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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일본 대중불교를 꽃피운 화찬과 원효의 무애가

기자명 윤소희

‘화찬’, 전통·혁신 공존하는 일본불교 상징 

민요조로 종조·종지 찬탄하는 화찬, 우리 회심곡과 닮았지만
조석예불·법요절차에 정식으로 편성되는 점이 근본적 차이
의례에 소외될 수밖에 없는 신도들, 화찬 통해 법회에 참여

1)엔이(法眼円伊 作)의 잇펜 히지리에(一遍聖繪), 가운데 지붕 아래 ‘▭’에 승려들이 염불춤을 추고 그 아래 ‘○’에 비파법사가 보인다.  2)진언종 치샤쿠인 스님들의 화찬. 3)나가노현 오도리넨부츠. 
1)엔이(法眼円伊 作)의 잇펜 히지리에(一遍聖繪), 가운데 지붕 아래 ‘▭’에 승려들이 염불춤을 추고 그 아래 ‘○’에 비파법사가 보인다.  2)진언종 치샤쿠인 스님들의 화찬. 3)나가노현 오도리넨부츠. 

“회심곡에 보살들 주머니 다 털린다”는 말이 있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범패만 종일 듣다가 우리말로 법의 신명을 돋구니 집에 돌아갈 차비까지 다 털어 보시하고 걸어갔다는 얘기를 여러번 들었다. 이렇듯 사람들이 좋아하니 ‘화청’이라는 본래 범패는 사라지고 회심곡이 화청이 되었다. 의례문에는 불보살 전에 올리는 상단화청, 호법신중들께 전하는 중단화청이 있었고, 하단에서 영가들에게 하는 화청 대신 회심곡을 노래하다가 어느새 본래 화청은 사라지고 회심곡을 화청이라 하게 되었는데, 여기에는 일제강점기에 들어온 일본 화찬의 영향도 있다. 

일본은 민요조 쇼묘 화찬(和讚)을 비롯하여 우치모노(打ち物), 나라시모노(鳴し物)로 불리는 법구합주, 전통가곡 어화찬(御和讚), 어가영(御詠歌), 가제목(歌題目), 법문가(法文歌), 염불가(念佛歌)에 이르기까지 전통과 현대로 이어지는 다양한 불교 성악곡들이 있다. 이들 중 의례와 대중불교의 가교역할을 한 것이 화찬(和讚)이다.

화찬의 화(和)는 일본을 뜻하는 것으로 범찬(梵讚)・한찬(漢讚)・화찬(和讚)으로 구성되는 일본 쇼묘의 3대 갈래 중 하나이다. 화찬은 일본 쇼묘의 개창자 엔닌(圓仁, 794~864)이 지은 이후 새로운 종파가 생겨날 때마다 그 종파의 화찬이 지어졌을 정도로 역사가 길고 다채롭다. 일본어 가사를 민요조로 노래하는 점에서 일본 화찬이 한국의 회심곡과 닮았다고 하나 종조를 찬탄하고 종지(宗旨)를 노래하는 것으로 조석예불과 법요 절차에 정식으로 편성되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일본의 법당에는 밀교수법을 행하는 정사각형의 예반이 있다. 제반 의례를 예반에 차려진 법구로 밀교수법을 하니 신도들이 의례에 동참할 여지가 거의 없다. 수인을 하거나 염주를 굴릴 때도 법포(法包)로 가리고, 승려 중에서도 인가받은 사람만이 진언을 하는 등 비의적 요소가 많아 신도들이 의례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지만 화찬이 있어 이를 해소할 수 있다. 화찬할 때 승려가 강박에 정(鉦)을 치고, 약박에 령(鈴)을 흔들면 대중은 그 타점에 맞추어 노래하는데 민요조 선율이 친근하면서도 절제된 분위기이다.

신라시대에는 월명사가 노래한 ‘제망매가’나 ‘도솔가’와 같은 향가 불곡이 있었고, 고려조에는 균여대사의 ‘보현십원가’나 나옹화상의 ‘증도가’와 같은 수많은 향토풍 불곡이 있었다. 그러나 조선의 억불을 맞아 불보살 찬탄과 축원 불곡들이 굿판에서 무가로 불리거나 불교 색깔을 지운 민요가락이 되고, 광대패들이 파계승을 놀리는 산대놀이와 장터의 품바타령으로 전락하였다. 

