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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절 수행, 얻은 것은 세상의 행복과 나눔 “그거면 충분하죠” 

  • 무진등
  • 입력 2024.01.16 09:10
  • 수정 2024.01.16 09:12
  • 호수 1712
  • 댓글 0

매일 108배 수행 150만배 회향한 주근호 불자

1월 1일, 절수행 20년 150만배 회향
종교도 없이 호기심에 무작정 시작

성철 스님 책 접하고 3000배 욕심
100만배 원력 세우고 불교대학도 등록

아내 건강 회복 등 기묘한 경험 잇따라
10년간 사찰 8곳 먹거리 나눔으로 회향

호기심에 시작한 절 수행은 하나 둘 쌓여 주근호 불자의 삶을 전혀 다른 길로 이끌었다. 올해 1월 1일 150만배를 회향한 그는 77세의 나이에도 끊임없이 절 수행을 이어갈 것이라 약속하며 미소지었다.
호기심에 시작한 절 수행은 하나 둘 쌓여 주근호 불자의 삶을 전혀 다른 길로 이끌었다. 올해 1월 1일 150만배를 회향한 그는 77세의 나이에도 끊임없이 절 수행을 이어갈 것이라 약속하며 미소지었다.

20년째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을 108배로 시작하는 주근호(77, 일법) 불자. 2024년 1월 1일도 평소와 다름없이 향을 사르고 절을 올렸다. 마지막 108배를 마치고 일어서자 볼 위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고 가슴은 환희로 가득 차올랐다. 절 수행을 시작한 지 20년이 되는 날이자 150만배 회향의 순간이었다.

“숫자에 연연하지 않지만, 그날만큼은 잊을 수 없죠. 절수행을 하면서 나를 찾아온 신비한 일들이 이날도 똑같이 일어났으니까요. 잘 아는 스님에게 물어보니 업장이 소멸된 거라고 기도한 보람이 있다고 하셨죠. ‘아, 내가 헛절, 헛 수행을 한 건 아니었구나’ 싶었습니다.”

종교도 없던 그가 절수행을 시작한 건 순전한 호기심이었다. 아내와 영취산으로 가는 버스에서 향일암을 참배한 보살들이 주고받은 말이 계기가 됐다. “간절하게 절을 하면 소원성취돼. 내 남편이 산증인이야.”

자영업자에게 시간은 돈이었다. 궁금증이 일었지만, 생계가 먼저였다. 절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차츰차츰 사라져갈 즈음이었다. 도봉산에서 원통사 신도를 마주쳤다. 문뜩 보살들의 대화 내용이 떠올랐다. 신도를 붙잡고 108배는 어떻게 하는 건지 물었다. 그러자 자기 손에 들린 염주를 보여주며 “108염주를 가지고 하면 된다”고 했다. 1년 뒤 2004년 1월 1일, 가족과 함께 찾은 양평 용문사에서 염주를 구매한 그는 다음날 108배에 들어갔다. 발원이 무엇인지, 복을 받는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아는 것 하나 없는 자의 수행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산행을 좋아하기에 체력은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는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인생 첫 108배를 마친 그는 이불 위에 그대로 쓰러졌다. 땀으로 이미 옷은 축축해진 상태였다. 쉽게 생각했던 절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108배를 만만하게 본 대가는 근육통으로 찾아왔다.

108배를 계속 이어오던 어느 날 불교에 관심이 생긴 그는 성철 스님의 책을 한 권 읽었다. 스님과 한 보살의 3000배 일화가 담겨있었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내 욕심이 생겼다. 줄곧 108배만 해오던 그에게 3000배라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5월 16일 삼각산 도선사에서 첫 3000배를 올렸다.

