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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용 서울대 교수의 ‘탐진치 번역 잘못’ 일축은 당치 않은 일”

기자명 법보
  • 기고
  • 입력 2023.11.03 19:56
  • 수정 2023.11.03 20:04
  • 호수 1703
  • 댓글 7

기고-박광준 일본 붓쿄대학 교수

경전 한역은 인도와 중국 전문가들 공동작업에 의해 진행
‘탐진치’도 양국 불교인이 숙고 거듭해 선택한 최선의 글자
붓다가 썩은 돼지고기 먹고 등창 심했다는 것도 근거 없어

춘다의 집(강의 오른편)과 입멸장소인 쿠시나가라(강의 왼편) 중간지점쯤에 있는 카쿠타강. 이곳에서 붓다는 마지막으로 목욕하고 물을 마셨다. [사진=박광준]
춘다의 집(강의 오른편)과 입멸장소인 쿠시나가라(강의 왼편) 중간지점쯤에 있는 카쿠타강. 이곳에서 붓다는 마지막으로 목욕하고 물을 마셨다. [사진=박광준]

박광준(65) 일본 붓쿄대학 교수가 11월3일 ‘경전 한역과 해석의 다양성’이라는 주제로 강성용 서울대 교수의 탐진치 및 붓다의 입멸에 대한 해석을 비판하는 기고를 보내왔다. 박 교수는 부산대를 졸업하고 일본 붓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저서로 ‘붓다의 삶과 사회복지’(한길사, 제1회 청호불교학술상, 문광부 우수도서 선정), ‘초기불교’(민족사, 세종도서 선정), ‘조선왕조의 빈곤정책’(문사철. 세종도서 선정), ‘(일본어)붓다의 복지사상: 불교적 사회복지의 원류’(法蔵館, 제11회 붓쿄대학 학술상 수상) 등 저술이 있다. 편집자

근래에 불교계 외부에서 베다 등 인도사상과 불교사상의 비교검토를 통하여 불교 교리를 해석하고 그 독창성을 규명하려는 중요한 시도들이 있다. 강성용 교수의 불교 해설이 그 하나인데, 그의 강연(유튜브 공개)은 영향력이 매우 큰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의 계기가 된 강연 ‘제20회 붓다 빅 퀘스천: 붓다, 붓다에게 묻다’(불광미디어)는 조회수가 26만회에 이른다.

다만, 그중에는 한문 경전에 대한 오해를 확산시키거나 경전적 근거가 의심스러운 다음과 같은 견해들이 포함되어 있다.

①“붓다는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를 무엇으로 보았는가? 그것은 산스크리트어 라가, 드베샤, 모하라는 세 가지인데 각각 좋아하는 일, 싫어하는 일, 그리고 정도를 넘어 지나치게 쏠려서 정신을 못 차리는 것, 이 세 가지를 뜻한다. 여러분은 한문 경전을 배우니까 그것은 삼독 즉 탐진치이며 욕심내고 화내고 어리석고 이렇게 소개되어 있는데 그건 아니다.”

②“붓다는 썩은 돼지고기를 먹고 등에 등창이 심하게 나서 옆으로 누워서 죽었다고 알려져 있다.”

교화를 위하여 경전을 방편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는 스님이 이렇게 말했다면 문제 될 것이 없지만, 학자라는 직업은 그와 달라서 사실과 다른 내용이 퍼지는 것을 극도로 조심해야 하기 때문에 이 문제를 지적해 두고자 한다.

첫 번째 견해는, 경전 한역이 중국 측의 일방적인 작업이 아니라 당시 인도와 중국의 불교 전문가(스님)들의 공동작업에 의해 수행되었고, 매우 엄격한 절차와 검증을 거쳤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다. 인도의 낱말과 마찬가지로 한자 탐진치(貪瞋癡) 역시 나름대로 깊은 뜻을 담고 있으므로, 무엇보다 오늘날의 언어 풀이로 붓다 사상을 완전히 알기 어렵다는 겸손한 마음가짐으로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열어 두어야 할 일이다.

