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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드 멍크(Cafe de Monk)

기자명 성진 스님

동북아 3국 종교인 모여 대화
2011년 동일본의 대지진 이후
이동찻집 통해 자살 방지 활동
참혹 현장에서 종교 역할 고민

얼마 전 일본 고베에서 2023 국제종교인평화회의(IPCR) 세미나가 열렸다. 한국, 일본, 중국의 종교인들이 모여 ‘동북아 평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과제’라는 주제로 대화했다. 세 개의 분야로 나누어 세미나가 이루어졌는데 그 중 ‘자연재해에  있어서 종교지도자의 역할’이라는 토론 주제가 있었다. 이번 세미나가 열린 고베는 1995년 1월 17일 새벽 5시 46분에 진도 6.9에서 7.3 정도의 강진이 덮친 곳이다. 물론 지금은 30년 전 대재앙이 있었던 곳이라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현대적 건물과 공원으로 잘 가꾸어진 아름다운 도시로 재건되어 있다. 위의 주제를 발표한 분은 일본 조동종의 가네타 타이오(金田諦應)스님이었다. 자살방지 활동을 하고 있으며 2011년 3월11일 동일본 대지진 이후로는 경청이동찻집 ‘카페 드 멍크(Cafe de Monk)’를 개점, 10년에 걸쳐 지진 피해지역에서 마음 돌봄 봉사를 하고 계신 분이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은 ‘쓰나미’라는 단어를 가장 강력하게 각인시켜 준 자연재해였다. 당시 미야기현에 기거했던 가네타 스님은 “대지를 터뜨리는 듯한 강한 흔들림이 3분이 넘게 지속되었다”고 기억했다. 스님에 따르면 집은 붕괴를 피했지만 모든 통신과 전기가 끊겨 오래된 라디오를 통해 겨우 상황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수백 구의 시신이 바닷가로 밀려 들었다. 당시 지진해일로 화장장마저 붕괴되어 내륙의 화장장으로 옮겨 가는 시신들 앞에서 스님들은 기도를 했다. 스님은 초등학교 5학년 여자아이 두 명의 작은 관 앞에서 떨리는 목소리를 겨우 참고 기도를 올렸다. 급조한 관에 누워있는 할아버지, 트럭 짐칸에 실려 온 아버지, 파란 블루시트에 싸인 어머니, 택배기사 냉동트럭에 아내와 아이를 실어 온 남편, 아버지의 죽은 얼굴에 몇 번이고 말을 걸고 있는 아들 등. 스님은 평온하고 잔혹한 ‘생과 사’에 마음은 얼어붙었고 도저히 내일을 말할 수조차 없었다. 시체 썩는 냄새와 진흙 냄새가 뒤섞인 참상의 바닷가 앞에서 종교인들도 단지 오열과 절규 그리고 통곡으로 염불을 대신했다고 한다. 

그 속에서 스님은 지금 무엇을 하면 좋을까를 생각했다.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통곡을 들어주고 냉정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유지 할 수 있는 자세로 일명 ‘경청이동찻집-카페 드 멍크(Cafe de Monk)’를 열었다. 피해자들의 고민과 불평, 원망과 탄식을 들어주는 카페를 연 것이다. 쓰러진 잔해물 속 ‘한 숨 돌릴 공간’을 만든 것이다. 예쁘고 달달한 케이크와 시원한 음료, 따뜻한 차와 커피, 향기로운 꽃과 향을 두었다. 처음에는 아무도 오지 않는 날도 있었지만 얼마 있지 않아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한숨 돌리는 장소가 ‘각자의 고뇌의 이야기로 채워지는 장소’로 바뀌었다. “누가 생과 사를 정하고 있나?” “어째서 내가 살아남고 손자가 죽었나?” “시체를 못 찾았다. 손자를 살리지 못했다.” 종교인들을 향한 질문은 모든 종교적 언어를 거절하는 거친 압박과도 같았다. 스님 또한 어떤 경우에는 피해자와 자신의 경계가 무너져 내려 마음은 절규로 가득 차게 되었다고 한다. 이 잔혹한 현장에서 도망쳐 버리고 싶은 자신과 머무르며 함께하고자 하는 자신이 충돌하며 진정한 종교인으로서 마음을 찾아갔다고 한다. 슬픔의 장소에 머무르는 힘이 종교인 갖고 있는 믿음의 힘이고 진정한 인내라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이 발표를 들으면서 같은 스님으로 존경과 고마움, 미안함이 뒤섞여 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이 내가 사는 곳에서 일어난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됐다. 나에게는 과연 이러한 현장에서 도망치지 않을 자비심과 인욕바라밀이 있을지 선뜻 답하지 못하겠다. 잠시 도와준다는 마음을 낼 수는 있지만 함께 머무르고, 상대의 아픔을 가만히 들어준다는 것의 무게감을 견딜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다. 출가 이후 스님으로 이러한 상황에 대한 준비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는 기회와 고민이 솔직히 없었다. 타 지역으로 잠시 봉사 가는 마음과는 분명 다른 것이다. 이제라도 한국의 스님들도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자연재해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종단적인 논의와 지침이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성진 스님 남양주 성관사 주지 sjkr07@gmail.com

[1709호 / 2023년 12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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