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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없이 엄하고, 한없이 따스했던 ‘다면불 녹원 스님’

  • 불서
  • 입력 2023.09.11 19:03
  • 수정 2023.09.13 10:46
  • 호수 1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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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에 가득한 깨달음 영허녹원
유철주 지음 / 조계종출판사 / 464쪽 / 3만2000원

영허당 녹원대종사(1928~2017).
영허당 녹원대종사(1928~2017).

영허당 녹원대종사(1928~2017)의 일생 행적은 한국불교 근현대사와 맥을 함께 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1928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난 스님은 13세 되던 1940년 직지사로 출가해 강원을 졸업하고 서울 안국동 중앙선원을 시작으로 보문사 보문선원, 직지사 천불선원 등 1955년까지 8하안거를 성만했다. 이후 스님은 불과 서른이던 1958년 교구본사로 승격된 직후였던 직지사의 주지소임을 맡았다. 교구본사 직지사의 초대 주지로 임명된 스님은 이후 일곱 차례에 걸쳐 주지를 연임했다. 녹원 스님은 이 기간 동안 총 27동의 건물을 신축하고 5동 이전신축, 5동 해체 등 대작불사를 진행하며 교구본사에 걸맞은 직지사의 사격을 일구어 나갔다. 동시에 불교정화운동이 한창이던 1961년 비구 측 불교정화추진의원으로 추대돼 불교재건비상회의에 비구의원으로 활동하며 통합종단 조계종 출범의 산파 역할을 담당했다.

종정 성철 스님(왼쪽)에게 총무원장 임명장을 받는 녹원 스님. [조계종출판사]
종정 성철 스님(왼쪽)에게 총무원장 임명장을 받는 녹원 스님. [조계종출판사]

이후 조계종 중앙종회의원을 거쳐 1981년에는 조계종 중앙종회의장으로 종회를 이끌었다. 1983년 속초 신흥사에서 발생한 폭력 사태로 ‘비상종단’ 체제가 촉발되며 종단이 극심한 혼란에 빠져들자 이듬해인 1984년 8월 해인사에서 열린 전국승려대표자대회에서 녹원 스님은 24대 총무원장으로 추대되며 취임과 동시에 빠르게 종단을 정비했다. 2년여간 ‘통합의 리더십’으로 종단 안팎을 수습하며 조계종의 안정을 일군 녹원 스님은 1986년 총무원장직을 사퇴하고 동국대 이사장으로 학교발전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녹원 스님이 이사장을 역임한 2002년까지 동국대는 동국대 의과대 경주병원을 개원한 데 이어 운영난을 겪던 의료원 산하 포항병원, 경주 한방병원을 정상화시킬 수 있었다. 특히 일산에 제3캠퍼스 건립을 추진하는 동시에 불교종합병원 건립 기공식도 진행, 종립대학 동국대가 명문대학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틀을 다졌다.

동국대 이사장 시절의 녹원 스님. 
동국대 이사장 시절의 녹원 스님. 

이처럼 직지사, 조계종단, 동국대 등 다방면에서 보여준 녹원 스님의 원력과 추진력은 그대로 조계종 근현대사의 한 축이 되었다. 녹원 스님의 행적은 불사와 종무행정, 교육사업 등에서 다면불과도 같았지만 스님을 가까이서 모셨던 상좌와 손상좌들이 기억하는 스님의 공통된 모습은 바로 엄격함이었다. “사사로이는 한 번도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할 정도로 자타에 모두 흐트러짐 없던 녹원 스님.

“하지만 분명 다른 모습도 있으셨습니다. 손상좌였던 제게는 늘 자비롭고 따뜻한 모습으로 대해 주셨습니다. 사숙님들뿐 아니라 다른 분들 기억 속에도 큰스님의 알려지지 않은 모습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손상좌 묘장 스님(조계종 사회복지재단 대표이사)은 녹원 스님을 가까이서 뵙고 인연 맺었던 27명 출·재가자들의 증언을 모아 ‘허공에 가득한 깨달음 영허녹원’으로 엮었다. “스님의 자비롭고 따스했던 모습이 좀 더 드러나길 바랐다”는 바람이 담긴 이 책은 한 편의 대하드라마처럼 녹원 스님을 둘러싼 조계종의 역사와 그 속에 펼쳐진 무수한 에피소드로 가득하다.

출간을 기념해 9월18일 열린 간담회에 참석한 녹원 스님의 상좌 법등 스님의 회고는 매사에 철저했던 녹원 스님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준다.

서울 조계사 템플스테이 체험관에서 열린 출판간담회에는 조계종 원로의원 법등, 직지사 주지 장명, 조계종 사회복지재단 대표이사 묘장 스님과 주호영 국회 정각회장. 
서울 조계사 템플스테이 체험관에서 열린 출판간담회에는 조계종 원로의원 법등, 직지사 주지 장명, 조계종 사회복지재단 대표이사 묘장 스님과 주호영 국회 정각회장. 

“김천 직지사에서 서울까지 올라오려면 기차로 족히 7시간은 걸리던 시절이었습니다. 은사스님께서는 두루마기를 벗어 무릎에 올려 놓으시고는 7시간 동안 의자에 등을 대지 않으셨습니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 계셨으니 내리실 때도 옷이 전혀 구겨지지 않았죠. 그런 모습을 보면서 수행자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조금씩 배울 수 있었습니다. 불사를 할 때면 ‘30년 후에 누가 와서 시비를 해도 책잡히게 해서는 안 된다’던 가르침, 정재를 사용하는 일에는 절대 ‘유도리’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는 철저한 원칙, 이런 은사스님의 모습들이 결국은 내 삶에 필요한 양식이 되었음을 뒤늦게서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녹원 스님을 가장 오랜 기간 시봉했던 직지사 주지 장명 스님의 회고는 녹원 스님의 또 다른 측면을 보여준다.

