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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과 불법을 등불 삼아

  • 청년 칼럼
  • 입력 2024.01.08 15:38
  • 수정 2024.01.08 15:39
  • 호수 1711
  • 댓글 0

한 해의 막바지에서 유한한 시간 속에 맺어진 인연과 왠지 모를 아쉬움들이 떠올라 내 시간을 가득 담아온 일기장을 펼쳤다. 2021년 초에 샀던 유치하게 생긴 분홍 일기장은 아직도 반절 이상이 못 채워지고 있었다. 아주 슬프고 아주 기쁘고 때론 미적지근하고 어떤 날은 그냥 심심해서 적은 낙서들이 그날의 시간과 날짜, 가끔은 날씨와 함께 적혀 있었다. 어떤 날의 기록에는 주변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에 잠식돼 내 세상, 나아가 이 세계가 불행하다는 독백이 기록돼 있었다. 다음 장을 넘겨 보니 내 일상에 감사하고 모든 것들이 사랑스러워 보인다는 긍정의 기록이 보였다. 두어 달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달라지는 변덕에 나는 항상 연말마다 왠지 모를 공허함과 씁쓸함, 그리고 기대감을 느끼는 나 자신을 떠올렸다. 순간, 매년 연말에 느끼는 이 감정들도 일기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변덕 같은 걸까 싶었다. 2021년과 2022년 이맘때 쓴 일기 속에는 항상 올해보다 내년에 더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날 거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의 나 자신에 집요하게 욕심을 부렸던 나였다. 그런데 돌이켜 봤을 때 “어제보다 나은 오늘의 내가 마음에 들었냐”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당당하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비교하는 순간부터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보다 조금 모자랐던 시절이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오늘의 나’가 ‘어제의 나’보다 월등하게 마음에 들지도 않았다. 이걸 알아차리니 왜 굳이 나 자신과 경쟁해야 하나 싶었다.

이젠 과거에 비해 더 나은 자신보다 그저 지금 떳떳한 자신이 되고 싶다. 더불어 이젠 새로운 시작이라는 단어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다가올 새해엔 문득 ‘또 다른 나’를 꿈꾸고 싶다는 바람이다. 어쩌면 지금부터 할 말이 새로운 시작의 다른 말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탄생’이라는 말에 집중해 보려 한다.

탄생. 쉽지 않다. 잉태되는 것도 세상으로 나오는 것도, 살아가는 것도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다. 살아지는 것인지 살아가는 것인지, 나의 의지일까 운명일까 궁금하다. 한 해의 마지막을 준비하며 든 생각은 어쩌면 사람들이 새해를 기다리고 마지막 달에 서로를 격려하고 포장하는 것도 이와 관련된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한 해를 마무리 짓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것 역시 또 다른 탄생이지 않을까. 그러니 우리 짚어가 보자. 새해에 새로워질 우리네의 탄생을 어떻게 축하하고, 사랑하고, 맞이할지.

우리는 2024년 1월의 시절인연으로 만났다. 더 이상 완벽한 자신을 위해 두려워하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드린다. 새로운 내 이데아의 탄생을 두려워하지 말고, 갓난쟁이일 때 첫 번째 탄생을 맞이했던 것처럼 시간을 재료 삼아 새롭게 마음챙김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올해 맺어질 갖은 인연과 사건에 힘이 빠질 수 있다. 우린 항상 연초에 희망을 바라보지만, 중반쯤엔 지쳐 있다. 언제 한 해가 끝나나 싶고,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우리네다. 자신의 삶이 남들 눈에 대단해 보이느냐는 중요치 않다.
 

유명 연설가들이 하는 말들을 흉내내는 것처럼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문장을 여러분께 부친다. 가끔 이 세계가 막막하고 인간관계에 치여 원망스러울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우리 자신만의 속도로 삶의 올을 감을 수 있길 바란다.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불법을 등불로 여기며 다시금 살아가는 우리네가 되길 소망한다. 새해를 맞이하여 재탄생할 여러분의 등불이 이어지고 이어져서 마침내 환희심으로 가득차길 소원한다.

한완정 작가 wanjung0419@naver.com

[1711호 / 2024년 1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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