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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능인정사 주지 법원 스님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 참된 삶이고 회향입니다

부처님은 순간순간을 깨어 살면서 팔정도 실천하라 가르쳐
시간 지나서 잘못 뉘우쳐도 지나간 1분 1초 되돌릴 수 없어
불법 배우고 자기중심을 온전히 세워서 정진함이 바른 신행

법원 스님은 “현재를 지나는 이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며 기도하고 정진하는 불자의 삶을 살아갈 것을 당부했다.
법원 스님은 “현재를 지나는 이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며 기도하고 정진하는 불자의 삶을 살아갈 것을 당부했다.

오늘은 불기 2567년 백중 기도 회향일입니다. 경전 이야기를 바탕으로 우리 능인정사를 비롯해 많은 사찰에서 우란분절이자 하안거해제일인 음력 7월15일에 지옥이나 아귀의 세계에서 고통받는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 삼보에 공양하는 의식을 진행하고 있고, 오늘은 그 기도를 회향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회향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어떠한 일의 마무리를 회향이라고 알고 있지만, 무엇보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 참된 삶이고 참된 회향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정치와 사회가 급변하고 하루에도 이런저런 일들이 수없이 일어나고 사라집니다. 그리고 살면서 최선을 다한다고 했지만 지나고 보니 최선이 아닌 차선을 택한 것은 아닌지, 자가당착에 빠져 자기 합리화를 하고 눈 가리고 아웅 한 시간은 아니었는지, 인생을 회향해야 할 날이 다가오면 하루하루가 아쉽고 그렇게 조바심 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겠지만 누구나 살면서 한 달만, 아니 5분전으로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순간이 있었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순간순간을 깨어 있는 삶을 살고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情進), 정념(正念), 정정(正定) 팔정도를 실천하며 살라고 가르치셨지만, 대부분이 말만 앞서고 행이 따라가지를 못합니다.

옛날 중국에 공부하기를 죽기보다 싫어하는 스님이 계셨습니다. 스님은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놀고먹을 수 있을까 하는 궁리만 하면서 허송세월을 보냈습니다. 화살처럼 빠른 시간은 쾌락을 탐닉하는 자에게 더 빠르게 흘러가기 마련입니다. 

그 스님도 어느덧 세월이 흘러 삶을 마무리해야 할 즈음에 이르러 하루는 낮잠을 자는데 꿈에 저승사자가 찾아왔습니다. 저승사자의 등장에 깜짝 놀란 스님은 정신을 차리고 지나온 시간을 주마등처럼 비추어 보았습니다. 방탕하고 욕심 많고 게으른 모습뿐, 수행자로서의 삶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대로 저승 가면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세세생생 끝없는 고통을 받을 것이 뻔했습니다.

그래서 스님은 저승사자에게 애원했습니다. “그동안 인과법을 믿지 않고 방탕하여 허송으로 세월만 보냈으니 이대로 저승에 가면 당연히 무서운 과보를 받게 되겠지만 그것은 두렵지 않으나 제대로 공부다운 공부를 하지 못한 것이 한이 됩니다. 일주일만 시간을 주시면 여한이 없겠습니다. 제발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이렇게 간절히 빌다가 문득 깨어보니 꿈이었습니다. 꿈을 깨고서도 저승사자의 모습이 너무도 생생하여 단순한 꿈으로 여기고 무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꿈속에서처럼 과거를 돌이켜 보니 나태하고 게으르며 놀기에만 정신이 팔려 왔던 세속인의 삶이었습니다. 순간 너무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깊은 참회와 후회의 순간이 지나자 새로운 결심이 서게 되었습니다. 비록 꿈속이었지만 저승사자의 허락으로 자신의 생이 일주일 연장되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느낀 것입니다. 지금부터라도 부처님 공부다운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잠도 자지 않고 용맹정진 하였습니다. 주위에서 스님이 이상해졌다고 수군거렸지만 개의치 않고 화두에만 매달렸습니다.

그로부터 일주일 되는 새벽에 삼매에 들어 온갖 상대적인 차별의 경지가 끊어지면서 깨달음의 세계가 열렸습니다. 그런데 그때 찾아온 저승사자는 바로 앞에 있는 스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스님은 이미 상대적인 차별의 세계를 벗어났기 때문에 제아무리 저승사자라도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회향의 일차적인 의미로써 “어떤 일을 잘 마무리한다”라고 알고 있습니다. 중생의 삶이라는 것이 대개는 지나간 삶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스러움으로 점철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뉘우쳐도 지나간 시간을 1분, 1초도 되돌릴 수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현재 뉘우침의 순간만이 실존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뉘우침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실행으로 이어지는 결심이 서고 즉시 행동으로 옮겨야 그게 참된 회향입니다. 식지 않을 것 같던 뙤약볕도 한풀 꺾이고 길고 지루한 장마로 무참했던 사건 사고도 기억의 갈피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걸 보면 흐르는 시간을 당해낼 재간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지 않아도 정진하기 좋은 계절이고 정진해야 할 시간입니다. 현재를 지나가고 있는 이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마십시오. 기도할 수 있는데 무엇이 걱정입니까?

