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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가짜에 관한 어떤 인상적인 학설

말이 지닌 유연한 의미 알면 진실 아님이 없네

오래전 한 교수는 “가짜에 대해 알면 유식학 거의 다 안 것” 갈파
세상 모든 말이 은유적 표현이라면 그 말로 가르쳐진 것도 가짜
우리는 환과 같은 말 갖고 환과 같은 일을 끝없이 지어내고 있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든 것엔 다 이름이 붙여져 있다. ‘장미’라는 이름은 아름다운 빛깔과 형태, 매혹적인 향기, 날카로운 가시를 가진 어떤 식물을 가리키지만, 때론 치명적 매력을 지닌 여인을 가리키기도 한다. 출처=pxhere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든 것엔 다 이름이 붙여져 있다. ‘장미’라는 이름은 아름다운 빛깔과 형태, 매혹적인 향기, 날카로운 가시를 가진 어떤 식물을 가리키지만, 때론 치명적 매력을 지닌 여인을 가리키기도 한다. 출처=pxhere

나는 산만한 정신의 흐름 속으로 문득 끼어든 어떤 순간적 접촉에 의해 무엇인가를 하기로 결심하곤 한다. 오래전 내가 아직 학위논문의 주제도 정하지 못했던 시절, 고(故) 원의범 선생님이 내가 다니던 학교로 몇 년간 외부 강의를 하러 오셨다. 그분이 어느 날 수업 중 뭔가 회상하는 듯한 표정으로 이렇게 전해주셨다. “우리 선생님(김동화 박사)이 말씀하시길, 가짜[假]에 대해 알면 유식학을 거의 다 안 것이나 다름없다.” 초보 불교학도였던 나는 어떤 황홀감 속에서 그 말의 의미를 다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처럼 즉각 받아들였다. 그것은 마치 아주 오래전 존재했던 누군가가 못다 한 과업을 이루기 위해, 혹은 영감을 불어넣기 위해, 후대 사람의 무뎌진 정신 속에 갑자기 끼어든 것처럼 느껴졌다. 그 한마디의 후속 결과물이 나의 박사학위논문인 ‘성유식론의 가설(假說, upacāra)에 대한 연구’이다. 나는 내 인생의 중요한 과제를 그러한 영혼의 공조 속에서 완수했다고 생각하면 왠지 뿌듯해진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미륵의 후예들이 계속해서 생각하고 말해야 할 것들의 목록 맨 앞에 그 ‘가짜’라는 단어가 놓여 있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그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길 꺼린 이유를 하나만 대보라면 이런 것이다. 미륵의 후예들은 자신들의 학설에 대해 말할 때마다 한 치의 반박도 허용치 않는 논지를 설파하려 한다. 그것이 오히려 사람들과의 소통을 가로막기도 한다. 내가 가장 피하고 싶은 상황은 이런 것이다. “학식 있는 천문학자의 말을 들었을 때, 증거들과 숫자들이 내 앞에 줄지어 나열되었을 때…나는 어찌나 빨리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피곤해지고 지루해지는지, 일어나 살며시 빠져나와, 신비롭고도 축축한 밤공기 속을 혼자 거닐며, 이따금 완벽한 침묵 속에 있는 별들을 올려다보았다(‘휘트먼 시선’).” 그래서 나는 남들의 흥미를 끌려고 다소 몽환적인 글을 써 왔는데, 실은 저 ‘가짜’에 대한 학설에 크게 기대고 있다. 이제 새 해를 맞이해, 옛 스승에 대한 부채 의식도 덜어낼 겸, 저 가짜에 대한 몇 편의 글을 연재해 보려 한다.

‘가짜’란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모든 말[言], 그리고 그 말로 가리켜지는 모든 대상[義]을 가리킨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든 것엔 다 이름이 붙여져 있다. ‘장미’라는 이름은 아름다운 빛깔과 형태, 매혹적인 향기, 날카로운 가시를 가진 어떤 식물을 가리키지만, 때론 치명적 매력을 지닌 여인을 가리키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독사’라는 이름은 원통형의 가늘고 긴 몸에 맹독을 가진 어떤 파충류를 가리키지만, 때론 위험하고 사악한 사람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러니까 하나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그 이름으로 인류가 오랫동안 축적해 온 공통적 경험과 습관과 가치관 등을 아는 것이다. 이러한 언어 사용에 익숙해지면, 우리는 눈앞에 현전해 있는 어떤 것을 보고도 그 이름을 모르면 그것을 ‘모른다’고 한다. 혹은 그 이름을 안다는 것만으로 그 실체를 안다고 착각하면서, 때론 그것을 맹목적으로 추앙하거나, 때론 경솔하게 가혹한 심판을 내린다. 미륵의 후예들은 이러한 언어적 전도(顚倒)의 폐해에 특별히 주목하였다. 그들은 말과 그 대상에 대한 온갖 실재론적 집착을 깨뜨리고, 모든 것을 ‘유식’으로 귀결시키고자 하였다.

