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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도, 사람도 ‘완전자율주행’ 

기자명 성원 스님
  • 법보시론
  • 입력 2023.09.05 10:15
  • 수정 2023.09.11 13:56
  • 호수 1695
  • 댓글 0

오랜만에 연락이 닿았다.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다 자꾸 눈이 침침한 것이 원시가 오는 것 같다고 한다. 우리의 눈이 원시가 되는 그해가 인생의 절반을 산 날이라고 했다. 원시가 되면 단지 시야만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삶의 집착에서 조금 멀어지라고 몸이 우리에게 충고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어린 시절부터 지식도 사람도 모든 것이 가까워지기만을 갈구한다. 무엇이든 자기 가까이 더 가까이 끌어당겨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인생의 본질인 양 끌어당기기만 한다. 하지만 시력에 원시 현상이 나타날 때쯤이면 이제부터 서서히 사람도 지식도 조금씩 멀리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면서 삶의 여유를, 인생 후반의 낭만을 찾아야 한다.

예전에 노스님께서 한랭지옥이 딴 것이 아니라 자꾸 자기에게 뭘 끌어들이려는 욕심이 빚어낸 세상이라고 하셨다. 당시에는 약간 궤변쯤으로 들렸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와 생각해보니 맞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욕심으로 각자가 자기에게로 무엇을 끌어들이려고 하다 보면 사회는 냉랭하고 차갑기 마련이다. 자기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고 서로 나누며 사는 사회야말로 따스한 정이 흐르는 정토세상 아니겠는가.

46세에 원시가 느껴졌다고 하여 삶의 절반이라고 하니 그러면 92세까지 사는 거냐고 놀라워했다. 특별한 사고나 병에 걸리지 않으면 그럴 거라고 했더니 자신은 75세까지 살면 된다고 했다. 아쉽다고 하니 스님은 도무지 몇 살까지 살고 싶냐고 되물었다. 할 수만 있다면 자율주행 차를 마음껏 타볼 때까지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실 죽음을 공포로 느끼거나 거부하려고 애쓴 적은 크게 없다. 살아가는 흔적에서 죽음이 처연하게 느껴지지만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가끔 오래 살고 싶을 때가 있다. 죽음이 거북스러울 때는 다름 아니라 발전하는 미래의 과학 세상을 직접 보지 못한다는 아쉬움 때문에 조금은 오래 살고 싶다. 그중에 엄청나게 기대되는 것이 자율주행 차량이다. 과학의 진보에 관심을 많이 갖는 것이 사실이지만 자율주행은 우리들의 일상을 완전히 바꾸어 새로운 세상을 펼쳐 줄 거라는 생각에 늘 가슴 설레며 기다린다.

며칠 전 일론 머스크가 테슬라로 완전자율주행 ‘FSD(Full Self Driving) V12’를 구현했다고 한다. 관련 유튜브를 찾아봤다. 단 한 대로 40분 주행해 완전히 성공한 영상은 그렇게 큰 감동을 전해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조금만 상상의 나래를 펴, 이제 곧 온 거리를 자율주행 차량이 줄지어 다닐 거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정말 너무나 가슴이 설렌다. 혼자 좋아 주변 사람들에게 얘기했더니 반응이 너무 싸했다. 마치 내게 뭘 가지고 왜 저토록 흥분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이다. 혼자만 이상한가?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오래 살고 싶어 할까? 딱히 답하기가 쉽지 않다. 각자 다르겠지만 오래 살고 싶은 이유를 탐색하다 보면 결국 스스로가 가진 집착에 귀결한다는 것을 곧 알 수 있다. 가까이는 부모와 자식, 일가친지에 대한 집착과 일생을 두고 쌓아 올린 자산이 결국은 홀연히 떠나는 인생의 자유여행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그냥 취미같이 즐길 뿐이라고 하지만 애정은 금방 탐욕심으로 탈바꿈해서 우리를 괴롭히게 된다. 

산술적으로 몇 살을 산다는 것이 크게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집착하고 탐욕하는 대상을 잘 살펴봐야 할 것이다. 불교의 해탈은 대자유, 영원한 자유의 다른 표현이다. 삶의 삼독은 탐진치라고 한다. 몸에 독소가 가득한 상태로는 행복을 논할 수 없다. 우선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우리 삶의 독소를 제거해야 한다. 출가해 무소유를 지향하면서 집착의 대상이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갈망으로 대치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진정한 무소유는 물질적 소유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꾸 자율주행 세상에 과하게 집착하다 보니 자율신경이 먼저 혼란을 일으켰을까? 그래도 스스로 굴러가는 세상이 자꾸 궁금해진다.

성원 스님 조계종미래본부 사무총장 sw0808@yahoo.com

[1695호 / 2023년 9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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