지난 2008년 잡풀 우거진 맨땅에 오두막살이 사찰을 창건한 후, 준공식 다음 날부터 산문 폐쇄하고 1차 1000일 기도, 제방 선원 3년, 2차 1000일 기도, 종단 소임 3년을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이제 다시 오두막살이로 돌아와 2022년 11월22일 3차 1000일 기도를 입재하여 정진하고 있습니다.

서늘한 새벽 도량석 바람이 나를 일깨우는 선지식이라 여기고 시간 되면 들어가 기도하고, 참선하고, 나무에 물주는 단순함에 물들어 가고 있는 “중”입니다. 입적하신 미룡당 큰스님을 단양 대흥사 창건 전에 황정산 앞 허허벌판에 컨테이너 몇 개 놓고 모신 적이 있습니다. 큰스님, 은사스님, 사형스님 두 분을 전깃불도 없고 먹을 우물도 없어 꽁꽁 언 냇가에서 물을 길어다 밥을 하고 얼음 깨서 손 비벼 가며 빨래해야 하는 열악한 환경에서 예불 올리고 세끼 공양 지어 시봉하며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정신없이 산 시절입니다. 

햇중 때라 염불 배운다고 앞 냇가에 가서 목에서 피가 나도록 소리소리 지르다 허파에 바람이 들어 열이 펄펄 나 앓고 누워 있는데 큰스님께서 들어오시더니 “이 미련한 놈아, 중은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봐야 한다는 각오로 해야 된다” 하시며 물수건으로 땀을 닦고 또 닦고 하시는데 얼마나 감격을 했는지 그 후 종일 뛰어다녀도 신이 나서 틈틈이 황정산에 올라 반찬거리로 버섯도 따고 단양 시장에 나가 시장도 보고 코피도 여러 번 쏟았지만 힘든 줄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하루는 비몽사몽간에 새벽 도량석 목탁 소리가 들려 황급히 일어나 시계를 보니 알람 소리도 듣지 못하고 자고 있었습니다. 급히 뛰어나가니 큰스님께서 도량석을 하고 계셨습니다. “큰스님 제가 하겠습니다” 했으나, 큰스님께서는 도량석을 마치고 예불을 올리고 아침 공양을 다 하실 때까지 아무 말씀 안 하시더니 “중은 게으르면 끝이다” 딱 한마디 하셨습니다.

그날 이후로 제 중 생활의 좌우명은 이 한마디입니다. 이 말을 뼛속 깊이 새기며 나태해질 때마다 자신을 바로 세우는 견책으로 삼고 살고 있습니다. 기도도, 신행 생활도 재미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잘해야 합니다.

홀로 행하고 게으르지 말며
비난과 칭찬에 흔들리지 말고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경전에 나오는 부처님 말씀입니다. 여기 나오는 무소는 코뿔소를 말합니다. 코뿔소가 하나의 뿔을 지니고 있듯이 수행하는 사람은 깨달음을 이루기 위해 우직하고 묵묵히 자기 길을 홀로 가라는 뜻입니다. 세속에서야 서로 어울려 즐겁고 재미나고 맛난 것을 쫓아가는 것이 사는 맛이겠지만 절집에 오시는 이유는 부처님 공부하고 수행하기 위해서이니 조심하고, 조신하고, 자기중심을 온전히 세워 묵묵히 정진하는 게 바른 신행이고 바람직한 불자의 자세입니다. 

저는 불자님들에게 어울려 놀러 다니지 말라고 합니다. 사사로운 만남이 잦아지면 좋고 싫은 감정이 생기면 자연히 끄달리게 되어 피곤해지고 결국은 기도도 믿음도 내려놓게 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간혹 불자님들은 “재미나고 즐거워야 절집에 자주 오지요”라고 합니다만, 절집에서의 즐거움은 여기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것은 분란과 시끄러움의 근원이 될 뿐입니다. 자신을 잘 다스리고 처음 절에 오실 때처럼 하심하고 초심을 유지하는 것이 신행 생활을 잘하는 비결입니다. 

우리 절에도 창건 이래 15년을 한결같이 조용히 앞만 보고 절에 오시는 불자님이 몇 분 계십니다. 한 번도 칭찬하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진심으로 그분들을 존경합니다.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소리 없이 와 기도하고 도량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풀 뽑고, 냄비 하나를 씻어도 정말 자기 집 그릇처럼 성심을 다해 닦고 냄새나는 하수구 청소도 마다하지 않는 참 보살입니다. 듣기 좋은 문구로 하는 백 마디 말보다 수행에서 오는 평안하고 인자한 표정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행을 바꾸어 놓게 합니다.

아침 저녁 제법 선선한 바람이 가을 소식을 전해 오고 있습니다. 좋은 시간을 놓치지 마시고 우리 같이 정진합시다. 성불하십시오.

정리=강태희 충청지사장

이 내용은 청주 능인정사 주지 법원 스님이 8월30일 백중기도 회향을 맞아 설한 법문을 요약 정리해 게재한 것입니다.

[1698호 / 2023년 9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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