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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인생 키워드는요

기자명 한산 스님

내 인생 키워드는 감사·사랑
화내는 마음 직면, 마음 전환
바꿀 수 있는 내 인생 키워드
내 삶의 나침반과 안심처 돼

나에게는 그때그때 마음에 새기는 단어, 인생 키워드가 있다. 화두처럼 마음에 품고 있는 시기가 길 때도 짧을 때도 있다. 긴 호흡으로 오랫동안 지녀온 키워드는 감사와 사랑이다.

감사보다는 불평불만으로, 사랑보다는 두려움으로 살아온 시간이 길었기에 더 소중하고 귀하게 와 닿았는지도 모른다. 이미 감사로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감사라는 말은 자연스러울 테고, 사랑의 존재가 된 사람에게 사랑이라는 말은 특별한 단어가 아닐 테니 말이다.

몇 년 전 큰 분노에 휩쓸린 경험이 떠오른다. 평소에 화가 덮치면 호흡이 가빠지고, 생각과 말이 거칠어지며, 남 탓하기에 마음이 바빠진다. 또 화를 억누르거나, 외면하거나, 잠으로 회피하곤 했는데 그날은 달랐다. 여과 없이 화내는 마음을 직면하고 바라보게 된 것이다. 

그 순간 마음의 전환이 찾아왔다. 화로 가득했던 마음이 흔적 없이 사라지더니 감사와 사랑만 존재했다. 깊숙이 숨어 있던 것이 드러난 것처럼 어둡던 마음이 한순간 빛을 내며 밝아졌다. 나를 힘들게 했던 타인과 조금 전까지 씩씩대던 나의 모든 행위가 사랑임을 알게 되었고, 감사한 마음이 넘쳐흘러 눈물, 콧물 펑펑 쏟으며 가슴 후련하게 울었던 기억이다. 그날 이후 머리로만 이해되던 부처님의 말씀이 가슴에 와 닿기 시작했다. ‘우리의 본성은 청정하다,’ ‘우리는 이미 부처님과 같은 지혜와 자비를 가진 본래 부처다,’ ‘번뇌인 구름이 사라지면 불성이 드러난다,’ 등 수없이 들었어도 머리로만 안다고 생각하던 것들 말이다.

나에게 어떤 불교 용어는 직관적으로 와 닿지 않을 때도 있고, 멀게 느껴질 때도 있으며, 너무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어 이해가 어려울 때도 있다. 그럴 때 일상 언어로 대입한다. 스스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쉽고, 법우님들과의 대화에서도 소통이 원활하다. 지혜와 자비는 사랑과 감사로 대입하곤 한다. 지금 이 순간 나, 너, 세상은 무상하게 변하는 인연들의 화합으로 펼쳐지고 있으니, 나만을 위하던 인색한 마음과 이기적인 마음을 내려놓으면 모든 존재를 둘로 나누지 않는 마음으로 사랑하고 감사하며 살아가게 된다고 생각한다.

요즘 내 인생 키워드는 ‘긍정적 중립’이다. 부처님의 중도(中道)를 ‘긍정적 중립’으로 대입해 본다. ‘치우침 없는 깨어있음, 극단을 초월한 알아차림’이라는 풀어씀도 잘 어울린다.

마음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관찰하다 보면 부정적인 생각이 드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억압한 후 곧바로 ‘내가 이런 나쁜 생각을 한다니!’라고 스스로 부정하고 꾸짖으며 번뇌를 번뇌로 뒤덮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마음을 관찰하고 알아차리는 것은 번뇌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기 위함인데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하며 부정한 것으로 치부할 때 마음은 더 불편하다. 있는 그대로 진리의 참모습이라는 제법실상(諸法實相), 눈에 보이는 것이 깨달음이라는 촉목보리(觸目菩提)라는 말처럼 눈앞에 펼쳐진 그대로, 마음 세상에 드러난 그대로 온전한 진실이고 진리인데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내 생각대로 좋은 것은 끌어당기고 싫은 것은 밀어내며 끝없이 취사간택(取捨揀擇)한다. 그 지점부터 불편함, 고통이 시작된다. 긍정적 중립 상태로 마음을 두면 펼쳐지는 현상들을 있는 그대로 포용하고 수용하는 힘이 점차 커진다. 
 

마음을 ‘나’라는 이 한 몸에 국한하지 않고 눈앞에 펼쳐진 넓은 세상, 전체로 확장하면 인생의 참여자보다 관찰자로 한발 물러나 상황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와 안목도 생긴다. 이렇게 긍정적 중립 상태를 유지하면 지금 있는 그대로 감사하고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다. 여전히 일상은 감사와 사랑, 긍정적 중립 상태로 가득 찬 것도 아니며 작게도 크게도 흔들린다. 하지만 인생의 키워드만으로도 돌아갈 집이 있는 것처럼 안심이 된다. 쉽게 가질 수도, 바꿀 수도, 버릴 수도 있는 나만의 인생 키워드는 삶의 나침반이 되고 안심처가 될 수 있다. 관심이 있다면 한번 찾아보길 권해본다. 자신이 알아듣기 쉬운 언어로.

한산 스님 일상다감사 지도법사 happyhansan@naver.com

[1699호 / 2023년 10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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