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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월광신·26) 위빠사나수행 - 상

기자명 법보

꽃·음식물 좇는 나비·날파리
인식 다르지만 본질은 같아
사람, 감각 집착해 윤회 반복
그러나 알아차림 가능해 행운

흔히 나비나 벌이 꿀을 찾아 꽃을 좇는 것이나 누에가 뽕잎을 먹고 비단실을 자아내는 것은 공주님처럼 아름답다고 한다. 반면 지렁이가 비 갠 날 물을 찾아 벽돌 틈 사이로 몸을 욱여넣거나 날파리가 음식을 좇는 것은 처절하다고 한다. 

사람은 관찰하고, 엿듣고, 기록하고 후세에 남겨두는 관성이 있는 사회적 동물인 까닭에 남이 먹이 먹는 과정도 흉하다, 아름답다 비평할 줄 안다. 그러나, 모장과 여희를 보고 물 속으로 깊이 몸을 숨기는 물고기처럼 제가 살아가는 환경에 따라 식생의 미추 또한 다를 것이다. 또 사람은 식사에 고상함을 두어서 식기에 사용 순서를 두는 체면치레를 한다. 제 생명의 식사 연출이 아름답든, 게걸스럽든 생기를 얻는 것은 매한가지인데도, 상품상생 하품하생을 나누듯 식생활의 미추를 가린다. 

역시 사람이 최고다. 사람이 이처럼 명쾌한 인지능력이 있어 내게 생기를 주는 것을 인식하고 관상할 수 있는 까닭에 식사를 만들고, 음식을 먹는 행위를 관찰하고 명상할 수 있는 행운이 있다.

생명은 자신이 아닌 것을 취해 영양을 얻고, 대사를 하고, 생기를 얻어 살아간다. 이어의 ‘한정우기’에 의하면 사람이 생기가 없으면 얼굴이 초상화처럼 굳으니 곧 초상이 날 징조라고 했다. 대게 생기 넘치는 사람은 밥을 잘 먹고 죽음을 두려워하는데, 그 생기가 남김없이 소진되면 이 두려움 역시 다할 것이리라.

동물은 생기를 생식과 포식에 쓴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피식자가 되지 않기 위해, 동물의 왕국에서 가장 힘이 센 동물조차 노년까지 누군가에게 잡아먹힐까 두려움에 떨어가며 먹이와 생식에 집착하며 산다. 한편 식물과 나무에 눈 내리고, 비바람이 치고, 산이 무너지고, 비바람에 소나무가 꺾여 요동치는 강물 속으로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 그 풍경에도 서슬퍼런 생과 멸, 생명이 살아가는 이치가 있다.

사람은 최상위 포식자로서 취한 생기를 아름답고 무용한 것에 쓴다. 미슐랭에 웨이팅을 거는 음식 경쟁은 있어도 생존이 걸린 포식에 쫓기지 않는 까닭이다. 사람은 생기를 얻으면 사랑을 하고, 타인을 미워하여 가슴에 생채기를 내기도 하고,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처럼 왔다 간 시절 인연이 남긴 편지를 읽으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운수 좋은 날에 재수 없는 일이 겹치면 화복은 새끼줄처럼 얽혀 있어 꼬아 놓은 대로 차례로 좋은 일, 나쁜 일 온다고, 모래알과 들꽃 송이에도 극락이 있다는 말로 마음을 달래다가도, 자기연민에 두 번째 화살을 맞으며 도로아미타불 바보짓도 한다.

이렇듯 사람은 주어진 수명 동안, 눈과 귀와 입과 코 감각기관을 통해 색(色), 소리(聲), 냄새(香), 맛(味), 감촉(觸), 대상(法)에 집착하고, 기억하고, 알음알이를 내고 업을 쌓아가며 살아가다, 나가세나 존자의 비유처럼 다 꺼진 양초의 촛불이 새 촛대에 화촉 되듯이 제 업보와 종자를 봇짐 지고 윤회한다. 

생이 없어 멸도 없는 것이 최상이겠으나, 맹구우목(盲龜遇木)의 확률로 부모로부터 귀한 생명을 받아 사람으로 태어나 참으로 행운인 것은 무얼 입고, 무얼 먹고, 어디에 갈 것인지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최근 종로의 사찰음식문화체험관에서 사찰음식강의를 수강하고 있는데, 삼시세끼를 만들어 먹는 ‘알아차림’을 알 듯 말 듯 알쏭달쏭 해가며 배우고 있다. 모 비구니스님의 수업을 듣는데 수업을 잘 따라가면 나를 비롯한 소녀들은 ‘애기씨’ 소리를 듣는데, 잘 못 따라가면 간혹 마음의 소리로 ‘야!’를 듣는다. 어쩜, 치자물 입힌 겹연근부침을 스승님이 만들면 보름달 같은데, 내 건 스톤헨지, 고인돌 같다는 찬사를 얻는지. 어찌 됐든 스님의 가르침은 정감 있어 참 좋다. 스님의 요리에는 특별한 힘이 있다. 생명을 다룬 음식이 아닌데, 영육을 보한다. 

때로는 가슴에 생채기가 난 불자의 고민을 종일 묵묵히 들어주고, 생각이 게워져 허할 때마다 따뜻한 음식으로 위로를 전하는 마음씨, 은거하시는 거처에 백일 간 기도를 올리러 온 사람이 사찰의 소박한 요리에 질려 산을 내려가지 않도록 갖가지 요리법을 궁구하시는 스님의 착한 마음씨를 배우고 싶다.

[1704호 / 2023년 11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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