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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이론에 의탁한 수행(1) - 물들지 않는 세상살이; 총론 ②

세간 일 하면서 세간에 물들지 말라

‘이세간품’ 문답 관통한 요지
비로자나불 원력 위 펼쳐진
법계연기를 깨침과 동시에
보살행을 하자는 것이 요체

필자에게는 생년월일도 같고 스무 살 적부터 동문수학한 방외지우(方外之友)가 있다. 암도 스님의 인연으로 지학(志學)의 나이에 남쪽 백양사 대중이 되어 진원(眞圓) 학인이라 불렸고, 약관(弱冠)이 되자 ‘운허-월운’이라는 출세의 도대강백(都大講伯)을 마음에 모셔 운악산으로 깃들었다. 사부님께서는 향암당(香庵堂)이라 당호를 내려 강(講)을 전수하시며 게문(偈文)을 이렇게 지으셨다. “시(示) 향암당진원좌주(香庵堂眞圓座主). 당지시인(當知是人) 하담여래(荷擔如來)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 ‘좌주’는 경·율·론 3장을 강론하는 강사에게 붙이는 존칭이다. 그 뜻은 이렇다. “세상 사람 여러분, 아셔야 합니다! 이 사람이야말로, 여래의 위 없는 깨침을 짊어지고 세상에 전하는 사람입니다.”

참으로 그립다 못해 야속한 사람이다. 사부님보다 이태 먼저 적멸에 들었고, 경우(經友)를 두고 갔으니 말이다. 운허 노스님 말년, 깊은 사랑을 받더니 월운 스님 첫 전강 제자가 되었다. 부처님과 조사님께로 기울이는 향심(向心)은 말할 것도 없고, 문장 너머에 속뜻을 읽어내는 경안(經眼)은 최고이다. 사부님께서 마음으로 낳은 아드님이시다. 좌주께서는 강당의 그 많은 강본(講本) 중에서 송나라 대혜종고 선사의 ‘서장(書狀)’을 유독 좋아했다. 함께 만나 ‘서장’의 ‘안주’와 속진(俗塵)의 ‘차’에 취하던 그 시절이 아득하다.

‘화엄경’의 ‘이세간품(離世間品) 제38’의 품 제목에서 보여주는 ‘이세간’의 모습을 진원 좌주는 몸소 보였다고, 필자에게는 그렇게 기억된다. 세속에 살면서도 세속 일에 연연해하지 않았다. ‘서장’을 좋아하는 성품 때문인지, 옷에 때가 좀 묻어도 그러려니 하고 살았다. 필자의 기억 속에는 ‘서장’ ‘이세간품’ ‘진원 스님’ 이 셋이 항상 겹쳐 보인다.

‘서장’에는 남송 당시의 학자이자 장군인 유언수라는 벼슬아치에게 보낸 편지 ‘답유보학언수(答劉寶學彦修)’가 실려있다. 유언수에게는 아우 유언충(劉彦沖)이 있는데, 아우는 그저 ‘고요한 공부’만을 좋아했다. 젊은 시절의 훗날 대유학자 주자도 통판 벼슬을 하던 유언충에게 수학한 적이 있는데, 희·노·애·락·애·오·욕 등 7정의 감정이 발동하기 이전의 고요한 상태를 유지하면서, 그 기상을 체험하는 도덕 수양에 힘썼다. 대혜 선사는 이것은 잘못된 공부라고 비판하며 매우 걱정했다. ‘서장’에는 형 유언수에게 보낸 편지 1통, 아우 유언충에게 보낸 편지 2통에서 그 정황이 보인다. 선어록에서 그토록 금기시하는 ‘무사갑리(無事匣裏)’에 빠진 것이다. 아무것도 일삼지 않는 속에 빠져서는 안 된다. 

‘서장’에는 대혜와 이 참정 두 분 사이에 오고 간 편지 4통이 전한다. 20대 시절 처음 만난 진원 좌주는 필자를 ‘탈공 거사’라 불렀다. 송나라 때에 참정 벼슬을 지냈던 그 유명한 탈공 거사 이한로처럼, 벼슬도 살고 불교 수행도 하라는 덕담이셨다. 진원 스님과 필자가 친하게 지내고, 또 진원 스님이 필자를 ‘탈공’이라 부르는 것을 월운 스님께서는 알고 계셨다. 필자가 동경대로 유학을 떠나던 1988년, “탈연독초공겁외(脫然獨超空劫外) 불망도중괘구의(不忘塗中掛垢衣)”라는 게문으로 속내를 비치셨다. 그리고는 유촉문 끝에 ‘납루(納漏)’라고 적으셨다. 신에게 민정을 살피라는 전하의 밀지처럼, 절대로 남에게 들키지 말고 임무를 수행하랍시는 당부이시다. 불법을 깨쳐 일체가 사지라진 곳으로 초월하더라도 때 묻은 옷을 걸치고 풍진 속에 사는 사람들 돌보며 부처님 말씀을 전하라는 명령이시다.

‘이세간품(離世間品)’에서는 2백 가지 질문이 구름 일 듯 피어나자, 물병에서 물 쏟아지듯 2천 가지로 대답하신다. 이 어마어마한 ‘문-답’에 관통하는 한 줄기는 세간 일 하면서도 세간에 물들지 않음이다. ‘서장’에서 말하듯 ‘고요한 경지’에 빠지지 말고, 때 묻은 옷을 걸치고 세상 먼지 뒤집어 써가면서 궁자(窮子)를 보살피라는 ‘법화경’의 ‘신해품’ 말씀이다. ‘화엄경’ 경학의 요체는 “오비로법계(悟毘盧法界) 수보현행(修普賢行)”이다. 비로자나 부처님의 수행과 원력 위에 펼쳐지는 법계연기를 깨침과 동시에, 보현보살로 대표되는 보살행을 하자는 것이다.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ananda@yonsei.ac.kr

[1708호 / 2023년 12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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