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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없이 엄하고, 한없이 따스했던 ‘다면불 녹원 스님’

  • 불서
  • 입력 2023.09.18 14:52
  • 수정 2023.09.18 15:06
  • 호수 1697
  • 댓글 0

허공에 가득한 깨달음 영허녹원
유철주 지음 / 조계종출판사 / 464쪽 / 3만2000원

출·재가불자 27명의 ‘녹원 스님에 대한 기억’ 엮어 책으로
직지사·종단·동국대 이끈 근간은 ‘빈틈없는 공심’ 이구동성

관응 스님과 녹원 스님을 비롯한 대중들이 직지사 경내를 걷고 있다.
관응 스님과 녹원 스님을 비롯한 대중들이 직지사 경내를 걷고 있다.

영허당 녹원대종사(1928~2017)의 일생 행적은 한국불교 근현대사와 맥을 함께 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1928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난 스님은 13세 되던 1940년 직지사로 출가해 강원을 졸업하고 서울 안국동 중앙선원을 시작으로 보문사 보문선원, 직지사 천불선원 등 1955년까지 여덟 번의 하안거를 성만했다. 이후 스님은 불과 서른이던 1958년 교구본사로 승격된 직지사의 주지소임을 맡았다. 교구본사 직지사의 초대 주지로 임명된 스님은 이후 일곱 차례에 걸쳐 주지를 연임했다. 녹원 스님은 이 기간 총 27동의 건물을 신축하고 5동 이전신축, 5동 해체 등 대작불사를 진행하며 교구본사에 걸맞은 직지사의 사격을 일구어 나갔다. 동시에 불교정화운동에 뛰어들어 통합종단 조계종 출범의 산파 역할을 담당했다. 1983년 속초 신흥사에서 발생한 폭력 사태로 ‘비상종단’ 체제가 촉발되며 종단이 극심한 혼란에 빠져들자 이듬해인 1984년 8월 해인사에서 열린 전국승려대표자대회에서 녹원 스님은 24대 총무원장으로 추대되며 취임과 동시에 ‘통합의 리더십’으로 종단 안팎을 수습하며 조계종의 안정을 일궜다. 녹원 스님은 1986년 총무원장직을 사퇴하고 동국대 이사장으로 학교발전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동국대 의과대 경주병원을 개원한 데 이어 운영난을 겪던 의료원 산하 포항병원, 경주 한방병원을 정상화시킬 수 있었다. 특히 일산에 제3캠퍼스 건립을 추진하는 동시에 불교종합병원 건립 기공식도 진행, 종립대학 동국대가 명문대학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틀을 다졌다.

이처럼 녹원 스님의 행적은 불사와 종무행정, 교육사업 등에서 다면불과도 같았지만 스님을 가까이서 모셨던 상좌와 손상좌들이 기억하는 스님의 공통된 모습은 바로 엄격함이었다. “사사로이는 한 번도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할 정도로 자타에 모두 흐트러짐 없던 녹원 스님.

“하지만 분명 다른 모습도 있으셨습니다. 손상좌였던 제게는 늘 자비롭고 따뜻한 모습으로 대해 주셨습니다. 사숙님들뿐 아니라 다른 분들 기억 속에도 큰스님의 알려지지 않은 모습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손상좌 묘장 스님(조계종 사회복지재단 대표이사)은 녹원 스님 가까이서 인연 맺었던 27명 출·재가자의 증언을 모아 ‘허공에 가득한 깨달음 영허녹원’으로 엮었다.

녹원 스님의 상좌 법등 스님의 회고는 매사에 철저했던 모습 그대로를 보여준다. “김천 직지사에서 서울까지 올라오려면 기차로 7시간은 걸리던 시절이었습니다. 은사스님께서는 두루마기를 벗어 무릎에 놓으시고는 7시간 동안 의자에 등을 대지 않으셨습니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 계셨으니 내리실 때도 옷이 전혀 구겨지지 않았죠.”

그런가 하면 녹원 스님을 가장 오랜 기간 시봉했던 직지사 주지 장명 스님의 회고는 녹원 스님의 또 다른 측면을 보여준다. “동국대 이사장 소임까지 다 놓으시고 명적암에 주석하실 때였습니다. 그즈음 은사스님께서는 유독 주변 사람들을 따뜻하게 대해 주셨습니다. 평생 칭찬을 몇 번 못 들어보긴 했지만 저는 그런 노년의 은사스님을 보면서 마음이 편치 못했습니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생전에 더 정성껏 모시지 못했던 것이 후회가 됩니다.”

묘장 스님이 털어놓은 에피소드 속에서는 엄격함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한 번은 불교서점에서 좋은 책이 눈에 띄길래 두 권을 사서 노스님께 드렸습니다. 그런데 어찌나 좋아하시는지, 그러시면서 책값이라며 10만원을 주셨습니다. 뜻밖의 용돈을 받은 저는 그때 이후로 책값 받는 재미에 노스님에게 몇 번이나 책을 사다 드렸죠. 스님께서도 분명 아셨을 겁니다. 그런데도 늘 기뻐하시며 제게 책값을 주셨습니다.”

주호영 국회 정각회장의 기억 속 녹원 스님은 재가불자에게는 늘 따스했고 공직자에게는 사표와도 같은 가늠자였다. “김천지원에 판사로 근무할 때 스님을 자주 찾아뵀죠. 공심을 갖고 일을 해야 하는데 나랏일 하는 사람이나 절집 일하는 사람이나 모두 공심이 부족해지는 것이 안타깝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지금도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책에 실린 27명 인터뷰는 유철주 작가가 진행했다. 현재 ㈜도반HC 기획콘텐츠실장으로 일하고 있는 유 작가는 “성철 스님이 조계종의 아버지와 같고 청화 스님이 조계종의 어머니와 같은 느낌이었다면 녹원 스님은 조계종의 장자 같았다”며 “혼란과 어려움에 처한 종단을 지키고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는 사명감은 마치 한 집안을 일으킨 장자의 모습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697호 / 2023년 9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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