불교라면 놀림과 천대의 대상이니 나무아미타불을 노래하며 따랐던 원효의 무애가가 일본으로 건너가 꽃을 피웠다. 오늘날 일본 전역의 법요와 민속축제로 자리잡은 염불춤 오도리넨부츠(踊り念佛)의 원류가 신라의 원효대사라고 그들이 밝히고 있다. 한반도 삼국불교를 기반으로 하는 나라(奈良)에는 도다이지를 중심으로 ‘일칭일례(一称一禮)’ 법요가 있는데 오도리넨부츠와 닮았다. 한 승려가 ‘나무아미타불’을 선창하면 대중이 따라서 반복하는 일창일례(一唱一禮)법요가 있는가 하면, 서산계의 어기회(御忌會)는 창찬도사(唱讚導師)가 창도(唱導)와 풍송(諷誦)을 한다. 

오도리넨부츠는 헤이안시대 구야(空也, 903~972)가 시작해서 잇펜(一遍, 1239~1289)의 순회 염불포교 이후 무로마치시대에 민중 속으로 확산되었고, 요즈음은 법요, 민속축제, 공연예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형성하고 있다. 그중 잇펜이 처음으로 행한 나가노현(長野県) 사이호지(西方寺)의 아토베 오도리넨부츠(跡部の踊り念佛)는 중요무형민속문화재로 지정(1986)되어 있다. 

잇펜을 종조로 하는 시종(時宗)에는 유야쿠넨부츠(踊躍念佛)와 스스키넨부츠(薄念佛)가 유명하다. 잇펜이 조부의 묘소를 참배할 때 갈대에 둘러싸인 묘를 돌며 염불했던 데서 유래한 박염불(薄念佛)은 지금도 불단 앞에 갈대를 꽂고 그 주변을 돌며 염불한다. 그런가 하면 육재염불(六齋念佛)의 시핸(四遍) 오도리넨부츠와 히카시혼간지(東本願寺) 보은강(報恩講)의 한도부시(坂東曲)도 오도리넨부츠의 변형이다.  

정토종에서 매월 25일에 행하는 베츠지넨부츠(別時念佛), 야마가타현 붓코지(佛向寺)의 유야쿠넨부츠, 후쿠시마현 하치요지(八葉寺)의 쿠야넨부츠(空也念佛)가 있는가 하면, 정토종 나고에류(名越流)의 쇼죠에(証誠會)는 도사(導師)가 목어를 치며 ‘아미타경’ 음독(音讀)을 시작하면 유나가 훈독(訓讀)으로 받고, 이어서 유나의 선창과 대중이 받는 염불법요인데 이 또한 오도리넨부츠 계열 신행이다. 융통염불종의 오카이자이(御回在)는 천득여래(天得如來)의 화폭을 모시고 신도집을 돌며 염불한다. 길다란 궤짝을 둘러매고 집안으로 궤불이운을 해 와서 염불까지 해주는 이 행렬을 맞이하는 신도들의 심정이 어떠할지 그들을 만나 인터뷰를 해 보고 싶었는데 아직 이루지 못했다.  

예능화된 것으로는 동북지방의 쟝가라넨부츠(ジャンガラ念佛)를 비롯하여 지방마다 곳곳에 산재해 있다. 이들은 큰 북(大鼓)과 정(鉦)의 리듬에 맞추어 피리를 불고, 동발과 법라패를 두드리며 꽃, 부채, 장도(長刀), 사슴뿔 지팡이를 들고 춤춘다. 신도와 승려가 함께하는 화찬과 다양한 형태의 오도리넨부츠는 끊임없이 변화·생성되는 가운데도 고제의 전통이 공존하는 일본불교의 저력이다. 

가무(歌舞)라면 전 세계 누구도 따라올 자가 없는 한국인이라 고려조까지는 이런 의례와 신행이 굉진천지(轟震天地)할 지경이었으나 조선조 들어 승려를 흉보고, 불교를 비하하는 광대놀음이 되었다. 지금이라도 전도되고 뒤틀린 불교악가무 중창불사를 한다면 최고의 홍법 아이템이 될 것이라, 불교계의 관심이 필요하다.

윤소희 음악인류학 박사·동국대 대우교수 ysh3586@hanmail.net

[1705호 / 2023년 11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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