“동국대 이사장 소임까지 다 놓으시고 명적암에 주석하실 때였습니다. 그즈음 은사스님께서는 유독 주변 사람들을 따뜻하게 대해 주셨습니다. 평생 칭찬을 몇 번 못 들어보긴 했지만 저는 그런 노년의 은사스님을 보면서 마음이 편치 못했습니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생전에 더 정성껏 모시지 못했던 것이 후회가 됩니다.”

그런가 하면 묘장 스님이 털어놓은 에피소드 속에서는 엄격함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한 번은 불교서점에서 좋은 책이 눈에 띄길래 두 권을 사서 노스님께 드렸습니다. 그런데 어찌나 좋아하시는지, 그렇게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을 뵌 적이 없을 정도였죠. 그러시면서 책값이라며 10만원을 주셨습니다. 2만원 남짓 책을 사드리고 뜻밖의 용돈을 받은 저는 그때 이후로 책값 받는 재미에 노스님에게 몇 번이나 책을 사다 드렸죠. 스님께서도 분명 아셨을 겁니다. 그런데도 늘 기뻐하시며 제게 책값을 주셨습니다.”

주호영 국회 정각회장의 기억 속 녹원 스님은 재가불자에게는 늘 따스했고 공직자에게는 사표와도 같은 가늠자였다.

“김천지원에 판사로 근무할 때 스님을 자주 찾아뵀죠. 그럴 때면 늘 공심을 강조하셨다. 공심을 갖고 일을 해야 하는데 나랏일 하는 사람이나 절집 일하는 사람이나 모두 공심이 부족해지는 것이 안타깝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그 말씀을 지금도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이 책에는 이렇게 각자가 기억하는 녹원 스님의 모습이 이어진다. 전 조계종 원로의장 도원 스님에게는 선지식이었고, 명예원로의원 암도 스님에게는 ‘현대판 도사’였다. 원로의원 일면 스님에게는 ‘불사의 정답지’였고, 전 진각종 통리원장 혜정정사에게는 ‘춘원 이광수의 소설을 좋아하는 문학인’이었다. 김종빈 전 검찰총장의 기억은 ‘인간적으로 따뜻한 스님’으로, 이형열 전 동국대 일산병원 행정처장에게는 늦잠 잔 직원에게 ‘그럴 수 있지’하고 넘어가던 친할아버지 같은 스님으로 남아있다.

그런 모두의 기억 속 녹원 스님을 따라가다 보면 직지사 주지, 조계종 총무원장, 동국대 이사장으로 세인들의 머릿속에 각인돼 있는 녹원 스님의 모습은 좀 더 입체적으로 선명해지고 따뜻한 빛으로 채색된다. 그리고 그 모습과 빛은 오늘날 조계종이 지향하는 가치와도 오버랩 된다. 스님들에게도 다르지 않다.

평생의 도반 도원 스님(오른쪽)과 함께 파계사 대비암에서 망중한을 즐기고 있는 녹원 스님. [조계종출판사]
평생의 도반 도원 스님(오른쪽)과 함께 파계사 대비암에서 망중한을 즐기고 있는 녹원 스님. [조계종출판사]

“어려서 출가하다 보니 학교를 다니는 또래들이 부러웠었다”는 법등 스님은 “하지만 종단 운영에 참여하며 삶의 방법, 철학을 어른스님에게 배웠음을 느낀다”며 “배운 대로 처신하다 보니 명분에 부족함이 없고, 사심 없이 일을 하니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며 향기처럼 온 삶에 배어든 스님의 가르침을 떠올렸다.

허공에 가득한 깨달음 영허녹원
유철주 지음 / 조계종출판사 / 464쪽 / 3만2000원

묘장 스님은 “비뚤어진 법당 좌복을 바로잡는 내게 신도들이 ‘까다롭다, 어렵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며 ‘나도 노스님을 닮았구나’라는 생각을 했다”며 “스님께서 보여주신 대로 살다 보니 그대로 수행자의 모습이었다”고 회고했다.

책에 실린 27명의 기억은 유철주 작가가 인터뷰한 기록이다. 현재 ㈜도반HC 기획콘텐츠실장으로 일하고 있는 유 작가는 “이 책에서 녹원 스님에 대해 회고하고 있는 27명의 출재가자들이 갖고 있는 공통적인 느낌은 존경과 사랑이었다”며 “종무행정과 불사, 동국대 경영 등 녹원 스님의 행적은 분명 사판에서 이뤄졌지만 철저한 자기 수행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며 그 바탕 위에서 많은 이들의 감화를 이끌어 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선지식 18명의 인터뷰를 엮은 ‘산승불회’를 시작으로 다양한 스님들을 만나온 작가는 “성철 스님이 조계종의 아버지와 같고 청화 스님이 조계종의 어머니와 같은 느낌이었다며 녹원 스님은 조계종의 장자 같았다”며 “혼란과 어려움에 처한 종단을 지키고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는 사명감은 마치 한 집안을 일으킨 장자의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697호 / 2023년 9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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