니다. 이 일이 있는 줄 아는 사람은 경허 스님 오도송에 다시 의심의 여지가 없어졌습니다. 평생 양식이 해결되었습니다.

경허 스님 다례일에 원담 방장스님께 물었습니다. “경허 스님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십시오.” “경허 스님? 경허 스님 이름만 들어도 성불이다. ‘거울(鏡) 빌(虛)’ 밝은 거울이 비어졌나?” 다그쳐 되묻는 그 시절 방장스님은 언제나 절절했습니다. 경허! 납자 양심의 충격입니다.

하안거 결제해놓고 경허스님 다례일이 돌아오면 산중 노승들은 벽초 노스님이 경허 스님 다례 모시던 모습을 법문해줍니다. 양식이 어려운 그 시절 흰 쌀밥으로 만발공양 하는 날 잡초밭에 헤매던 신세가 경허 스님을 친견하는 날 연암산 정상에서는 산 아래 길이 훤하게 다 보입니다.

야인무사태평가(野人無事太平歌) 들사람이 일이 없어 태평가를 노래하네. 훤하게 아는 길 따라가니, 짐이 무거워도 쉬어쉬어 태평가로다. 여름하늘 뇌성벽력 우레 같은 경허 스님!

경허라는 말만 들어도 순식간에 공부에 탄력이 붙는 되비춰주는 거울, 경허! 되비춰주는 이 경대 거울이 비어 흔적이 없어졌다하더라도 복시하물(復是何物) 다시 이~뭘까?

경허 스님 다례는 여름 하안거 이 공부 법문의 절정입니다.

‘외외낙낙 적나나 독보건곤 수반아(巍巍落落 赤裸裸 獨步乾坤 誰伴我). 한 물건도 붙을 수 없는 이글이글 타는 이 물건 하늘땅 녹아져 견줄 데가 없네.’

코가 꿰이면 끌려가야 합니다.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이 끌려가야 합니다. 만물의 영장 사람이 되었다 하더라도 생사가 붙을 수 없는 이뭘까?가 기본 첫 단추 업장이 좌우할 수 없는 기본 화두 관세음보살 부르는 이 물건, 천상천하에 유일무이 이 물건 돌이켜 굴리고 굴려 돌이켜라. 통쾌하다. 숨이 쉬어진다. 영혼이 흐뭇해진다. 화두가 없으면 죽은 목숨이다. 살았다고 할 수 있겠나? ‘소가 되어도 코 꿸 구멍이 없다.’ 이 법문을 지금 만났네! 언제 어디서나 어떤 처지에서도 이~뭘까?

때가 되면 바다가 넓은 가슴으로 받아줍니다. 바다가 감당이 될 때 바다와 하나가 되어보십시오. 둥실둥실 같이 어울려보십시오. 부드러워 잘 익은 모성으로 세상을 안아주십시오. 큰 파도 작은 물결이 반야의 가지가지 ‘반(般)’ 만고에 둘이 아니니 반야의 같을 ‘야(若)’ 모두가 하나로 돌아갑니다.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니 하나는 이~뭘까? 덕숭산 화두입니다.

육지보다 큰 바다, 바다보다 큰 허공, 허공이 녹아진 이 한 생각. 끝 파도가 묘수더라! 숨 쉬고 있는 이 물건, 숨길 따라 같이 돌아가니 끝 파도. 목탁소리에 공부가 다 있네. 초점이요, 센터요, 힘입니다. 목탁소리 아닌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꽉 차있는 적정삼매(寂靜三昧) 이 고요, 과연 생각 앞이네. 절에 가거든 목탁소리를 들어라. 바다에 가거든 파도소리를 들어라.

이 대신주 이 대명주 이 무상주 이 무등등주. 부처님의 이 친설 법문, 부처님의 친설법문 은혜 속에 얼굴마다 흐뭇합니다. 세상만사 가지가지 ‘반(般)’, 둘일 수 없어 같을 ‘야(若)’, 반야는 전체요, 하나요, 필경에 이~뭘까?

창틈에 들어온 하늘, 끝 파도 배경은 만경창파 보리살타가 의지하는 반야, 삼세제불이 의지하는 반야! 필경 숨쉬고 웃어주고 손잡아주고 놀기도 하고 일도 하고 바다의 비밀은 끝 파도에 다 있네. 물결이 바다요, 파도가 물이더라. 반야는 둘일 수 없는 시심마(是甚麽)

산하대지가 성성이요, 알 수 없으니 적적이로다. ‘마하’라고 소리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네. ‘바라밀’ 미소가 저절로 나오네. 아름답고 다양한 세상 ‘반(般)’ 둘일 수 없는 푹신 쉬어진 같을 ‘야(若)’ 언제나 항상 함께 어울려 돌아가고 있는 반야 바로 알 수 없는 화두, 이놈이네! 부처님이 날마다 날마다 일러주는 반야심경은 이뭘까 이 자체에 퐁당 빠지게 해주는 부처님의 절절한 친설 법문입니다.

만공스님이 오대산을 참배하고 돌아올 때 만공 스님께서는 발밑의 돌멩이 하나를 집어 배웅 나오신 한암 스님 앞에 던졌습니다. 한암 스님은 그 돌멩이를 집어 개울에 던졌습니다. 묻습니다. 그대라면 만공스님의 이 돌멩이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해제 만행 시에 부지기수로 만나는 만공스님의 이 돌멩이를 그대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원아세세 생생처 상어반야 불퇴전 여피본사 용맹지 여피사나 대각과(願我世世 生生處 尙於般若 不退轉 如彼本師 勇猛智 如彼舍那 大覺果). 언제 어디서나 이 반야 이뭘까? 부처님의 용맹지, 부처님의 대각의 이 열매 이~뭘까?’

[1695호 / 2023년 9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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