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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부석사 재판’이었는가?

기자명 법보
  • 사설
  • 입력 2023.10.31 13:33
  • 호수 1702
  • 댓글 0

왜구 약탈·부석사 동일성 외면
일본 민법 따른 점유권만 부각
몰지각 검찰과 무지한 법원이
은닉 조장·반 역사 ‘참극’ 불러

서산 부석사 ‘금동관음보살좌상’이 결국 일본 간논지(관음사)의 소유로 귀결됐다. 조계종은 “약탈문화재의 은닉과 불법 점유를 조장할 뿐 아니라 강제로 빼앗긴 약탈문화재에 대한 소유자의 정당한 권리를 가로막는 반역사적 판결이자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약탈문화재 문제의 해결에 있어서도 최악의 판례가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우리 정부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데 반해 무라이 히데키 일본 관방 부장관은 “(일본)정부는 불상이 간논지에 조기 반환될 수 있도록 한국 정부를 압박하고 간논지를 포함한 관계자들과 연락을 취하며 적절히 대응해 나가겠다”고 한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데는 검찰의 몰지각함이 무엇보다 컸다고 본다.

1심의 관건은 왜구의 약탈 여부였다. 부석사는 ‘고려사’ 등을 인용해 왜구가 서산에 5회 이상 침탈한 사실을 밝혔다. 또한 ‘대마의 미술’ ‘대마의 자연과 문화’ 등 한국이 아닌 일본의 자료를 통해서도 이 불상이 왜구 약탈에 의한 것임을 입증했다. 그 결과 1심 재판부는 “불상의 원래 소유자는 부석사”라고 판결했다.(2017) 그런데 놀랍게도 대한민국 정부(피고)를 대변하는 법무부 대검찰청은 판결이 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항소했다. 

이 불상이 부석사로 돌아가면 국가적 위상이 추락하거나 금전적 손실이라도 보는가? 아니면 처음부터 이 불상은 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작정이라도 한 것인가? 정부가 이 불사에 대해 최대한 배려해도 국가 또는 지자체가 운영하는 미술·박물관에 전시하는 정도다. 이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수장고에 넣어두고 뒷짐만 지고 있을 게 아닌가. 일본이 강탈해 간 불상을 원래의 소유자였던 부석사 법당에 다시 봉안하는 건 당연지사다. 

항소 이유도 가관이었다. 현재의 ‘서산 부석사’를 고려에 존재했던 ‘서주 부석사’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서산의 옛 지명이 서주라는 사실과 부석사가 고려시대부터 현 위치를 지켜왔음은 인터넷만 검색해도 알 수 있을 상식에 속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종심 전이라도 부석사에 돌려보내라”는 가집행명령에도 불복해 가처분신청을 했다. 

“불상이 가짜일 수 있다”는 검찰(피고) 측의 주장에 이르러서는 아연실색할 뿐이다. ‘불상재감정조사보고서’에서 소수의 조사위원이 주장한 것을 그대로 인용했는데, 불상이 가짜라면 절도범을 문화재 절도죄로 이미 단죄한 이유는 무엇인가? 진품으로 감정했기에 처벌한 것 아닌가 말이다. 검찰이 ‘가짜 주장’을 철회한 건 2021년이다.

여기에 더해 검찰은 간논지를 피고 보조인 자격으로 참가시켰다. 이 지점부터 재판은 예상 밖으로 진행됐다. 재판에 참여한 간논지 주지는 “약탈품이라도 20년 이상 자주 점유 의사로 취득하고 있었다면 소유권이 성립한다”고 주장했다. 일본 민법을 인용한 것인데 이것은 검찰 항소이유에도 없었던 내용이다. 

2심은 1심을 뒤집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2023.2) 부석사의 원시 소유 인정과 왜구 약탈로 인한 관음사 점유는 인정하면서도 “부석사가 고려시대 부석사와 동일한 권리주체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것은 명백한 오심이었다고 본다. 지표·시굴조사 결과 현 부석사가 신라와 고려, 조선을 잇는 고찰임이 입증됐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또한 “설사 같은 권리주체로 보더라도 시효취득의 준거법이 되는 일본 민법에 따를 때 일본 관음사가 불상을 시효취득했다”고 했다. 불상의 소유권이 부석사에 있는지 없는지만 판단하면 충분해 보임에도 일본 간논지의 주장을 받아들여 손까지 들어 주었다. 

대법원은 결국 서주 부석사와 현재의 부석사를 동일한 권리주체로 보면서도 일본 민법에 따라 ‘20년간 점유’를 인정하며 소유권이 간논지에 있다고 판결했다. 불법 약탈해간 문화재도 해당 국가의 민법에 따른 점유 기간만 채우면 문제없다는 거 아닌가. 조계종이 논평대로 “최악의 판단‘이다. 

재판의 핵심 사안이었던 왜구 약탈 여부, 부석사 동일성 여부는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간논지의 주장만 꿈틀거렸다. 결과적으로 간논지 주지를 재판에 참여시킨 몰지각한 검찰과 상식에도 어긋나는 판단을 내린 법원의 무지한 판단이 만든 참극이 아닐 수 없다. 국민은 묻는다. 누구를 위한 재판이었는가?

[1702호 / 2023년 11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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