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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한 느낌 알아차리기

기자명 하림 스님

일상이 피곤한 느낌으로 살아
‘대념처경’ 가르침대로 보니
느낌·받아들이는 마음 달라져
포기하려는 마음도 받아들여

서울에서 부산 내려가는 밤 기차를 타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차 안에서 원고를 쓰는 것도 처음입니다. 오늘까지 원고를 보내야 하는데 이런저런 일로 지치기도 하고 힘도 들어서 미루기만 하였습니다. 자정을 몇 시간 남기고서야 할 수 없이 글을 써 내려갑니다. 

서울역에서 기차를 탔을 때는 몸이 많이 피곤하고 어깨도 몹시 무거워서 천근만근이란 표현이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한 시간 눈을 붙이고 나니 몸이 조금 나아지고 그 느낌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힘든 몸의 느낌도, 힘들다는 생각도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습니다. 여전히 피곤하고 지치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 느낌과 생각에 마음이 점령당하지는 않습니다. 피곤한 느낌이 왔을 때 내가 그 느낌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이전에는 피곤한 느낌이 들면 그 느낌의 영향으로 몸이 더 피곤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시간이 길었습니다. 종일 쉬고 다음 날까지 쉬어도 그 느낌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일상이 참 피곤하다는 느낌으로 내내 살았습니다. 

언젠가부터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대념처경’의 서문을 매일 보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이 느낌이 금방 지나가리라는 것을요. ‘대념처경’ 서문에는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 “여기에 길이 있으니 중생의 청정을 위하고 근심과 탄식에서 벗어나는 길로 안내한다. 그 방법으로 느낌에서 느낌을, 일어난 마음에서 마음을 알아차리고 관찰하며 머문다.” 그 마음이 일어나면 ‘일어나는구나!’ 사라지면 ‘사라지는구나!’ 이렇게 관찰하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저의 피곤한 느낌을 대할 때 그렇게 조금씩 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예전 같으면 기차를 탈 때 너무 피곤하니 오늘 원고를 쓰지 못할 것이라고 미리 포기합니다. 지금은 늦었으니 내일 오전에 써야지 하면서 미루고 맙니다. 내일 아침이 되어서도 바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그 피곤한 느낌이 느껴지지 않아야 피곤함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니 부산에 가서도 밤새도록 피곤하고 다음 날 아침까지 나를 점령했던 겁니다. 

‘대념처경’의 가르침대로 바라보니 정말 그 느낌은 한 시간이 지나니 사라졌습니다. 실상은 더 일찍 사라졌을 것입니다. 지금은 기차를 타고도 이렇게 글을 쓸 만큼 정신이 맑아지고 몸도 피곤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명상을 공부하기 전과 공부하고 나서의 개인적인 차이점입니다. 

요즘 세상이 명상을 향한 관심이 높아져서 강의할 기회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번 달에는 하도 많아서 세어보았습니다. 21번이 넘는 강의가 잡혀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벌써 몸에 이상이 왔거나 일정상 불가능하다며 취소했을 겁니다. 실제 한 달의 반이 지날 때 즈음이면 ‘더는 못하겠다!’라며 취소하려고 몇 번이나 문자를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러는 제가 정말 싫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 저 자신이 어떻게 그 마음을 받아들이는지 수행의 시험대로 삼았습니다. 다행히 현재 잘 버티고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강의를 소화하고 있는 저 자신이 참으로 신기하고 대견하기도 합니다. 기쁨도 슬픔도 모두 인연 따라 일어나고 사라진다는 것을 알고 나니 그런 마음을 예전보다는 강하게 잡지도 않고 그것에 끌려다니는 것에도 훨씬 가벼워졌음을 발견합니다. 

오늘도 아침에 서울에 갔다가 종일 회의를 하고 밤에 부산으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이젠 피곤한 느낌이 두렵지 않습니다. 피곤한 느낌이 오더라도 그 느낌의 정체를 압니다, 이 느낌은 지금 이렇게 크게 느껴지지만 잠시 후에는 사라질 거라는 것을요. 마치 번개와 같고 물거품과 같다고 한 것과 같습니다. 물론 더 무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붓다의 말씀처럼 중도의 길로 가려고 합니다. 이제 울산역을 지납니다. 부산에 도착하면 오늘 밤은 생각들이 떠오르더라도 잡지 않고 그냥 보기만 하고 쉬려고 합니다. 그러면 밤새 그 생각들은 날아가서 하늘의 별이 되어 있을 것 같습니다. 덕분입니다.

하림 스님 부산 미타선원장 whyharim@hanmail.net

[1698호 / 2023년 9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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