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질문의 힘

수행의 힘은 질문 할 줄 아는 힘이며
근원을 꿰뚫어 핵심 파악하는 안목
질문하는 삶은 주인으로 살려는 의지 
AI시대에 여전히 유효한 불교 가치

“내 이제 감로의 문을 여나니, 귀 있는 자는 들어라.”

석가모니부처님이 부다가야를 떠나 바라나시 녹야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야를 지날 때다. 이교도 우파까가 길을 막고 물었다.

“당신은 누구를 모시고 있으며 스승은 누구입니까. 누구의 법을 따르고 있습니까.”

부처님의 대답을 이해하지 못한 우파까는 머리를 가로 저으며 다른 길로 가 버렸다. 

그다음 부처님을 만난 사람은 뱃사공이었다. 그는 부처님에게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다. 그저 “뱃삯을 내야만 강을 건너 주겠다”는 말만 했다. 그는 부처님을 눈앞에 보고도 어떤 이익도 얻지 못했다.

오래전 인도성지순례 도중 ‘부처님의 첫 법음이 울려 퍼진 장소, ‘초전법륜 성지’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이 왜 녹야원의 차지가 됐을까’ 궁금했다. 성도지 부다가야에서 바라나시 녹야원까지는 직선거리로도 200km가 훌쩍 넘는, 서울에서 강릉에 이를 정도의 먼 거리다. 부처님께서는 그곳까지 걸어가셨으니 몇 날 며칠이 걸렸을 것이다. 그 여정에서 부처님을 본 사람도, 부처님이 본 사람도 부지기수였을 것이다.

하지만 부처님의 법음은 결국 녹야원에 이르러서야 울렸다. 물론, 부처님께서는 처음부터 법을 전할 대상자를 염두에 두고 계셨다. 하지만 ‘다섯 비구가 아니면 누구에게도 먼저 법을 설하지 않으리라’ 결심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200km를 걸어가는 동안 아무도 부처님의 첫 제자가 되지 못했다. 왜일까. 

이 의문에 대한 작은 실마리를 발견한 것은 부처님과 만난 이들의 질문이었다. 우파까는 부처님의 스승이 누구인지, 누구의 법을 따르는지를 물었다. 그의 관심은 눈앞에 나타난 지금의 이 사람이 아니라 이전의 관습과 전통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뱃사공 또한 부처님의 행색에만 관심을 기울이며 돈을 낼 수 있을지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의 생각은 한 걸음도 나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결국 그들 누구도 부처님이 누구인지, 부처님이 깨달은 법이 무엇인지를 묻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누군가 부처님에게 당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알고 있는지를 물었다면 부처님께서는 기꺼이 법을 설하셨을 것이다. 어쩌면 부처님께서는 누구든 먼저 법을 묻고, 구하길 간절히 바라셨는지도 모른다.

불교는 질문의 종교다. 부처님의 첫 제자들은 “당신은 타락하지 않았냐?”고 당돌하게 묻던 다섯 비구였다. 부처님의 마지막 제자 또한 법에 대해 의심나는 것을 물어보고자 부처님을 찾아온 늙은 바라문 수밧다였다. 중국의 선불교는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화두와 선사들의 치열한 질문과 대답 속에서 꽃을 피웠다. 티베트불교는 정법을 파괴하려는 이교도들의 날선 질문을 오직 설법과 논리로 격파하는 대론의 힘을 바탕으로 세계로 뻗어 나갔다. 질문하지 않고는 법을 구할 수 없는 종교, 청법가가 모든 법회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종교가 불교다. 부처님께서는 입멸에 들기 직전까지도 제자들에게 질문이 없는지 거듭 물으셨다. “부끄러워 직접 묻지 못하겠거든 벗을 통해서라도 빨리 물어라. 뒷날에 후회가 없도록 하라.” 부처님은 초전법륜을 위해 길을 떠나던 그날처럼 마지막 입멸의 순간까지도 질문을 기다리고 계셨다. 

원영 스님은 최근 출간한 책 ‘비울수록 넓어지는 내 마음의 크기’에서 “불교에서 말하는 수행의 힘은 결국 근원적인 질문을 할 줄 아는 힘이며, 근원적인 것을 꿰뚫어 핵심을 파악하는 안목”이라고 정의했다. 

남수연 국장
남수연 국장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삶에 질문은 필요 없다. 질문하는 삶은 주인공으로 살아가겠다는 의지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그러니 불자들은 끊임없이 스님들에게 법을 물어야 하고 스님들 또한 불자들이 법을 묻도록 노력해야 한다. 인공지능 AI시대 종교가 과연 존속할 것인가를 궁금해하는 사람도 있다. 모든 질문에 답을 갖고 있다는 인공지능이 불교에 득이 될지 화가 될지를 아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질문하는 능력, 그 능력을 키우는 것이 곧 불교의 힘이며, 인공지능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불교의 가치를 드러내는 가장 큰 동력이 될 것은 분명하다.

namsy@beopbo.com

[1712호 / 2024년 1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