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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봄

기자명 진원 스님

영화 ‘서울의 봄’이 근래 핫하다. 내 기억 속엔 10월 유신으로 각인되어 있다. 어린시절을 유신시대와 보냈고, 유신에 대한 포스터도 열심히 그려 상도 받았다. 그 시절 아침에는 늘 ‘새벽종이 울렸네’가 울려 퍼졌다. 깃발을 들고 아이들이 줄을 지어 등교를 하던 아주 옛날 이야기와 같은 시절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 소식은 고등학교 1학년 때, 통학버스 안에서 라디오 뉴스로 들었다. ‘서거’라는 말도 처음 들었지만, 어른들의 탄식과 허둥대는 모습에서 뭔지는 모르지만 큰 문제가 생겼구나 직감했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걱정하는 소리가 대다수였고, 북한이 처들어 올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팽배했다.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이 뭔가 어수선했다. 지금처럼 SNS 등 정보가 유통되지 않아 세상 돌아가는 게 늦었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이다. 생물 선생님이 까만 표지로 만들어진 출석부를 교탁에 “쾅”하고 내리쳤다. 선생님의 눈은 이미 얼마나 울었는지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었고, 결국에는 꺽꺽 소리내어 울었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모르는 우리는 머릿속만 복잡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는 그 선생님의 고등학생 동생이 광주에서 총에 맞아 숨졌다고 한다. 몇 날 며칠을 광주에 들어가려고 장흥의 산을 넘었지만 결국에는 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 충격으로 선생님은 동시대를 마저 살지 못하고 동생을 따라갔다고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광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르고, 또래가 총에 맞아 죽었는지도 모른 채 천진난만하게 학교생활을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시장통에서 전해듣고 온 사람들이 “광주에 폭동이 일어났다”고 했다. 그 시절에는 민주화운동이라고 하지 않고 폭동이라고 했다. 가슴 아픈 일이다. 아무튼 군사 쿠데타 정권이 들어섰고 이를 반대하는 학생들과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위해 수없이 희생됐다. 나라는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민주화 열기로 치열했던 시기, 나는 절간에서 행자생활로 아주 열심이었다. 또래 젊은이들은 치열하게 싸우고 최루탄으로 눈물이 범벅이 될 때, 간혹 절에 들어오는 철 지난 신문에서 민주화운동에 가담한 스님들이 감옥에 갔다고 전해들었다. 가끔 편지와 엽서로 그 스님들을 위로하는 것으로 소임을 다했다. 그렇게 민주화 현장에서 무풍지대에 있었던 나는 역사에 약간의 부채의식 같은 것이 있다.

‘서울에 봄’ 영화가 20~30대의 청년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1979년 12월 12일 있었던 대한민국 군사반란 사건이 메인 스토리다. 실화를 바탕으로, 반란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두 세력이 목숨을 건 일촉즉발 9시간의 과정이 실감나게 그려진 영화라고 한다. 당시 사건의 두 세력 모두 군인으로, 반란을 막으려는 세력과 광기의 반란 세력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역사는 전쟁역사가 주를 이루고 있다. 오래 전에 일어났던 전쟁이 아닌, 몇 십 년 전 현대에 일어났다. 그래서 민족에게 더 큰 상처를 남겼다.

영화를 본 사람들의 후기를 보면 “몇 사람의 군인이 대한민국 정권을 어떻게 침탈할 수 있는 것일까?” “그렇게 우리 군이 허술하고, 정부가 허술하기 짝이 없다는 말인가?” “머리가 아프고 기절할 것 같다” 등 감상평이 주를 이루고 있다. 역사는 묵묵히 흐르는 것 같지만 반드시 그냥 흐르지는 않는다. 반드시 평가를 받게 되고 후손들은 그 기억을 잊지 못한다. 그 쿠데타 주역의 유해는 깃들 장소도 없고 그 영혼은 연옥 그 어디쯤에서 떠돌고 있을 것이다. 

모든 권력은 양팔저울과 같아야 한다. 어느 한쪽이 비대해지거나 권력을 독점한다면 총만 들지 않을 뿐 반란이나 마찬가지이다.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군인, 경찰, 검사, 공무원 등은 국가를 대신해 국민에게 봉사하는 직책으로, 그들만의 카르텔을 위해 군림해선 안된다. 나는 ‘서울의 봄’을 아직도 보지 못했다.

진원 스님 suok320@daum.net

[1710호 / 2024년 1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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