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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자살에 대한 오해

기자명 법보신문

자살은 고통의 소멸이 아니라
더 큰 업장 속으로 빠져드는 것

“자살은 해방행위,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이며 마지막 형태의 자유” 이렇게 말하는 프랑스의 장 아메리처럼 어려운 처지에 빠지면 자살충동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 자살을 찬양하는 『자유죽음론』을 1976년 쓴 뒤 2년만에 자살한 장 아메리에게 묻고 싶은 말이 있다.

“지금, 그런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가?”
어려운 처지로부터 벗어나려는 생각에 자살을 감행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커다란 착각이다. 자살한다고 해서 자신이 저질렀던 어려움, 혹은 자신에게 닥쳤던 곤란으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자기가 일시적으로 어려움에 처했다고 해서 마치 자살이 그런 곤란을 일거에 해결해 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생명을 끊는 문제와 연결시켜서는 곤란하다. 지금 자신의 어려운 처지와 자살이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는가?
W양은 직장동료 애인이 있었다. 그에게 애인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두 번 다시 만나지 않으려 했지만, 마음이 그로부터 떠나기는커녕 그에 대한 생각만 더해갔다. 결국 그녀는 어떤 식으로 죽을까 오직 죽는 방법만 생각해 충동적으로 자살을 시도했다.

그녀가 병원 침대에서 눈을 뜬 것은 46시간 뒤였다. 가사상태에서 그녀는 이 삶에서 도저히 맛볼 수 없는 고통을 당했다. 무섭다는 말로 표현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불타고 있는 불 속에 몸이 떠 있어서 마치 전자렌지 속에서 타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자살이 미수로 끝난 뒤 다음같이 말했다. “나의 경우 사실 자살하지 않으면 안 될 만한 이유는 없었다. 다만 그에게 죽겠다고 한 말이 계기가 되어 그 뒤로는 오로지 죽을 생각만 하게 되었다. 지금은 자살이 미수로 끝난 것을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의사의 목소리를 듣고 살아있는 자신을 다시 보았을 때, ‘아!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살행위에 의해 일시적으로 겪은 사후세계의 무서움과 고통을 생각해 보면, 살아있을 때 고생 따위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고 그녀는 증언한다. 죽는 것 보다 제대로 사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다.
자살해 보았자 편할 게 전혀 없다. 그녀는 앞으로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자살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자살을 감행하기 전에 그녀가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평소에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은 자살할 이유가 없음을 안다. 왜냐하면 어려움에 봉착해 자살한다고 해서 죽은 뒤 그 문제가 해결될 리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누구나 경험을 한 바 있듯이, 어려운 문제에 봉착해 그로부터 도망치려고 하면 할수록 어려움은 더 한층 커지지 않았던가.
자살한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티베트 달라이라마의 스승 딜고 켄체 린포체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사람이 자살했을 때 부정적인 업을 따르는 것 이외에 아무 선택의 여지가 없으며 해로운 악령이 달려들어 그의 생명력을 점유하는 것은 당연하다.”

사람들은 자살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지 아무것도 모르는 막연한 상태에서 자살의 유혹을 받게 된다. 자살을 하면 자기 생명만 끊어져 존재의 상태가 변화될 뿐 결코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갈 수 없다. 자살은 일종의 도피로 성숙한 인간이 취할 행동이 못된다. 자살한다고 해서 그런 어려움이 해결되지도 않을 뿐 아니라 그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도 없다.

인생은 ‘고통의 바다’라고 부처님도 말씀하셨듯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통을 받기 마련이다. 자기가 일시적으로 어려움에 처했다 해서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자살을 감행하는 것은 무모함, 혹은 어리석음 그 자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한림대 철학과 오진탁 교수 jtoh@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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