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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수행이론의 총망라(76) - 깨친 이의 능력; 각론 ⑪

여래출현품은 화엄경 총39품 안목

보현보살이 비유로 답한 부분
사사무애연기설 이해에 도움
부처된 자 지혜 설명한 대목
불법 핵심이란 자부심 발로

‘화엄경’의 ‘여래출현품 제37’에 나오는 보현보살의 대답은 ①첫째 문단은 총체적으로 대답하는 부분이고, ②둘째 문단은 비유를 들어 개별로 대답하는 부분이고, ③셋째는 이상의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면서 뜻의 업을 제대로 알라고 권하는 부분,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는 이야기는 지난 86호 연재에서 설명했다. 그리고 ②둘째 문단에는 열 가지 비유가 있다고 했다. 

화엄에서 구사하는 사사무애로 연기하는 사상을 이해는 데에 이보다 더 좋은 비유는 없다. 전통 경학에서는 ‘5언(言)’으로 이 대목을 암기했다. ⑴ 무의위의유(無依爲依喩; 허공처럼 의지 없이 일 이루는 부처님의 지혜), ⑵ 법계담연유(法界湛然喩; 법계처럼 바탕에 증감이 없는 부처님의 지혜), ⑶ 대해잠류유(大海潛流喩; 큰 바닷물이 모든 대지에 잠겨 흐르듯 일체지의 원천이 되는 부처님의 지혜), ⑷ 대보출생유(大寶出生喩; 훌륭한 보배처럼 모든 가치의 바탕이 되어주는 부처님의 지혜), ⑸ 주소해수유(珠消海水喩; 여의주처럼 번뇌를 소멸시키고 지혜를 이루게 하는 부처님의 지혜), ⑹ 허공함수유(虛空含受喩; 허공처럼 모든 걸 머금어 들이되 걸림이 없는 부처님의 지혜), ⑺ 약왕생장유(藥王生長喩; 영험한 약 나무처럼 중생들에게 이익을 주고 즐거움을 주는 부처님의 지혜), ⑻ 겁화소진유(劫火燒盡喩; 겁의 불길처럼 일체의 번뇌를 다 없애는 부처님의 지혜), ⑼ 겁풍지괴유(劫風持壞喩; 겁의 바람처럼 교묘하게 번뇌를 남기게 하는 부처님의 지혜), ⑽ 진함경권유(塵含經卷喩; 작은 한 먼지 속에도 무수한 경전의 내용이 담기듯이 모든 중생의 성품이 똑같고 평등하게 갖추어진 부처님의 지혜).

소리 내어 잘 외워두면 화엄의 ‘사사무애연기’설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이 중에서 ‘⑽ 진함경권유’는 ‘여래출현품’ 가운데서도 가장 요긴한 비유이며, 나아가 ‘여래출현품’은 ‘화엄경’ 총 39품의 안목이다. 금년 여름에 입적하신 봉선사 월운 대강백께서 제일 주목한 경전이 ‘화엄경’이고, 그중에도 이글 맨 아래 인용한 구절에 유독 관심을 두신다. 스님의 위패에 ‘화엄종주’라고 붙인 것도 이런 연유이다.

그 본문 구절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불자여, 비유하면 큰 경책[經卷]이 있어 분량이 삼천대천세계와 같은데, …<필자 생략>…, 이 큰 경책의 분량이 비록 대천세계와 같지마는, 전체가 한 작은 티끌 속에 있으며, 한 작은 티끌 속과 같이 모든 작은 티끌들도 역시 그러합니다. 이때 어떤 지혜가 밝은 사람이 청정한 하늘 눈을 구족히 성취하여, 이 경책이 작은 티끌 속에 있으면서도 중생들에게 이익을 주지 못함을 보고는 ‘내가 꾸준히 노력하는 힘으로 저 티끌을 깨뜨리고 이 경책을 내어서 모든 중생을 이익케 하리라’라고 생각하고 즉시 방편을 내어서 작은 티끌을 깨뜨리고 이 큰 경책을 꺼내어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이익을 얻게 하였으며, 한 티끌과 같이 모든 티끌을 다 그렇게 하였습니다. 불자여, 여래의 지혜도 그와 같아서 한량이 없고 걸림이 없어서 일체중생을 두루 이익케 하는 것이 중생들의 몸속에 갖추어 있건마는, 어리석은 이의 허망한 생각과 집착함으로써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여 이익을 얻지 못합니다.”

보현보살이 이런 비유로, 부처된 자의 지혜를 설명한다. 이어서 부처님이 직접 말씀하신다. ‘화엄경’이 대부분 참석 대중들이 법문을 한 데 비해, 이 대목은 참으로 특이하다. ‘석가모니께서 보리수 밀에서 성불하자마자 내신 첫 말씀이 ‘화엄경’이다’라고 주장하는 경전 구성작가의 설을 인정해준다면, 경전 작가가 생각하기에 ‘부처님 말씀’의 핵심이 여기에 담겼다는 자부심의 발로이기도 하다. 운허 스님께서는 ‘한글대장경’에서 이 구절을 이렇게 번역하셨다.

“이상하고 이상하다. 중생들이 여래의 지혜를 구족하고 있으면서도 어째서 어리석고 미혹하여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가. 내가 마땅히 성인의 도로 가르쳐서 허망한 생각과 집착을 영원히 여의고 자기의 몸속에서 여래의 광대한 지혜가 부처와 같아서 다름이 없음을 보게 하리라.”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ananda@yonsei.ac.kr

[1705호 / 2023년 11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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