이쯤에서 이런 의문들이 들 수 있다. 저 말과 그것이 가리키는 대상들을 어째서 ‘가짜’라고 하는가. 그에 대한 가장 간단명료한 대답은 세친(世親)의 ‘유식30송’ 중 첫 번째 게송에 나타나 있다. 그는 우주가 더 쪼개질 수 없는 극미들로 이루어졌다는 학설에 심취했다가 이윽고 자기 형의 영향을 받아 미륵의 후예로 거듭난다. 얼마 후 그는 후대 유식 사상의 새로운 문을 활짝 열어젖히는 비밀의 열쇠가 될 게송을 짓는다. 그 첫 번째 게송의 3구에서 이런 밀의를 설한다. ‘세상에서는 아(我)와 법(法)으로 대변되는 갖가지 종류 가설이 행해진다. 그 가설은 식(識)이 변현해 낸 영상에 의거한다(‘성유식론’ 제1권).’ 옛 주석가들에 따르면, ‘가설’이란 은유적 표현을 뜻한다. 세상의 모든 이름은 본래 가짜 이름이고, 은유적 가치밖에 지니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이름은 ‘마치…처럼 나타난 것[似現]’, 다시 말하면 나의 ‘식’이 변현해 낸 환영들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가짜에 대한 가장 인상적인 주장으로, 그 취지를 조금 쉽게 풀이하면 이런 것이다. 나는 오늘 낮에 느리고 둔하게 걸어오는 한 친구를 보면서 ‘곰이 온다’고 말한다. 평소엔 그를 ‘박아무개’라고 부른다. 이때 ‘곰’이라는 가짜 이름뿐만 아니라 ‘박아무개’라는 본래 이름 역시 모두 가짜이자 은유적 표현이다. 가령 내가 느린 걸음의 그를 ‘곰’이라고 은유적으로 표현할 때, 나는 곰이 없는 곳에 마치 곰이 있는 것처럼 저 곰이라는 가짜 이름을 상정한다. 놀라운 것은, 내가 평소의 그를 ‘박아무개’라는 본래 이름으로 부를 때도 그러했다는 것이다. 나는 20년 전 몇 월 며칠, 그저께 아침, 오늘 낮, 방금 1초 전에 달리 현현했던 일군의 환영들의 유사성을 가리켜 ‘박아무개’라고 불러왔다. 말하자면 나는 박아무개라는 단일한 주체가 없는 곳에 마치 그것이 있는 것처럼 그 가짜 이름을 상정한 것이다. 미륵의 후예들에 따르면, ‘A가 없는 곳에 마치 A가 있는 것처럼 A라는 가짜 이름을 상정하는 것’이 바로 은유적 표현이다. 가령 사람, 왕, 수행자, 나무, 장미, 책상, 동전, 빗방울, 번개, 믿음, 희망, 숫자 1, 2024년, 수요일 등등도 모두 그러하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말이 은유적 표현이라면, 그 말로 가리켜진 모든 것들도 가짜다. 그것은 ‘마치…처럼 나타난 것’, 즉 나의 식이 변현해 낸 환영들이기 때문이다.

저 가짜에 대한 학설은 철학사의 한 획을 긋는 파격적 주장으로, 내게는 한없이 자유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만약 하나의 말과 하나의 실재가 필연적으로 들어맞게 되어 있다면, 이런 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세상의 모든 말의 정확한 발음을 그대로 따라 하며 살아가는 것뿐이리라. 그러나 미륵의 후예들이 가르친 대로 세상을 관찰하다 보니, 내가 스스로 환술사가 되어 환과 같은 말을 가지고 환과 같은 일을 끝도 없이 지어 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곳에선 나는 가끔 어떤 반박도 허용치 않는 논문을 쓰고, 혹은 남의 흥미를 끌려고 몽환적 이야기를 지어내지만, 어쨌든 내 말이 절대적 진리라고 강변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나의 가짜 말들은 언제나 실상과 어긋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모든 가짜 말은 나름대로 은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만약 누군가 내 말의 유연한 의미를 알아준다면, 나의 모든 가짜 말도 진실 아님이 없으리라. 또 만약 옛 스승의 한마디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나의 한마디가 다른 누군가의 정신 속에 끼어들어 뜻밖의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면, 그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백진순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 dharmapala@hanmail.net

[1712호 / 2024년 1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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