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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조성된 ‘사천왕상’ 8건 보물 지정 예고

  • 성보
  • 입력 2023.09.07 23:09
  • 수정 2023.09.08 14:52
  • 호수 1696
  • 댓글 0

문화재청, 화엄사·법주사·직지사·마곡사 등
양란 이후 재건불사·구성 완결성 등 기준
“보존 불리한 외부환경 극복 계기 될 것”

여수 흥국사 사천왕상. 왼쪽부터 차례로 '북방다문천왕'·'동방지국천왕'·'남방증장천왕'·'서방광목천왕'.[문화재청]
여수 흥국사 사천왕상. 왼쪽부터 차례로 '북방다문천왕'·'동방지국천왕'·'남방증장천왕'·'서방광목천왕'.[문화재청]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조선 불교중흥 불사를 상징하는 ‘사천왕상(四天王像)’ 8건이 보물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청장 최응천)이 9월7일 17세기 조성된 구례 화엄사, 여수 흥국사, 보은 법주사, 김천 직지사, 고흥 능가사, 영광 불갑사, 홍천 수타사, 공주 마곡사 소재 사천왕상 8건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사천왕(동방지국천왕, 서방광목천왕, 남방증장천왕, 북방다문천왕)은 수미산 중턱 동서남북 네 방위에서 불국토를 지키는 수호신이다. 사천왕상은 일주문을 지나 대웅전 진입 전 위치한 천왕문에 배치된다. 갑옷을 입고 보검 등 지물(持物·부처나 보살, 천왕 등이 손에 지니고 있는 물건)을 들고 있으며 눈을 부릅뜨거나 입을 벌려 악귀 등으로부터 사찰을 지키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사천왕상은 ‘장흥 보림사 목조사천왕상’ 등 총 3건의 보물을 포함해 현재 전국에서 약 20여 건이 전해진다. 주로 17~18세기 전반에 조성됐고 이후 불화 등의 형태로 그려졌다. 전란 이후 사찰의 재건과정에서 불교 부흥이라는 소명을 담아 17세기에 집중적으로 조성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문화재청은 “사천왕상은 중요한 조각 작품임에도 야외에 노출돼 보존관리가 쉽지 않았다”며 “이번 일괄 지정으로 보존 환경이 열악한 문화유산에 대해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이번 보물로 지정 예고된 사천왕상 기준은 △17세기 중엽 이전 작품으로 전란 이후 재건불사 및 불교 중흥과 관련해 역사적으로 중요한 작품 △17세기 후반 작품으로 그 구성이 완전하고, 전하는 과정에서 변형이나 왜곡이 적으며, 시대성 또는 작가의 유파성을 잘 반영하고 있는 작품 중 가장 대표성 있는 것으로 선정했다.

구례 화엄사 소조사천왕상 중 '북방다문천왕'·'동방지국천왕'.[문화재청]
구례 화엄사 소조사천왕상 중 '북방다문천왕'·'동방지국천왕'.[문화재청]
구례 화엄사 소조사천왕상 중 '남방증장천왕'·'서방광목천왕'.[문화재청]
구례 화엄사 소조사천왕상 중 '남방증장천왕'·'서방광목천왕'.[문화재청]

‘구례 화엄사 소조사천왕상(求禮 華嚴寺 塑造四天王像)’과 ‘여수 흥국사 소조사천왕상(麗水 興國寺 塑造四天王像)’은 전란 이후 벽암각성(碧巖覺性, 1575~1660)과 계특(戒特)대사에 의해 사찰이 복구되는 과정에서 조성됐다. 두 사천왕상 모두 의자에 걸터앉은 모습이며 전체적으로 중량감 넘치는 조형 감각, 사각형의 주름진 큰 얼굴, 넓고 두텁게 표현된 콧방울 등은 같은 지역 내 17세기 전반 양식을 반영한다. 이는 보물 ‘순천 송광사 소조사천왕상’을 제작한 조각승(彫刻僧) 응원(應元)과 그 제자 인균(印均)으로 이어지는 유파와 관련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두 사천왕상 모두 발밑에 악귀 등 생령(生靈·살아 있는 사람의 영혼)이 없는 게 특징이다.

