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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마음이 일어날 때

기자명 하림 스님

축구 더 하고 싶은 마음 앞서
은사스님 불편함 살피지 못해
원하는 마음이 진정되면 평화
오늘도 일어나는 마음 살필 것

일요일 오후면 축구를 합니다. 스님들과 불자들이 모여서 운동하는 시간입니다. 적적하실까 봐 은사스님도 모시고 나가고 함께 모시는 보살님들도 나가게 됩니다. 

은사스님께서는 주말이면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편안한 소파에 앉아 커피 한잔하면서 담소를 나누는 것도 좋아하십니다만 제가 축구 일정이 있는 날에는 종종 운동장에 가자고 하십니다. 스님께서 함께 운동장에 가면 앉아만 계셔야 합니다. 이렇게 계신 것이 다소 힘드실 텐데도 제가 운동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 자체를 즐기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추운 날씨에 좀 오래도록 밖에 계셔야 했습니다. 해가 짧아져서 어두워질 때까지 계셨으니 2시간이 넘도록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축구를 마치고 나오면서 죄송스러웠습니다. 스님께서 꼼짝하지 않고 앉아계시다가 일어나시려니 몸이 굳어서 움찔하시는 거였습니다.

함께 계시던 보살님들도 추웠던 모양입니다. 늘 제가 사람들을 배려한다고 생각했는데 저 혼자 공차며 노느라 살피지 못했습니다. 

어떤 마음이 있어서 그랬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공을 차는 것은 제게 큰 즐거움입니다. 넓은 공간을 뛰어다니는 것 자체가 즐겁습니다. 또 한 골씩 넣을 때마다 기분이 더욱 좋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지나쳐 다른 사람이 불편해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축구는 25분 정도씩 돌아가면서 공을 찹니다. 2쿼터 정도 차는데 1시간이 넘게 걸립니다. 제가 제정신이라면 밖에서 기다리는 분들을 생각해서 그 정도 시간이 지났다 싶으면 바로 운동을 멈추고 가자고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공을 더 차고 싶은 마음이 저를 점령했습니다. 그만두고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갈등은 분명 있었습니다. 하지만, 공을 더 차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 강했고 반면 기다리는 분들을 살펴야 한다는 마음은 너무 약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분들이 추워서 몸을 움츠리고 떨고 있는 모습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분들이 가고 싶어 한다는 마음도 살피지 못했습니다. 

은사스님께서는 원래 말이 없으십니다. 아마 보살님들은 저에게 가자는 표현을 여러 번 했을 겁니다. 그조차도 듣지 못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너무나도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다음에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반복됩니다. 예전에도 그랬던 적이 많습니다. 후회하고 깊이 반성하고 다시는 안 그러겠다며 다짐한다고 해도 변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제 마음을 가지고 탐구해 보려고 합니다. 

제가 멈추지 못했던 것은 ‘공을 더 차고 싶다’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이 마음이 일어날 때 ‘아니야! 저분들을 봐! 기다리잖아, 이제는 그만 놀고 가야 해!’라는 마음도 일어납니다. 그런데 결국 원하는 마음을 따라가고 맙니다. 그리곤 나중에 후회합니다. 

이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공을 더 차고 싶다’라는 마음이 나타났을 때 정신을 차리고 ‘아! 이 마음이 또 나타났구나!’ 그리고 ‘이 마음을 따라가면 나중에 또 후회하겠구나!’라고 알아차리며 그 마음이 좀 진정되고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면 아마도 그 마음에 잡혀가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돌이켜 보았을 때 그 공놀이도 그 원하던 마음도 지금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지나가는 구름과 같은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금강경’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은 무상하고 물거품 같다”라는 말씀이 진실입니다. 이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또 뭔가 원하는 마음이 일어날 때 그 마음을 알아차리고 그 마음이 진정된 후 마음이 평화로워지면 그때 내 마음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분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중도의 길을 걷기 위해 노력하려고 합니다. 아니, 지금 일어나는 마음들을 살피려고 합니다. 순식간에 끌고 가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일어나는 마음들을 잘 살피겠습니다. 이 길이 번뇌로 가지 않는 붓다의 가르침이라고 믿고 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하림 스님 부산 미타선원장 whyharim@hanmail.net

[1702호 / 2023년 11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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