중국은 주변 민족을 이적(야만인)으로 보는 경향이 강했지만 붓다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공자와 동급으로 예우했다. 공자의 이름은 구(丘), 자는 중니(仲尼)인데, 비구와 비구니 한역에 ‘구(丘)’자 ‘니(尼)’자를 선택했던 것이 그 증거이다. 인도경전의 한역은 1세기 후반부터 약 1000년에 걸친 중대한 행사였다. 초기에는 인도 승려가 중국에 와서 암송하는 것을 한역하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인도와 중국의 공동작업이었고 조직적인 국가사업이었다. ‘불조통기(佛祖統紀, 남송 승려 지반이 1269년 편찬한 불교역사서)’는 서기 982년 북송 수도 개봉의 역경원에서 행해지던 경전 한역을 자세히 전한다. 인도승 천식재(天息災)가 산스크리트어 ‘반야심경’을 한역하는 장면인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산스크리트어 원문을 천식재가 낭송한다. 이를 역주(譯主)라고 한다.

②역주 왼쪽에 앉은 증의(證義)가 역주와 함께 산스크리트어 문장의 뜻과 내용에 문제가 없는지에 관해 토의한다.

③역주 오른쪽에 앉은 증문(證文)이 역주가 낭송하는 산스크리트어 문장에 틀린 곳이 없는지를 점검한다.

④역주가 낭송하는 산스크리트어 음을 한자로 음사한다. 산스크리트 ‘hrdaya’를 ‘紇哩第野’로, ‘sutra’를 ‘素怛覽’으로 받아 적는다. 범학승(梵學僧)의 서자(書字)라고 한다.

⑤필수(筆受)가 한자로 음사된 산스크리트어를 훈역한다. ‘紇哩第野’는 ‘심(心)’, ‘素怛覽’은 ‘경(經)’으로 훈역하여 ‘심경(心經)’이라는 한자말이 만들어진다.

⑥철문(綴文)이 한역을 한문 문법에 맞는 문장으로 만든다. 필수가 ‘照見五蘊彼自性空見’으로 번역한 것을 이 단계에서 ‘照見五蘊皆空’으로 수정한다.

⑦참역(參譯)이 산스크리트어 및 한문 문장에 잘못이 없는지 점검한다.

⑧간정(刊定)이 번역된 한문을 한문식으로 간결하게 만든다. ‘無無明無明’이라는 번역 글귀에서 마지막 두 글자를 버리고 ‘無無明’으로 줄인다.

⑨승려들 남쪽에 앉은 윤문관(潤文官. 한문에 능한 일반관리)이 번역된 한문 표현의 적절성을 검토하고 문장을 윤색하며 필요에 따라 글귀를 추가하기도 한다. ‘반야심경’의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이라는 글귀에서 ‘度一切苦厄’은 산스크리트어 원문에는 없지만 윤문 단계에서 인위적으로 삽입된 것이며, ‘是故空中無色’의 ‘是故’ 역시 그러하다.(이상 박광준 ‘초기불교’(민족사 간) 참고)

붓다 빅 퀘스천 20회. [불광미디어 캡쳐]
붓다 빅 퀘스천 20회. [불광미디어 캡쳐]

탐진치라는 한자도 당시 인도와 중국의 불교인들이 숙고를 거듭하여 선택한 최선의 글자였음에 틀림 없으므로 그 글자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강 교수 해석은 독자적일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탐진치’라는 번역이 ‘그건 아니다’라고 일축당하는 것은 당치 않은 일이다. 나는 탐진치를 ‘좋아하는 것을 가지려고 하는 것, 싫어하는 것에 눈을 부라리는 것, 지금 삶보다 좋은 삶의 선택이 있음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물론 이것 역시 다양한 해석의 하나일 뿐이다.

두 번째의 붓다 입멸에 관한 강 교수의 견해는 경전적 근거가 의문시된다. 붓다 입멸 과정을 자세히 전하는 ‘대반열반경’은 고고학에 의해 그 사실성이 검증된 경전인데, 입멸과정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붓다는 바이샬리에서 마지막 우안거를 보내고 서북쪽으로 유행을 이어가던 중 대장장이(혹은 금세공사) 춘다의 아침 초대에 응했다. 그러나 음식이 상했음을 알고 남은 음식을 땅에 묻으라고 하고는 설법으로 답례한 뒤, 혈변을 동반한 심한 통증을 견디면서 쿠시나가라로 이동하여 사라수 사이에 몸을 눕히고 입멸했다.’

강 교수의 견해 특히 등창 운운은 이해하기 어렵다. 마지막 식사는 탁발 음식이 아니라 춘다가 집에서 제공한 것이었다. 그런데 병을 유발한 그 음식 ‘스카라맛다바’의 식재료가 무엇인가는 오래된 논쟁거리이다. 스카라는 야생돼지, 맛다바는 부드럽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일본 불교학자 나카무라 하지메는 이 용어에 대해 남방불교 팔리어 학자에게 문의한 모양인데 ‘돼지고기 중 지방이 많은 부분’이라는 회신이었다고 한다. 대표적인 서구 학자들과 마성 스님은 돼지고기라고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의견도 있다. ‘장아함경’에는 전단나무에 붙어 있는 버섯으로 되어 있고, 틱낫한스님은 백단향나무에 붙어 있는 버섯이라고 해석한다. 그 외에도 돼지가 밟고 다니는 곳에 있는 죽순이나 버섯, 혹은 우유죽 등의 설도 있다.

