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종교라는 꿈의 기록

가끔 우리는 이 세상이 숨막혀 답답하다고 느끼고 탈출을 꿈꾸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한다. 한데 잘 찾아보면 우리 주변에는 다른 세상을 갈구했던 꿈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사뭇 다른 인간이 되고자 했던, 사뭇 다른 세계로 가고자 했던 꿈들의 총합을 종교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 같다.

종교는 절대와 초월의 자리를 지향했던 매우 희귀한 성공과 매우 일반적인 실패의 기록이다. 그리고 초월을 상상하는 힘이 현재의 인간을 만들었다. 종교가 눈앞에 보이지 않더라도 근심할 필요는 없다. 어디선가 종교는 새로운 모습으로, 심지어는 종교 같지 않는 모습으로 자기의 일을 계속하고 있을 것이다.

종교 인구의 가파른 감소, 고령화, 심지어 종교의 종언을 이야기하는 위기 담론이 무성하더라도, 인간이 사라지지 않는 한 종교는 어디선가 다른 모습으로 존속한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어디서든 신을 발견할 수 있고, 어떻게든 신을 만날 수 있고, 무엇이든 신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종교는 이곳에 있으면서도 다른 곳을 가리키는 힘이다. 신이 없는 세상에서 신이 있다고 믿는 힘, 어쩌면 그것이 종교다. 그 없음과 있음의 간극을 해소하기 위해 동원되는 모든 정신적, 물질적 방편이 종교를 구성한다. 그러나 방편은 언제든 허물어지고 다시 구성된다. 지금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종교도 언젠가 녹아 없어지고 다시 새롭게 재구성될 방편에 불과할 것이다.

물론 모든 생명체가 그러하듯 종교도 자기 보존의 기술을 구사한다. 그러나 생명력을 소진한 종교가 어떻게든 생명을 연장하려면 종교가 아닌 다른 무엇인가로 변신할 수밖에 없다. 예컨대 쇠약해진 종교는 정치가 되거나 역사가 되거나 문화가 되어야 한다. 종교적인 가치가 아닌 다른 가치로 자기 존재의 정당성을 주장해야 하는 것이다.

종교는 다른 세상을 꿈꿀 권리 같은 것이다. 어떤 꿈은 너무 발칙해서 사회가 용납하지 못할 것이고, 다른 꿈은 너무 달콤해서 사회도 그 꿈을 권장하고 장려할 것이다. 세상만사가 그런 것처럼 종교에도 좋은 종교가 있고 나쁜 종교가 있다. 그러나 나쁜 인간이라고 해서 인간이 아닐 수 없는 것처럼, 나쁜 종교라고 해서 종교가 아닌 것은 아니다. 꿈에 머물지 않고 현실을 꿈으로 만들고자 할 때 종교는 가끔 나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어떤 종교는 사회적 가치에 반하는 불법투성이여서 사회 밖을 떠도는 처량한 꿈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범죄자가 인간 이하의 존재일 수 없는 것처럼 합법적이지 않은 구석이 많다고 해서 종교가 아닌 것도 아니다. 어떤 종교는 너무 호화롭고 아름답고 매력적이어서 누구나 그 꿈 안에 들어서고 싶어할 것이다. 다른 종교는 폭력적이고 지저분하고 혐오스러워서 어떤 사람은 그 꿈을 단 일 초도 견디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미적 감수성으로 견딜 수 없는 종교라 하더라도 종교가 아닌 것은 아니다.

종교는 같은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서로 다른 길이 아니다. 오히려 종교는 서로 다른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서로 다른 길이다. 다만 종교들이 묘사하고 추구한 서로 다른 목적지의 총합이 인간의 종교적인 세계 전체를 구성할 것이다. 

그런데 자기만의 순수하고 독특한 종교성을 훼손없이 끝까지 고수하고 보존하는 종교는 대체로 널리 확산하지 못한다. 세계종교는 다른 종교의 꿈까지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석하여 흡수하는 종합적인 종교이기 때문이다. 불교든 기독교든 타 종교의 꿈을 음미하며 성장한 종교들이다.

종교가 곧 문화는 아니다. 종교는 그저 사회가 권할 만한 꿈이 될 때 문화로 인정받을 것이다. 종교는 꿈의 기록이지만 그 꿈은 강요된 꿈이 아니라 자발적인 꿈이어야 한다. 더 이상 사람들이 꾸지 않는 꿈이 되면 당연히 그 종교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지금 우리의 종교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꿈을 전달하고 있기는 한가, 아니면 자기들만의 낡은 꿈을 꾸고 있는가?

이창익 교수 changyick@gmail.com

[1704호 / 2023년 11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