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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하게, 정갈하게

기자명 희상 스님

미래에 대한 불안 가득한 세상
절에 와 정성껏 기도하는 이유
따뜻한 언어로 평안을 준 붓다
붓다의 차별 없는 따뜻함 존경

제 방에는 작은 칠판이 있습니다. 요즘 들어 깜박 잊는 일들이 잦은 탓에 벽에 작은 칠판 하나 걸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이 칠판에 “따뜻하게, 정갈하게”라는 단어를 적어 놓았습니다. 

그 단어가 참 좋습니다. 생각해 보면 스스로 생각이 많음을 꿰뚫어 알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마음은 수시로 대상을 옮겨가며 비교하기 급급합니다. 잠시 일어나는 생각에서 비롯된 갈애에 연연하며 그지없는 시간을 보낼 때가 무척 많습니다. 

저는 부산의 도심 속에 있는 한 작은 포교당에 있습니다. 이곳 포교당은 거리가 시끄럽고 또 분주합니다. 거대한 메가시티 안에 있다 보니 작은 포교당이어도 방문하는 다양한 분들을 통해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를 자주 접하게 됩니다. 

그들은 부처님을 바라보며 정성껏 절을 하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스님과 마주 앉아 대화할 때면 많은 분이 그러하듯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 가득합니다. 그 막연한 미래에 대하여 스님으로부터 좀 더 확신 있는, 긍정적인 말을 듣고자 하지요. 

마주 앉은 스님은 따뜻하게 들으려고 합니다. 또 따뜻하게 끄덕이려고 합니다. “생각처럼 잘 되느냐?”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솔직하게 그러하지 못한다고 스스로 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들어야지~! 잘 들어야지~!’라고 되뇝니다. 그리고 이미 나의 입은 내 주문대로 열심히 그리고 강렬하게 뭐라고 뭐라고 떠들고 있습니다. 이럴 때마다 ‘대념처경’에 말씀하신 ‘꿰뚫어 안다’라는 가르침을 수천, 수만 번 반복하며 탁마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더 간절해집니다.

요즘 틱낫한 스님의 ‘붓다처럼’이라는 책을 가까이에 두고 봅니다. 이 책은 붓다의 삶을 미화하거나, 기적들을 이야기하거나, 초자연적인 힘을 얻는 일들에 대해서는 철저히 배제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길 위에서 만나는 물을 긷는 소녀, 목동 그리고 여인들, 수행하는 비구들을 만날 때마다 따뜻한 언어로 친절하게 평안으로 이르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불가촉천민이었던 스바스티 목동에게 미소 지으며 부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이란 원래가 계급을 가지고 태어나는 게 아니란다. 모든 사람의 눈물이 너나없이 짜듯이 모든 사람의 피도 너나없이 붉은 거란다. 편견을 지니고 상대를 대하는 것은 옳지 못하단다.”

이 얼마나 인간적이고 정갈하고 따뜻한 말씀인가요? 천민 계급이었던 어린 목동 스바스티가 놀라 겁에 질린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왜냐하면, 이제까지 아무도 이렇듯 다정한 손길로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사람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붓다께서는 길 위에서 이것과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셨을 것이고, 붓다께서는 길 위에서 이것과 비슷한 들판과 동물들을 만나셨을 것이고, 붓다께서는 길 위에서 이것과 비슷한 흙길을 맨발로 걸으셨을 것입니다.’

붓다께서 열반에 드시고 2500여 년이 지난 지금, 오히려 요즘 사람들은 이 세상을 향해 ‘철저한 계급의 사회’라고 이야기합니다. 돈이 많아서 정말 살기 좋고 돈이 없어서 정말 살기 힘든, 그래서 절대적 계급 시대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합니다. 마치 영화 ‘설국열차’ 이야기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붓다를 존경하고 예경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당신께서는 당신이 택하신 길에 장애와 어려움이 가득할지라도 이러한 모든 장애를 극복하는데 필요한 힘과 용기를 가지고 있음을 스스로 알기 때문입니다. 

붓다께서 어린 목동에게 “얘야~! 너와 나는 똑같은 사람이란다”라고 따뜻하게 전하신 용기 있는 말씀처럼, ‘지금 여기’ 현재에도 모든 사람이 그들의 더할 수 없는 존엄성과 잠재력을 깨달을 수 있도록 서로 돕고 정진해야겠습니다.

오늘도 작은 칠판에 쓰여 있는 “따뜻하게~! 정갈하게~!”를 보며 이미 따뜻해진 방안 온기를 느낍니다. 

생각만 하여도 뿌듯한 나의 스승 부처님께 따뜻한 차 한 잔 올립니다.

희상 스님 부산 유연선원 주지 meine2009@hanmail.net

[1711호 / 2024년 1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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