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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련사 ‘50년 여정’ 지중하다

  • 사설
  • 입력 2024.01.05 10:03
  • 수정 2024.01.08 13:03
  • 호수 1711
  • 댓글 0

기복신앙 치우친 불자 깨우고
보조사상·선의 대중화 이끌어
도심 포교의 새 지평 연 사찰
어린이·청소년 포교에도 정성

서울 종로구 사간동 법련사 전경. 사진출처=법련사 홈페이지
서울 종로구 사간동 법련사 전경. 사진출처=법련사 홈페이지

승보종찰 송광사 서울 분원인 법련사(法蓮寺)가 창건 50주년을 맞았다. 서울 불자들의 신심을 고양해 온 법련사가 교계 안팎으로 미친 영향력은 지중하고도 지대했다. 사찰서점의 효시인 불일서점(1984), 교계 최초의 전문 미술관으로 기록된 불일미술관(1995)과 전통찻집인 연다원(蓮茶院) 등은 불교 생활 속에 우리의 전통문화가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시민들에게 각인시켰다. 불일출판사(1984)와 불일회보(1980)는 부처님의 지혜를 올곧게 전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도심 포교의 새 지평을 연 법련사는 불교사에서 높게 평가받아야 한다.

사찰명은 종로구 사간동 자택을 불사에 써 달라는 유언을 남긴 창건주 법련화 보살(1920∼1973)의 법명을 따서 지었다. 시주한 그 땅에 법련사가 처음 들어섰다.(1973)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1995년 중창 불사를 통해 지금의 법련사가 위용을 드러냈다. 대우그룹과의 인연도 깊다. 김우중 전 회장은 큰아들 고(故) 김선재 씨가 미국에서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자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송광사에 거액의 불사금을 시주했다. 그 직후 중창 불사가 시작됐다.

화강암 성채 위에 3층 높이의 전통 한식 사찰로 조성되었다. 교계 안팎으로 “전아(典雅)하다”는 평이 쏟아졌을 정도로 신선하게 다가왔다. 불사가 진행될 초기부터 현대식 사찰에 어떤 시설이 들어서는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법련사와 가까운 곳의 인사동은 화랑 거리로 평판이 높았다. 당시 갤러리 현대와 국제화랑 등의 유명 화랑들이 증축공사를 진행하고 있었고, 금호미술관도 법련사 곁으로 들어설 채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송광사와 법련사 측은 지하 1층과 지상 1층을 합한 공간을 ‘불일미술관’으로 낙점했다. 그 선택은 탁월했다.

개원 직후 현호 스님의 ‘인도성지 순례사진전’ ‘근세고승 유묵전’이 열렸다. 불교 정서가 담긴 작품들을 집중적으로 선보일 것임을 예고한 전시였다. 전통 불화는 물론 현대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도 유감없이 선보였다. 또한 개성 있는 신진작가 발굴에도 정성을 다했으며 열정 있는 작가들에게는 무료 대관해 주었다.

세월이 더해지며 유명 작가들과 신진 젊은 작가들이 더욱더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자연스레 미술관의 품격도 날로 높아갔다. 같은 작품이라도 불일미술관에 전시되면 무상·무아·공을 표현한 색채가 더 강렬하게 표출됐다. 시민들에게는 불교에 관심을 두도록 유도했고, 불자들에게는 전통문화뿐만 아니라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를 높여 주었다.

불일서점이 문을 열며 ‘절집 책방’이 늘기 시작했다. 해인사를 비롯해 서울 봉은사, 도선사가 경내에 간이서점을 두었다. 당시 불일서점은 전문서점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불서총목록’을 만들어 배포할 계획까지 세웠다. 1995년 새롭게 단장한 법련사의 불일서점에는 불교 서적뿐만 아니라 법문과 찬불가를 담은 테이프, 불교용품과 불교 전통을 살린 용품이나 판화 등의 소품도 전시했다. 이는 사찰의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2000년대를 전후해 전국의 주요 사찰 대부분은 경내에 불교서점을 마련해 불교 서적과 불교용품이나 예술 소품을 전시·판매했다.

불교 색채를 담은 월간 인쇄물이 전무하다시피한 때에 ‘불일회보’가 발행됐다. 8절 판의 4면으로 첫선을 보이며 무상으로 보급됐는데 발행되자마자 호평 일색이었다. 지면은 이내 8면으로 늘어났다. 송광사와 법련사 소식은 물론 연재, 교리강좌, 독자투고 난도 마련하며 다채로움을 꾀했다. 1980년 중반에 이르러서는 1만부를 발행했다. 43호부터는 유가 회원을 모집하며 송광사를 넘어 범불교적 포교지로의 격상을 도모했다. 기복 신앙에 치우친 불자들을 일깨운 ‘불일회보’의 역할과 가치는 실로 컸다. 뿐만 아니라 사찰이 설립한 첫 연구원인 보조사상연구원이 자리를 잡았던 곳도 법련사이며, 불일교양강좌를 통해 ‘수심결’ ‘진심직설’ ‘계초심학인문’ 등을 강의함으로써 보조사상과 선의 대중화를 꾀했던 곳도 법련사였다.

창건 50주년을 맞이한 법련사에 거는 기대가 오늘날에도 큰 이유가 있다. 광화문과 북촌, 인사동, 혜화동 등의 종로 일대를 아우르는 강북 도심 한복판의 ‘문화의 거리’에서 법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를 매개로 한 전법의 영향력은 실로 크다. 불자뿐만 아니라 불특정 다수에게도 직간접적으로 법을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법련사는 어린이·청소년 포교에도 정성을 들이며 사찰로써의 역할에도 무게를 싣고 있다. 향후 50년에도 법련사는 전법에 더 매진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1711호 / 2024년 1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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