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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유림석굴 제3굴 ‘문수·보현보살변’

기자명 오동환

문수·보현이 제2 선재 기다리는 ‘법계의 문’

서벽 입구 양측 문수·보현 배치…당대 이후 함께 등장하는 사례 많아
양 벽화에 모두 등장하는 선재동자 통해 ‘입법계품’ 처음과 끝을 관통
‘서유기’ 속 현장·손오공 일행도 등장…민간에 널리 유행했음을 방증

1)유림석굴 제3굴 서벽 남측 보현보살변. 2)유림석굴 제3굴 서벽 북측 문수보살변. 
1)유림석굴 제3굴 서벽 남측 보현보살변. 2)유림석굴 제3굴 서벽 북측 문수보살변. 

서하(西夏)는 하서지역에서 활동하던 탕구트족이 건립한 국가로 1038년부터 1227년 몽고에 함락되기까지 근 200년간 돈황을 포함한 서북지역을 장악하였다. 서하 역시 불교를 신봉하였고, 일찍부터 토번과 한족과의 교류가 잦았기 때문에 불교사상에 대한 이해도 깊었다. 돈황석굴에도 이러한 문화적 배경 속에서 조성된 서하 특유의 석굴이 다수 남아있다. 

유림석굴 제3굴은 현교와 밀교, 그리고 한전불교와 장전(티베트)불교가 원융된 서하불교의 면모가 잘 드러난 대표굴이다. 주실에 들어서면 중앙에 팔각으로 형성된 단(壇)이 자리하고 4면의 벽과 천장은 만다라와 정토변, 천수천안관음변 등 갖가지 벽화로 장엄되어 있다. 그중 서벽에 난 입구 양측의 벽면에는 문수변과 보현변이 각각 그려졌다.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은 중요 대승경전인 ‘법화경’에서 법회의 상수와 경전의 호지자로서, ‘화엄경’에서 화엄삼성으로서 모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으므로, 당대 이후 이 둘이 조합하여 함께 등장하는 사례가 많다. ‘천발경’(42회 참조)과 같은 밀교경전에서도 청정법신으로서의 비로자나불, 원력(願力)의 근본으로서의 보현보살, 반야의 근본으로서의 문수보살을 근본 3신으로 밝히고 있다. 

3굴의 문수·보현변은 내용과 예술성이 뛰어날 뿐 아니라, 화면 곳곳에 숨겨진 도상적 장치들이 배치되어, 자세히 관찰하면 흥미로운 점들이 많다. 먼저 입구를 중심으로 우측의 문수보살변을 보자. 화면 상단은 봉우리가 우뚝 솟은 산악을 배경으로 삼았으며, 봉우리마다 사찰들이 들어서 있다. 그 앞으로는 파도가 일렁이는 너른 바다가 펼쳐지고 그 위로 문수보살을 포함한 18위의 성중이 구름을 타고 현현하였다. 화면 중앙의 문수보살은 수염을 기른 남성적 얼굴을 하고, 화려한 보관과 영락으로 장식한 채 청사자의 등에서 유희좌를 취하고 계시다.