보은 법주사 소조사천왕상. 차례로 '북방다문천왕'·'동방지국천왕'·'남방증장천왕'·'서방광목천왕'.[문화재청]
보은 법주사 소조사천왕상. 차례로 '북방다문천왕'·'동방지국천왕'·'남방증장천왕'·'서방광목천왕'.[문화재청]

‘보은 법주사 소조사천왕상(報恩 法住寺 塑造四天王像)’ 역시 전란 이후 벽암각성에 의해 주요 전각이 순차적으로 중창되는 과정에서 조성됐다. 사천왕상 양식과 목재의 연륜연대분석(나이테연대분석) 결과 17세기 중엽에 완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에 현전하는 사천왕상 중 매우 드문 입상이자 5.7m에 이르는 최대 크기라는 점에서 조형적 가치가 있다. 발밑 생령으로 청나라 관리와 조선 관리를 등장시켰는데 이는 1636년 병자호란의 치욕을 극복하고 조선의 탐관오리들에게 종교적 감계(鑑戒·지난 잘못을 거울삼아 하는 훈계)와 교훈을 주고자 만든 최초의 조각이라는 점에서 사회사적으로도 의의가 있다.

김천 직지사 소조사천왕상 중 '북방다문천왕'·'동방지국천왕'.[문화재청]
김천 직지사 소조사천왕상 중 '북방다문천왕'·'동방지국천왕'.[문화재청]
김천 직지사 소조사천왕상 중 '남방증장천왕'·'서방광목천왕'.[문화재청]
김천 직지사 소조사천왕상 중 '남방증장천왕'·'서방광목천왕'.[문화재청]

‘김천 직지사 소조사천왕상(金泉 直指寺 塑造四天王像)’은 조선 후기 사천왕상으로는 드물게 복장(腹藏·불상과 불화 내부에 안치하는 종교적 물목) 발원문이 발견됐다. 이를 통해 1665년 완주 송광사를 근거로 활동하던 단응(端應)과 탁밀(卓密), 경원(敬遠), 사원(思遠), 법청(法淸) 등 그의 유파 조각승을 초청해 조성된 것이 밝혀졌다. 방위가 적힌 묵서도 함께 발견돼 그동안 논란이 분분했던 사천왕상의 각 천왕별 방위도 확정시킬 수 있었다. 여기서 발견된 발원문은 호남과 영남 조각승들의 불상 제작과 교류 활동을 알 수 있어 조선 후기 불교조각사 연구에 크게 기여했다.

고흥 능가사 목조사천왕상 중 '동방지국천왕'·'북방다문천왕'.[문화재청]
고흥 능가사 목조사천왕상 중 '동방지국천왕'·'북방다문천왕'.[문화재청]
고흥 능가사 목조사천왕상 중 '서방광목천왕'·'남방증장천왕'.[문화재청]
고흥 능가사 목조사천왕상 중 '서방광목천왕'·'남방증장천왕'.[문화재청]

‘고흥 능가사 목조사천왕상(高興 楞伽寺 木造四天王像)’은 17세기에 제작된 가장 이른 시기의 목조사천왕상으로 같은 지역의 화엄사, 흥국사 등의 사천왕상과는 전혀 다른 계통의 조각 양식을 띤다. 천왕문 해체 복원 시 발견된 상량문, 복장발원문 등을 종합해 볼 때 1666년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나 조각승은 밝혀지지 않았다. 천왕문의 좌향인 북향을 의식하여 동방지국천왕과 북방다문천왕의 순서와 남방증장천왕과 서방광목천왕의 순서를 바꾸어 배치했다. 능가사 사천왕상은 개성적인 신체 비례, 곧은 자세에 정면을 향한 무표정한 얼굴, 단순하고 평면적인 보관 등이 보이는데 이는 소조상에서 목조상으로 전환되는 과도기적 특징을 보여준다. 가늘고 야윈 사천왕상의 특징은 당시 궁핍한 백성들의 삶을 반영한 것으로 사천왕상 표현이 비교적 자유로웠던 것으로 이해될 여지가 있어 연구 가치가 크다.

