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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읍성을 위한 제언: 문화재와 성지의 분리

지난 12월 4일에 충남 홍성에 있는 홍주읍성에 다녀왔다. 20년째 진행되고 있는 홍주읍성의 복원 상황을 살펴보고, 아울러 천주교의 홍주성지를 직접 걸어보는 것이 목적이었다. 홍성 읍내 곳곳에서는 성곽 발굴 조사와 읍성 복원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1975년에 복원된 동문과 2013년에 복원된 남문이 있지만, 지난 11월에 완공되었어야 할 북문은 아직 미완이었고 서문 복원은 언제 이루어질지 알 수 없는 상태였다. 서문, 남문, 동문으로 이어지는 성곽은 완성되었지만, 아직 전체 성곽의 절반만 완공된 상태였다. 홍주읍성 안에 자리잡은 홍성군청, 홍주초등학교, KT홍성지점이 이전되어야 관아, 동헌, 객사, 박물관 등이 건립될 수 있기 때문에 홍주읍성이 완전히 복원되려면 여전히 많은 시간이 필요한 듯했다.

천주교 홍주성지는 홍주읍성 안팎 총 6곳에 순교비와 동판부조물을 조성했다. 읍성 밖 월계천에는 참수순교터가 있고 홍성천에는 생매장순교터가 있다. 그리고 읍성 안에는 목사의 동헌, 홍주감옥, 진영장의 동헌, 옛저자거리에 4개의 순교비가 세워져 있다.

홍주감옥을 제외하면 다른 3곳은 순교터가 아니라 순교자 이야기에 등장하는 장소일 뿐이다. 직접적인 순교터로 추정되는 곳은 읍성 안 1곳, 읍성 밖 2곳이다. 광화문 시복식 2년 전인 2012년에 홍주성 역사공원이 개장되면서 가장 먼저 홍주감옥이 복원된 것도 여기에서 순교한 ‘원시장’이라는 순교자를 기리기 위한 조치였을 것이다.

홍주감옥 앞에는 이곳을 역사적인 장소로 소개하는 공식 입간판이 서 있다. 나머지는 홍주성지순례길 입간판, 순교터 비석, “원시장 베드로 동사 장면과 교수형”을 담은 부조물이다. 입간판과 비석 등의 비율을 고려하더라도 이곳은 역사 유적지 복원을 빙자한 천주교 순교터 복원이라는  인상을 준다. 

또한 목사의 동헌, 진영장의 동헌, 옛저자거리 등에 세워진 검은색 순교비는 해당 장소가 직접적인 순교지가 아니라는 점에서 성지 조성의 명분을 쌓기 위해 세워진 과도한 잉여의 기념비였다. 참수터와 생매장터의 역사적인 고증 문제는 여기서는 일단 논외로 하고 싶다.

이번 여행에서 다시 한 번 새롭게 정리한 생각이 있다. 그것은 역사문화재 복원 사업에서는 종교적 기념물이나 기념비를 조성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적인 유적을 복원하는 일을 아예 막자는 것은 아니라 아직 완공되지도 않은 역사문화재에 마치 ‘알박기’를 하듯 미리 종교적인 기념물을 설치하는 행위는 금지할 필요가 있다.

현재 지방 군소도시의 사정을 감안할 때 홍주읍성 복원사업은 홍성의 명운을 건 매우 중요한 사업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나는 홍주읍성이 홍성이라는 아름다운 고장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그런 장소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홍주읍성 내에 설치된 종교기념물은 모두 철거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또한 아직 완공되지도 않은 홍주읍성에 조성된 종교적인 순례길도 마땅히 철거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홍주읍성에 덧입힐 스토리텔링의 문제는 여전히 홍성군이 해결해야 할 난제일 것이다. 종교적인 스토리텔링은 많은 지자체가 유혹을 느끼는 매우 쉽고 편한 길이다. 그러나 홍주읍성의 미래를 생각할 때 홍성군이 쉽고 간편한 길만 걸어서는 안 될 것이다. 종교적인 스토리텔링을 아예 막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홍주읍성은 굳이 홍주성지로 변신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다른 수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나는 천주교가 홍주읍성 안에서 기념비가 아니라 애틋한 이야기로 존재하기를 바란다. 굳이 불멸의 기념비를 세우고 순례길을 놓지 않더라도 천주교의 성스러움이 아름다운 이야기로 존재할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이창익 교수 changyick@gmail.com

[1708호 / 2023년 12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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