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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빠사나 명상수행 최광희(짠디·70)-상

기자명 법보

오랜 수행자 조부모 영향 받아
기독교 교육에도 부처님 생각
남편 죽음에서 찾아온 삶 의문
생로병사 자유 위해 불교 입문

불교는 나의 모태 종교다. 외증조할머니께서는 금강산 유점사에서 참선 끝에 온몸에서 빛까지 뿜어낸 ‘깨달은 분’으로 알려졌다고 외할머니와 어머니에게 들은 적이 있다. 어머니가 어렸을 때는 만공 스님과 한암 스님께서 집에 오셔서 증조할머니와 법담을 나누시고, 외할아버지는 도봉산 자현암 건축에 크게 보시했으며, 외할머니는 늘 새벽 4시에 일어나셔서 목욕재계하고 참선수행을 하셨다.

어린 시절에 나름대로 크고 작은 어려운 일을 겪을 때마다 부처님의 가피로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어왔다. 그래서인지 한국 최초의 기독교 여성학당인 이화여자중고등학교때 기독교 교육을 받았으나 부처님에 대한 믿음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사실 불교 교리를 잘 알아서라기보다는 ‘내가 믿는 종교’에 대한 소신을 지키겠다는 일종의 심리적 저항이 더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불교에 직접 관심을 가지게 된 사건은 1989년 달라이라마 존자의 노벨평화상 수상이었다. 당시 나는 벨기에에 살고 있었다. 유럽에서는 달라이라마 존자의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중국의 티베트 점령 문제가 국제적 이슈로 부상됐다. 

그동안 불자라는 사실도 거의 잊은 채 살던 나는 불교가 지식인들의 눈길을 끌기 시작한 데 자극을 받아 불교를 열심히 공부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바람이 생겼다. 그러나 진정 불교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남편의 죽음이다. 나에게 삶과 죽음을 평온하게 넘어서게 할 의지처가 시급히 필요했던 것이다. 

2011년 1월 남편이 췌장암에 더해 간도 좋지 않아 예후가 좋지 않다는 청천벽력같은 의사의 진단을 들었을 때 나는 슬픔과 절망, 두려움과 불안으로 뒤범벅된 감정에 휩싸여 멍하니 눈물만 흘렸다. 그런데 남편은 덤덤하게 머리를 끄떡여가며 의사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곧장 나를 옆에 앉혀 놓고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여느 때와 같이 차근차근 이야기했다. 투병 중에도 짜증을 부리고 고통을 호소하는 소리를 단 한 번도 듣지 못했다. 죽음을 순리대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서는 어떠했을 지 모르겠으나 병의 악화와 다가올 죽음에 불안이나 우울증을 보이는 대신 미소와 배려를 잃지 않고 평소처럼 일상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는 나로서는 놀랍고 존경스러웠다. 한편으로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먹먹하고 아팠다.

임종을 앞두고 몇 시간 전 연명치료를 받겠냐는 의사의 질문에 남편은 “존엄성을 간직하며 죽겠다(Je veux mourir avec dignité)고 대답하며 연명치료를 거절했고 의사들과 간호사들에게 그동안 가족처럼 보살피고 간호해줘 고맙다는 작별 인사까지 했다. 그는 끝까지 유머와 미소를 잃지 않았다. 나를 사랑했냐는 나의 물음에 그냥 사랑한(aimer) 정도가 아니라 열렬히 사랑했다(adorer)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옅은 미소와 함께 평온한 모습으로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남편은 유럽에서 행해지는 전통적 천주교식 장례식도 거부했고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말고 가벼운 마음으로 한국으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새로운 삶을 살 것을 당부했다. 

나는 남편의 유언대로 37년간의 벨기에 삶을 뒤로 한 채 2013년 7월 귀국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남편의 임종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수행자도 아니었던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마치 돛단배가 너울 없는 잔잔한 바다를 항해하듯 평온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 난 그럴 자신이 없었다. 

‘삶은 불확실하고 죽음은 확실하다.’ ‘태어난 존재라면 그 누구라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제시한 불법을 진지하게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했다. 2014년 봄 어느날, 남산 대원정사에서 테라와다불교 교리를 강의하시는 한  스님을 만나고 본격적으로 불교에 입문하게 되었다.

[1699호 / 2023년 10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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