영광 불갑사 목조사천왕상 중 '북방다문천왕'·'동방지국천왕'.[문화재청]
영광 불갑사 목조사천왕상 중 '북방다문천왕'·'동방지국천왕'.[문화재청]
영광 불갑사 목조사천왕상 중 '남방증장천왕'·'서방광목천왕'.[문화재청]
영광 불갑사 목조사천왕상 중 '남방증장천왕'·'서방광목천왕'.[문화재청]

‘영광 불갑사 목조사천왕상(靈光 佛甲寺 木造四天王像)’은 원래 전라북도 무장 소요산 연기사에서 17세기 후반 제작됐다. 연기사가 폐사되면서 설두선사(雪竇禪師)가 1876년 영광 불갑사로 이안했다. 여러 편의 나무 조각을 접목하여 전체적인 형태를 만들고 머리카락이나 세부장식, 양감이 필요한 부분은 흙으로 정교하게 제작해 소조상에서 목조상으로 전환되는 과도기적 특징을 보인다. 또 17세기 전반 중량감 있는 당당한 체격을 갖춘 사천왕에 비해 몸집이 정제되어 균형 잡힌 장신형으로 조형감각이 변모됐다. 좁고 높은 화형 보관을 쓰고 있는 등 17세기 후반 우수한 조각적·예술적 양식을 가졌으며 원형의 손상과 큰 변형 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이미 보물로 지정된 ‘영광 불갑사 불복장 전적’ 중 사천왕상에서 나온 복장전적을 사천왕상과 함께 보물로 지정·관리하기 위해 당해 목록에서 해제하고 새롭게 ‘영광 불갑사 목조사천왕상 및 복장전적(靈光 佛甲寺 木造四天王像 및 腹藏典籍)’이라는 명칭으로 지정 예고했다.

홍천 수타사 소조사천왕상 중 '동방지국천왕'·'남방증장천왕'.[문화재청]
홍천 수타사 소조사천왕상 중 '동방지국천왕'·'남방증장천왕'.[문화재청]
홍천 수타사 소조사천왕상 중 '서방광목천왕'·'북방다문천왕'.[문화재청]
홍천 수타사 소조사천왕상 중 '서방광목천왕'·'북방다문천왕'.[문화재청]

‘홍천 수타사 소조사천왕상(洪川 壽陀寺 塑造四天王像)’은 봉황문이라는 현판이 달린 천왕문 안에 있다. 우리나라 최북단에 위치하고 강원도에 현전하는 유일한 사천왕상이라는 점에서 희소성이 있고 조각사적으로도 중요하다. 또 사적기를 통해 1676년 승려 여담(汝湛)에 의해 조성됐음이 명확히 확인된 17세기 후반 기준작으로 조선 후기 사천왕상의 형식과 양식 변천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규모는 작지만 현전 사천왕상 중 세부 표현이 가장 뛰어나고 섬세하다.

공주 마곡사 소조사천왕상 중 '북방다문천왕'·'동방지국천왕'.[문화재청]
공주 마곡사 소조사천왕상 중 '북방다문천왕'·'동방지국천왕'.[문화재청]
공주 마곡사 소조사천왕상 중 '남방증장천왕'·'서방광목천왕'.[문화재청]
공주 마곡사 소조사천왕상 중 '남방증장천왕'·'서방광목천왕'.[문화재청]

‘공주 마곡사 소조사천왕상(公州 麻谷寺 塑造四天王像)’은 동방지국천왕의 내부에 남겨진 묵서를 통해 1683년 조성됐음이 명확히 확인된 작품으로 사천왕상 편년 연구 기준이 된다. 양식적 특징을 비추어 볼 때 마곡사 사천왕상은 17세기의 마지막 단계에 해당되는 소조기법을 이용해 단응 유파가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직지사, 마곡사를 거쳐 예천 용문사 소조사천왕상으로 이어지는 단응계 사천왕상 양식의 변화와 흐름을 연구할 수 있어 17세기 사천왕 도상 및 조각 유파의 활동범위와 동향, 불상의 제작 방식과 제작 순서 등 다양한 방면에서 학술적 가치가 있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보물로 지정 예고된 ‘사천왕상’ 등에 대해 30일간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 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박건태 기자 pureway@beopbo.com

[1696호 / 2023년 9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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