사자의 왼편에는 호인(胡人)의 용모와 복장을 한 호탄국 왕이 사자의 고삐를 쥐고 있다. 사자 오른편에는 왼손에 발우를 들고 오른손으론 석장을 쥔 노승이 자리하였는데, 그는 문수보살을 만나러 오대산을 찾았던 인도승 불타파리이다(39회 참조). 그의 앞쪽엔 왼손에 경전을 들고 오른손엔 석장을 든 채 살짝 허리를 숙인 인물이 보이는데, 노인의 모습으로 불타파리 앞에 나타났던 문수노인으로 추정한다. 문수노인의 왼쪽에는 연꽃을 두 손으로 받치고 있는 선재동자가 보인다. 문수보살을 위시한 호탄왕·불타파리·문수노인·선재동자 등 다섯 인물의 조합은 오대산의 문수보살과 관련한 고사(古事)에 등장하는 인물들로, 오대(五代, 907~979)에 형성된 “신양문수보살상”의 도상적 구성요소이다. 그 외의 보살과 신중들은 각자 다채로운 장면을 연출하며 화면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입구 좌측의 보현보살변은 비슷한 화면구도로 문수보살변과 대칭을 이루고 있다. 보현보살은 여성스러운 용모를 하고 하얀 코끼리 등에 앉아 있다. 보현보살의 성중들의 신분에 대해서는 확인된 바가 많지 않지만, 문수·보현의 두 화면을 비교해보면 흥미로운 점들이 발견된다. 몇 가지를 들어보면, 먼저 보현보살변 화면의 우측 하단에도 한 동자가 문수보살변의 동자와 대칭하여 연꽃 위에 서 있다. 그런데 보현 쪽의 동자는 문수 쪽 동자보다 더 성장한 형상이며, 손으로 합장을 하고 있다. 동자의 몸은 문수보살을 향한 채 고개를 돌려 보현보살을 보고 있다. 양쪽의 동자가 딛고 있는 연꽃을 비교해보면, 문수 쪽의 동자는 연꽃 속에 솟아오른 연밥을 밟고 있고 보현 쪽의 동자는 활짝 만개한 연꽃을 딛고 있다. 이 두 동자는 다른 인물인가? 이에 대한 답은 ‘입법계품’에서 찾을 수 있다. 선재는 처음 문수보살에게 보현의 보살행에 대해 물으며 길고 긴 구도의 여정을 시작한다. 문수보살의 안내에 따라 선지식을 차례로 만난 선재는 어느새 보살행의 모든 계위를 증과한다. 53참의 마지막 여정은 다시 문수보살을 찾아 인증을 받고 보현보살을 통해 비로자나불의 법계에 들어서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수 측의 동자는 처음 발심한 선재이며, 보현 측의 동자는 법계에 들어선 선재일 것이다. 석굴 설계자와 도상적 대칭과 차이를 통해 ‘입법계품’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고 있다. 

보현보살변에는 또 다른 구법자가 등장한다. 보현보살의 좌측을 보면 절벽 위에서 보살 쪽을 향하고 있는 일행이 보인다. 맨 앞에 승복을 입고 머리에 두광(頭光)을 갖춘 인물이 보현보살을 향해 합장하고 있다. 그 뒤의 말 등에는 정성스레 연꽃대 위에 모셔진 꾸러미가 보인다. 가장 주의를 끄는 것은 말 뒤의 인물이다. 분명 의복을 차려입고 있지만, 그 얼굴이나 팔에 보이는 긴 털은 그가 인간이 아닌 원숭이임을 알려준다. 짐작하다시피 이 일행은 서역에 경전을 구하러 나선 현장과 손오공 일행이다. 이 장면은 명대에 오승은이 쓴 ‘서유기’의 고사가 이 시대에 이미 민간에 널리 유행하였음을 방증한다. 법(경전)을 얻기 위해 서역으로 향한 현장법사의 여정은 선재동자의 53참 여정에 비견될 만큼 위대한 보살행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손오공의 시선은 앞에 계신 보현보살보다 더 위를 향하고 있다. 그 시선을 따라가 보면, 산봉우리 사이로 공중에 떠 있는 원광이 보이고, 세밀히 들여다보면 원광 안에는 보현보살 5존상이 그려져 있다. 문수보살변의 상단 우측에도 같은 유형의 원광이 그려져 있다. 이것은 당시 유행했던 문수 및 보현의 ‘서상(瑞像)’을 표현한 것일까? 아니면 하늘로부터 보살의 ‘강령(降靈)’을 나타낸 이시(異時)적 표현일까? 

세부적 의미가 어떠하든 결국 유림3굴의 입구는 법계에 들어서는 문이다.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은 바른 지혜와 바른 행을 겸비하여 법계로의 여정을 떠날 제2, 제3의 선재를 맞이하고 있다. 

오동환 중국 섬서사범대 박사과정 duggy11@naver.com
 

[1705호 / 2023년 11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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