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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과 상식만 통해도 ‘오아시스’

기자명 원상 스님
  • 법보시론
  • 입력 2024.01.15 13:04
  • 수정 2024.01.15 13:12
  • 호수 1712
  • 댓글 0

속리산 법주사에서 출가해 인생의 거반을 선원에서 보냈으며 어쩌다 사회복지 법인 연꽃마을에서 대표이사로 만 오년을 보냈다. 한 달 전 대표이사 소임을 내려놓고 속리산의 작은 토굴에서 한겨울을 보내고 있다. 올겨울 유독 춥고 눈이 많이 내리다 보니, 그리고 또 이런저런 이유들이 겹쳐 푸르름과 생명을 상징하는 ‘오아시스’가 문득 떠 올랐다. 

오래전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지금까지 보았던 한국 영화 중에서 순위를 꼽으라면 다섯 손가락에 넣을 수 있다고 스스로 이야기한다. 

중증뇌성마비장애를 가진 한공주(문소리 분)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2% 부족’하지만 해맑은 청년 종두(설경구 분)가 주인공이다. 이 둘은 가족에서도 사회에서도 소외된 외로운 존재들이다. 둘은 서로를 좋아하게 되었고 사랑을 나누지만 한공주의 가족들에 의해 경찰에 고발된 종두는 감옥에 가게 된다. 아마도 이 두 사람은 서로가 자신들의 인생에 있어서, 자신을 온전히 알아봐 준 첫 사람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이 두 사람의 사랑을 이기적인 가족과 편향된 사회적 통념이 갈라놓았다. 영화는 순수했기에 더 처절했다. 가슴이 가시에 찔린 것같이 아파오는 장면들이었다. 그렇게 슬픈 결말인 줄 알았는데 시간이 흘러 한공주에게 편지가 한 통 배달된다. 종두가 어설픈 한글을 꾹꾹 눌러쓴 해맑은 웃음 가득한 내용이다. 언제쯤 나가니 그때 만나러 가겠다는 이야기다. 가슴 아픈 이별로 끝나는 줄 알았는데 그 이별이 희망에 찬 새로운 시작이었다.

오아시스는 절박한 사막이 있기에 더 절실하다. 사막이 밤하늘에 빛나는 별과 더불어 낭만일 수 있는 것은 오아시스의 푸르름과 생명수가 있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동안거와 하안거를 해제하고 나면 설악산 봉정암을 찾아 참배하는 것이 내게는 하나의 의식과도 같았다. 보통은 백담사에서 자고 출발해 오세암에서 하루 이틀 묵고 봉정에 이르는데 여기서 한 이틀 소요하다가 신흥사 쪽으로 내려오곤 했다. 아니면 오색으로 내려와 오색온천에 몸을 담그면, 그야말로 ‘사막의 오아시스’가 부럽지 않았다. 그간에 뭉친 근육과 산행의 긴장감이 일시에 풀렸다. 

지금 ‘오아시스’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이선균 배우의 죽음 때문이다. 누구의 죽음이든 그 무게에 차이는 없겠지만 이선균 배우의 갑작스런 소식이 더 큰 충격을 주는 이유는 그 사람이 우리들 가슴에 깊이 들어와 있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서 이선균 배우가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던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이 배우의 죽음에 많은 사람들이 오열하고 안타까워하며 동시에 분노했던 더 큰 이유는 이 안타까운 죽음이 공권력의 과잉수사, 다수 언론의 여론몰이의 합작품이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평범한 국민의 바람은 별거 없다. 공정과 상식이다. 공권력은 우리들의 안전을 지켜주는 마지막 보루이고, 언론은 사회 곳곳에서 부패와 힘 있는 자들의 폭력을 견제하는 최일선의 감시망이다. 이러한 사회적 장치들이 제대로 기능을 하는 것이라는 믿음과 상식이 국민들의 기대치다. 그리고 이것이 공정한 사회라고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니 이번 일이 빙산의 일각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훌륭한 왕은 백성들이 자신을 다스리는 왕의 이름조차 모르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상식이 통하고 왜곡된 시선으로부터 벗어나 고단한 하루의 피로를 풀어줄 수 있는 곳, 평범한 국민들이 바라는 그런 오아시스는 우리 사회 어디에 있을까. 

부처님께서는 “자등명하고 법등명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청정한 지혜의 등불을 밝혀 어두운 곳 없게 하는 그 자리가 불자들에게는 오아시스가 아닐까 싶다.

원상 스님 bu7654@naver.com

[1712호 / 2024년 1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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