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 시대 명안종사 강설로 만나는 ‘진고불’의 정수

  • 불서
  • 입력 2023.09.05 14:40
  • 호수 1695
  • 댓글 0

조주록 강설(전 2권)
학산대원 대종사 글 / 불광출판사 / 696쪽(상)·816쪽(하)  / 각 6만원

6년간 오등선원서 강설한 ‘조주록’ 집성…직접 착어·송 더해
1200년 전 일세 풍미한 조주 스님의 고준한 선 세계 보여줘

 

조주종심(趙州從諗, 778~897) 스님은 1500여년 중국 선종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임제 스님이 고함[喝]으로, 덕산 스님이 몽둥이[棒]로 사람들의 무명을 타파했다면 조주 스님은 언구로 죽이고 살리는 살활자재(殺活自在)의 묘용을 발휘한 선사로 유명하다.

‘고불(古佛)’로 불렸던 조주 스님은 “원래의 부처(元古佛)도 진짜 부처(眞古佛)인 조주 스님에게 고개 숙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선의 경지가 출중했다. 지금도 선방 수좌들의 바랑 한 귀퉁이를 차지하는 공안집인 ‘벽암록’ 100칙 중 조주 스님 관련 공안이 12칙이 실려 있으며, ‘무문관’ 48칙 중에도 7칙이나 포함돼 있다.

조주 스님은 산동성 조주(曹州) 출신으로 어려서 남전보원(748~834) 스님의 제자가 됐다. 두 스님의 첫 만남은 가장 드라마틱한 선종사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10대 어린 사미가 누워서 쉬고 있던 남전 스님을 찾아왔다. 스님이 사미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서상원(瑞像院)에서 왔습니다.” “그럼 서상(瑞像)은 보았는가?” 

서상은 상서로운 모습으로 인도 우전왕이 만들었다는 전설상의 첫 불상이다. “서상은 보지 못했습니다만 누워 계시는 여래는 보았습니다.”

누웠던 남전 스님이 일어나며 물었다. “그대는 주인이 있는 사미냐? 주인이 없는 사미냐?” “주인이 있는 사미입니다.” “누가 너의 주인이냐?” “초봄이라 매우 춥사오니 스님께서는 존체(尊體) 기거하심에 만복하옵소서.”

이제부터는 은사로 모시겠다는 의미였다. 남전 스님은 유나를 불러 말했다. “이 사미에게 특별한 자리를 내어주도록 하라.”
 

학산대원 대종사의 ‘조주록 강설은 1200년 전 일세를 풍미했던 ‘고불’의 진면목과 논리를 넘어선 고준한 선의 ‘길’을 보여준다. [불광출판사]
학산대원 대종사의 ‘조주록 강설은 1200년 전 일세를 풍미했던 ‘고불’의 진면목과 논리를 넘어선 고준한 선의 ‘길’을 보여준다. [불광출판사]

조주 스님은 남전 스님에게 회상에서 대오했으며, 은사가 입적할 때까지 40여년을 곁에서 모셨다. 스님이 만행에 나선 것은 60세 때였다. “일곱 살 아이라도 나보다 나으면 그에게 물을 것이고, 백살 노인이라도 나보다 못하면 그를 가르치리라”라는 말과 함께 백장, 위산, 임제, 약산, 도오, 운거 등 각지의 선사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선문답을 주고받았다. 그렇게 20여년을 보내고 80세 되던 해 하북성 조주(趙州) 관음원에 정착했고, 120세로 입적할 때까지 40년을 청빈하게 지내며 선풍(禪風)을 크게 일으켰다.

스님은 자신을 찾아오는 수많은 이들을 만나 대화를 주고받으며 번뜩이는 선기로 그들을 일깨웠다. 스님의 일거수일투족이 공안이 됐다. 1700공안 중 선종 제1의 공안으로 꼽히는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는 ‘구자무불성(狗子無佛性)’을 비롯해 ‘남전참묘(南泉斬猫)’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끽다거(喫茶去)’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 등 숱한 고칙(古則)이 오늘날까지 간화선을 대표하는 공안(公案)으로 자리 잡고 있다.

‘조주록’에는 이들 공안과 그 기연이 담긴 조주 선사의 어록 525칙이 실렸다. 이 고칙(古則)들은 간화선의 정수로서 그 이치를 확연히 깨친다면 온갖 번뇌망상을 여의고 격외가를 부를 수 있음은 자명하다.

오늘날 한국 선을 대표하는 학산대원(鶴山大元, 1942~) 대종사는 ‘조주록 강설’을 통해 정해진 ‘답’이 아니라 가야할 ‘길’을 일러준다. 대원 스님은 경북 상주 출신으로 14세에 상주 남장사로 출가했다. 40여년간 제방 선지식들을 참방하며 수행에 매진해 큰 깨달음을 얻고 고암상언(1899~1988) 스님의 법을 이었다. 1995년 오등선원 개원을 시작으로 선법을 펼치기 시작한 스님은 그동안 꾸준히 선어록을 강설해 선의 바른 길을 제시해왔다. ‘조주록’은 2016년 첫 강설을 시작으로 2022년까지 장장 6년간 진행됐다.

당시 ‘조주록’ 강설을 시작하면서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바로 보고 바로 알아차리면 번거롭게 옛 조사의 어록을 강설해야 할 일이 없지만, 실상을 바로 보고 바로 알지 못하는 중생들을 위해 수미산 같은 허물을 짊어지고 시작하노라.” 이 책은 대원 스님의 고구정녕한 법문을 엮은 것으로, 조주 선사의 어록과 이와 관련된 ‘선종송고연주’ ‘선문염송’ ‘염송설화’ 내용, 거기에 대원 스님이 직접 착어와 송을 더했다.

선은 예로부터 최상승의 길로 여겨져 왔다. 아무리 오랜 세월 칠흑 같았더라도 등불을 켜면 바로 환해지듯 억겁 무명에 휩싸여 살았어도 깨달음을 이루면 걸림 없는 자유의 삶을 살 수 있다. 선어록은 당장 알아듣지 못해도 깨달음의 싹을 틔우고, 지혜를 닦아나가는 거울이 될 수있다. 대원 스님의 ‘조주록 강설’은 깨달음의 씨앗이고 진리의 거울이라 할 수 있다. 우리시대 명안종사의 귀한 강설은 1200년 전 일세를 풍미했던 ‘고불’의 진면목과 논리를 넘어서는 고준한 선의 ‘길’을 보여준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695호 / 2023년 9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