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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산 넘은 청소년들의 ‘진짜 공부’

기자명 명오 스님
  • 법보시론
  • 입력 2023.11.27 14:45
  • 수정 2023.11.27 14:55
  • 호수 1706
  • 댓글 7

옛날 어떤 부부가 떡 세 개를 나누어 먹고 있었다. 각자 한 개씩 먹고 떡 하나가 남게 되자, 부부는 내기를 했다. “말을 하는 사람은 이 떡을 먹을 수 없다.” 이렇게 약속을 한 부부는 남은 떡 하나를 먹기 위해 입을 다물고 있었다. 잠시 후, 도둑이 집에 들어와서 그들의 재물을 훔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부부는 내기 때문에, 자신들의 모든 재물을 훔치는 도둑을 보고도 입을 열지 않았다. 도둑은 그들이 가만히 앉아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남편 앞에서 부인을 겁탈하려 했다. 그런데도 남편은 눈으로 보고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부인은 “도둑이야”하고 외치면서, 남편에게 말했다. “이 어리석은 사람아, 어떻게 떡 하나 때문에 도둑을 보고도 소리치지 않는 거예요!” 그러자 남편은 손뼉을 치고 웃으면서 말했다. “쯧쯧, 이 여인네야, 이제 떡은 내 것이오. 당신에게 나누어주지 않겠소.”

이 부부의 이야기는 비웃음의 소재가 되고도 남는다. 어리석은 부부를 통해, 근본(根本)과 지말(枝末)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교훈을 경전은 전하고 있다. 사소한 일에 목숨 걸지 말고 더 중요한 일에 먼저 힘써야 한다는 뜻이다. 떡 하나를 먹기 위해 도둑이 집안의 재물을 훔치는데도 꼼짝하지 않는 부부, 급기야 아내가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도 자기가 떡을 차지한 데에만 들뜬 남편의 모습은 세상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투영하고 있다. 욕망에 빠져 놀면서 아무리 큰 고통을 당하더라도 걱정하지 않는 것이 마치 저 어리석은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 

사람은 누구나 원하는 일이 있고, 목표가 있다. 거기에는 어떠한 우열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자기 인생에서 근본은 무엇인지, 지금 추구하는 일이 선한지, 지나친 탐욕과 집착에서 비롯된 일은 아닌지를 분간해야 한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중요하지 않은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서는 안 된다. 동시에 자기가 원하는 모든 것에 집중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근본에 힘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나친 욕심과 애착에서 비롯된 일은 무시하고 단념하는 지혜와 결단이 필요하다.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 일을 판단하는 지혜를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한다. 어려서 몰랐던 것을 어른이 된다고 해서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혜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올바르게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아이들의 놀이에서도 제일 중요한 것은 재미있게 노는 것이 아니라, 안전하게 노는 것이다. 자신은 물론이고, 타인의 안전도 중요하다고 가르쳐야 한다. 고층 아파트에서 아래로 돌이나 물건을 던지면, 그 아래를 지나는 사람이 위험할 수 있다고 인지시켜야 한다. 타인에게 피해를 초래할 수 있는 아이의 무모한 행동에 대한 주의는 부모의 몫이다. 촉법소년이라 법적 책임이 없다고 해서, 자신의 업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치며 용서를 구할 줄 아는 것이 인생의 소중한 가치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얼마 전, 수능이 끝났다. ‘수능 후 청소년 탈선 방지 캠페인’이 여러 지역에서 펼쳐지고 있다. 쫓기듯이 수능만을 위해 달려온 청소년들에게 해방감은 일탈의 유혹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해방감이 자신을 해치는 불건전한 방법에 사용된다면, 하찮은 것에 인생을 낭비하느라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게 될 수도 있다. ‘수능’이라는 큰 산을 넘었지만, 대학 가기 위한 공부가 아닌 진짜 공부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부모의 울타리를 벗어나, 자기 인생을 책임지는 성인으로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해 볼 시기이다.

사람은 원하는 일을 모두 하면서 살아갈 수는 없다. 그러니 인생을 허비하지 않도록 자신의 본분을 알고 분수에 맞게 힘써야 한다. 돈과 재산, 권력과 명성에 대한 지나친 욕심과 집착 때문에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놓치거나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지금 하는 일이나 원하는 일이 남은 떡 하나를 먹기 위함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명오 스님 동국대 강사 sati348@daum.net

[1706호 / 2023년 11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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