사실 나는 돼지고기설이나 버섯설에 대해서는 왠지 석연치 않다고 생각한다. 바라문교 생활규범인 ‘마누법전’에는 까다로운 식재료 규정이 기술되어 있는데, 바라문이 먹어서 안 되는 채소류 중 버섯이 중요한 항목으로 지적되어 있고 특히 나이 든 바라문의 금기 음식으로서 꿀, 육고기와 더불어 땅에서 나는 버섯을 들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탁발이라면 발우에 고기가 들어 있어도 감사히 받는다는 것이 붓다의 실천이었지만 이것은 집 초대의 음식이다.

바라문의 교의에 따르면 금속공은 전생에 타인의 귀금속을 훔친 대가로 태어난 천민이고, 천민의 보시는 받아서 안 되며 천민이 쳐다본 음식조차 먹어서는 안 된다고 할 만큼 극단적으로 차별적이었다. 그러므로 붓다가 춘다의 집에 들른 행위 자체가 인간해방적 실천이었다고 해도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런 소중한 분을 모신 재가불자가 과연 인도인이 좋지 않은 식재료라고 여기는 재료로 음식을 준비했을지 의구심을 떨치기 힘들다.

귀에 번쩍 뜨이는 것은 법륜 스님의 조심스러운 해석이다. 맛다바가 토란(들감자)의 방언일 가능성이 있으므로, 스카라 맛다바는 [돼지토란]이라는 이름의 야생토란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것이다. 이 설명은 내가 찾아본 어떤 주석서나 연구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자적인 것이고, 법륜 스님은 인도 현지 경험이 풍부한 분이므로 주목하고 싶다.

강 교수는 또 다른 초청강연(전국비구니회)에서, 깨달음을 얻은 뒤 붓다는 처음 만난 우파카라는 사람에게 ‘나는 불사(아무리타)를 얻었다’고 말했으며 자신이 체험으로 맛본 최고의 경지가 최초에는 불사로 표현되었다고 해설했는데, 그 경전적 근거에도 의문이 있다. 율장 등에는 그 경지를 붓다가 열반(니르바나)이라고 설했기 때문이다. 붓다가 아무리타(한문경전의 감로)를 언급한 것은 대화의 마지막, ‘아무리타의 북을 울리기 위해 까시(바나라시)로 간다]라는 문맥이다. 즉 ’고통을 치유하는 감로의 물이 여기 있음을 알리려고 바나라시(녹야원)로 간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사실 이 대화는, 경전을 번역한다는 것이 언어나 문법 차원으로 끝나지 않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우파카가 붓다와는 다른 길로 가는 장면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우빠까여, 모든 그릇된 법을 나는 부수었으니 진실로 나는 승리자이다”라고 하는 붓다의 말에, 우빠까는 “그럴 수도 있겠군요”라고 말하고 머리를 가로저으면서 다른 길로 가버렸다.'(마성 스님 역)

정확한 번역문이지만, 문법을 초월한 해석적 과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즉 우파카의 ‘머리를 가로저으면서’라는 몸짓은 ‘붓다의 말에 대한 긍정인가 부정인가’라는 문제이다. 아마 한국인이라면 ‘동의하기 어렵다는 부정의 몸짓’으로 이해할 것이고, 실제로 이 상황을 ‘교화의 실패’로 보는 해석도 있었다. 그러나 불교학계의 새로운 정설은 ‘긍정의 몸짓’이었다는 것이다. 머리 가로젓기는 머리를 약간 옆으로 기울인 모습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어느 경우에도 그것은 긍정을 표한다는 것이다.(인도에서 부정은 머리를 양옆으로 강하게 가로젓는 것이라고 함)

박광준 일본 붓쿄대학 교수
박광준 일본 붓쿄대학 교수

어쨌든 2500년 전의 일을 오늘날에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보다 겸손할 수는 있다. 다양한 해석이 있다는 것, 자신의 견해는 여러 견해 중 하나일 뿐이라는 자각만 있어도 우리는 필경 좀 더 평화로운 불교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1703호 / 2023년 11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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