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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보다 행복한가요?

기자명 하림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23.11.27 17:16
  • 수정 2023.12.11 17:06
  • 호수 1706
  • 댓글 0

얼마 전 궁전 같은 곳에서 숙식
시설 훌륭했지만 지나치단 느낌
과함은 환경적으로도 옳지 않아
소박하며 검소한 삶 실천하기를

어둠이 빨리 찾아옵니다. 오후가 되면 어느새 문밖이 어두워져 있습니다. 일년 중 밤이 가장 긴 동지가 다가오나 봅니다. 밤이 길어지는 것을 느낄 즈음이면 그 정점이 다가옴을 알 수 있고 조금 지나면 다시 밤이 짧아짐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들은 모두 이렇게 가득 차면 다시 줄어들고 작아지면 다시 늘어나는 현상들 위에 살아갑니다. 

어제도 밤하늘의 달을 보았습니다. 반달보다 작은 달이 떠올랐습니다. 며칠 전 손톱같이 작은 달이었는데 어느새 커졌습니다. 어찌 보면 달은 작아지면 작다고 걱정하고 커지면 커진다고 걱정하는 나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조용히 그리고 따뜻하게 다독이는 것 같습니다. 달은 그 빛을 줄여서 자신을 볼 수 있게 하고, 어둠의 길을 은은한 조명으로 밝혀주고, 잠을 자는 사이에 잠이 깰까 걱정되어 조용하고 부드럽게 세상의 진리를 전해 줍니다. 다만 너무 깊이 잠들어서 그 소리를 알아차리지 못할 경우가 많을 뿐입니다. 

얼마 전 어떤 분들의 인연으로 아주 좋은 곳에서 하루 숙박을 했습니다. 숙박하면서 여러 가지로 느낀 점이 많았습니다. 4인실인데 100평에 가깝다고 합니다. 구석구석 궁전 같았습니다. 예전의 왕들도 이렇게 좋은 시설에서 생활하지 못했을 겁니다. 뷔페도 100년 전 왕들보다 더 많은 음식이 차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100년 전보다 행복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을까?’하고 돌아보게 됩니다. 지나치다 싶은 느낌이 들 즈음이면 그 끝이 다가오는 것을 느낍니다. 사실 그 큰 숙소도 몸 누우면 자는 것이고 자고 나면 특별한 게 없습니다. 겨우 씻고 세수하고 나옵니다. 뷔페에 가득 차려 놓아도 내 작은 위에 음식 한, 두 접시면 더 먹을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엄청나게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런 흐름은 우리가 어린 시절 먹고 사는 것이 부족했음에 그 마음을 채우기 위한 시간으로 보입니다. 그래야 만족한 느낌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부족한 느낌도 어느 정도 차고 나면 더는 찾지 않게 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작고 소박하고 검소한 흐름으로 돌아서리라 생각됩니다. 사람 마음의 흐름에 따라서 경제도 이동합니다. 관심이 있고 찾는 곳으로 몰리기 때문입니다. 달이 차면 다시 작아지듯 좋고 편하고 화려한 것을 위한 관심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소박하며 검소한 흐름으로 바뀌어 갈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요즘 자주 거론되는 것이 환경을 향한 관심입니다. 에너지를 많이 쓰기에 자연의 변화가 빠르게 다가옵니다. 그렇다면 에너지 절약은 무엇으로 할까요? 일상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화장실에도 종이만 들고 갔습니다. 변은 다시 밭으로 가고 그것이 거름이 되어 다시 채소로 돌아왔습니다. 그 과정에서는 소비되는 물도 시설도 폐기물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추위를 맞이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예전에는 옷을 더 입었습니다. 추우면 내복을 입고 그래도 추우면 내복을 한 벌 더 입었습니다. 나중에는 너무 많이 입어서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싸매고 다녔습니다. 집 안에서도 추위를 견뎠습니다. 찬바람이 문틈의 어디로 들어오는지 보고 그놈을 막으면서 잠을 잤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먹을 수 있는 양이 달라진 것도 없고 추위를 느끼는 온도도 달라진 것이 없고 잠자는 것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때보다 추울까 더울까 더 걱정하는 것 같으니 원인은 다른 곳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내가 1도를 참고 견딜 수 있다면 바다의 온도 역시 1도 올라가는 것을 늦출 수 있다고 봅니다. 육체적 편안함을 위해서만 계속 나아간다면 환경을 향한 관심은 의미 없는 공론일 뿐입니다. 겨울이 오면 옷을 입고 여름이 오면 옷을 벗고 더우면 땀을 흘리면 됩니다. 또 배고프면 배를 채울 정도로 먹는 것이 지구 환경을 위해 나아가는 길이라고 봅니다. 달의 가르침을 받아 지구와 함께 건강하게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하림 스님 부산 미타선원장 whyharim@hanmail.net

[1706호 / 2023년 11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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