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선운사의 ‘동(東)불암’을 ‘동(銅)불암’으로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고창학연구회(사료조사위원 오강석)가 8월29일 고창 선운사 마애불로 잘 알려진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東佛庵址 磨崖如來坐像)’의 ‘동(東·동녘 동)’을 ‘동(銅·구리 동)’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창 선운사 도솔암 서쪽 50m 거리에 있는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이하 마애상)’은 높이 15.7미터 무릎 너비 8.5미터의 규모다. 14세기 고려 공민왕 때 얼굴 쪽에 구리 주물을 씌워 동불(銅佛)이 됐고 눈비를 맞지 않도록 얼굴 위쪽에 청자기와를 올린 보호각을 설치, 불상 아래에 하도솔암(下兜率庵)을 지어 동불과 암자를 아울러 동불암(銅佛庵)이라 불렸다. 1648년(인조 26)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당시 태풍으로 얼굴에 씌운 구리주물이 떨어져 파괴됐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 당시 손화중이 이끄는 동학도들이 마애상 복장 비결을 꺼내 잠시 주목을 받기도 했지만 이내 세상 사람들에게 그 존재가 잊혀졌다. 그러다가 1969년 5월28일 한 나무꾼이 마애상을 발견해 역사의 전면에 다시 등장했지만 신고를 접수한 담당자가 동불암의 동(銅)을 음이 같은 동(東)으로 오기한 것으로 고창학연구회는 주장했다.
마애상은 신고 직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가 됐다. 1994년 ‘고창 선운사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高敞 禪雲寺 東佛庵址 磨崖如來坐像)’ 명칭으로 보물로 지정됐지만 ‘송사지’ ‘전선원무장읍지’ ‘무장현읍지’ ‘무장읍지’ ‘전라도읍지’ 권9의 ‘전선무장지’ 등 여러 문헌에서 동불(銅佛)이라고 명시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등재 과정에서도 문헌조사를 실시하지 않아 오류를 수정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창학연구회는 마애상 얼굴 부위에 구리 주물을 씌운 직접 증거를 찾고자 지난 7월 3회에 걸쳐 정밀 드론촬영을 실시했다. 분석 결과 △첫째, 얼굴 부위에 집중된 20개의 구멍들이 가림막의 나무기둥 구멍에 비해 크기가 현저히 작아 구리 주물을 고정시키기 위한 철제를 꽂았던 것으로 보이며 △둘째, 1995년 부여문화재연구소의 실측조사 때 발견된 쇠못과 쇳덩이 들의 크기로 보아 안면부의 구멍들과 관련성이 깊다고 판단되며 △셋째, 안면부의 구멍들이 좌우 대칭적으로 뚫려 있어 동판의 무게 중심을 잡기 위한 안배로 보인다는 점 △넷째, 얼굴 부위 암석 변색 부분이 구리 부착으로 인한 산화의 흔적일 가능성이 있어 추후 관련 기관에 조사를 의뢰 필요가 있다는 점 등을 증거로 제시했다.
최선주 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이자 중앙대 예술대학원 객원교수는 “고려말 도솔암 두건형 금동지장보살이 조성된 후에 그 영향을 받아 마애불 얼굴 부분에 청동주물을 만들어 걸었던 듯하다”며 “보물의 관리 주체인 지자체에서 전문 연구자들의 학술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정확한 고증을 거쳐 후속 조치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박건태 기자 pureway@beopbo.com
[1696호 / 2023년 9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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