108배를 마칠 때마다 바둑알을 옮기며 숫자를 셌다. 6개쯤 되었을까. 한계가 왔다. 정신이 멍해져 돌을 어디로 옮겨야 하는지도 헷갈렸다. 그래도 이를 악물었다. 엉덩이부터 굳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아직 1000배도 못 했는데 멈출 수 없었다. 아무런 생각 없이 무작정 절을 올렸다. 요령도 없었다.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 시작한 그의 첫 3000배는 장장 9시간 20분이 걸려서야 끝이 났다. 시작이 어려울 뿐이지 하다 보니 요령도 생겼다. 시간도 조금씩 단축되면서 재미를 붙였다. 도선사, 화계사, 조계사 등 사찰 곳곳을 찾아 절 수행을 이어갔다. 절 100만배 원을 세운 것도 그때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절을 할 때 그냥 부처님 명호를 외거나 가족 이름을 속으로 불렀죠. 아무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절을 했다고나 할까요. 안면을 튼 신도들에게 무슨 생각하면서 절을 하냐고 물었어요. ‘거사님은 어떤 발원을 세우셨어요?’라고 반문하더군요. 말문이 턱 막혔어요. 아차 싶었어요. 알아야겠다 싶어서 화계사 불교대학에 등록했죠.”

3개월 기초교리 수업을 듣고 불교대학 2년도 추가 수강을 했다. 당시 화계사 불교대학은 매달 4번째 토요일 3000배 철야정진을 했다. 그도 기꺼이 동참했다. 가게 일로 바쁜 와중에도 주말에는 화계사를 찾아 3000배를 했다. 대적광전이 문을 닫는 9시가 넘으면 집에 와서라도 그 수를 채우고 하루를 마감했다. 그의 정진은 쉼이 없었다. 매일 108배와 매주 3000배가 그의 수행노트에 하나둘 쌓여갔다.
 

20년간 빼곡하게 적어간 수행노트.
20년간 빼곡하게 적어간 수행노트.

108배를 매일 했지만 3000배는 쉽게 몸에 익지 않았다. 몸 구석구석이 굳었고, 자세는 계속 무너져 내렸다. 땀은 비 오듯 쏟아졌고 한 배 한 배 올리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다. 머리속은 번뇌로 들끓었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3000배 수행을 한다고 해서 칭찬해 줄 이도 없었다. 방석에 얼굴을 묻었다. 그는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은 여러 번 찾아왔다. 도반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나 혼자만의 고독한 수행이기에 동력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서서 합장하고 무릎을 굽히고 머리를 바닥에 댄 채 두 손을 들어올리는 단순한 동작의 반복이 전혀 힘이 들지 않았고 오히려 가뿐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3000배를 마쳤음에도 대적광전 문은 열려있었다. 시계를 보니 8시였다. 3000배까지 5시간 30분밖에 걸리지 않은 것이다. 절 수행 4년 6개월에 접어드는 날이었다. 탄력을 받은 그는 더 열을 올렸다. 마음에도 여유가 생겼다. 사람이 느긋해지고 주변에서 인상이 좋아졌다는 말도 드물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에게 발원이 생겼다. ‘모든 이들의 행복’을 발원하는 간절한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고, 2012년 3월 100만배 절 수행을 회향했다. 이 소식을 들은 화계사 불교대학 14기 도반들이 화계사에 회향 축하 현수막을 걸었고 주지 수암 스님도 쉼 없이 정진하라는 뜻을 담아 죽비를 선물했다.

목표를 달성하면 동력을 잃기 십상이지만 100만배에서 그의 수행은 그치지 않았다. 믿기 힘든 기묘한 경험이 주근호 불자를 끊임없이 절 수행의 길로 이끌었던 것이다.

“누님과 함께 서울로 올라오는 길이었어요. 예상대로면 8시에 도착했어야 했는데 충청도에 들어서자마자 버스가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어요. 말 그대로 주차장이 됐죠. 그날따라 정신이 없어 아침에 108배를 못한터라 조마조마하고 짜증까지 났죠. 남 탓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잖아요. 아쉬움에 눈을 감고 있었는데 그 순간 고속도로가 뻥 뚫렸어요. 누님과 저는 기뻐서 손뼉까지 쳤어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은 한번이 아니었다. 당시 그의 아내는 유방암으로 가슴 절제술을 받은 상태였다. 검진 차 찾은 병원에서 암이 간으로 전이됐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의사는 2년 반밖에 살지 못한다며 수술은 불필요하다고 했다. 하늘이 노래지던 순간 환자를 연구 대상 목록에 등록해 줄 수 있냐고 했다. 대학병원은 새로운 치료 전략을 위해 신약 임상 실험 중이었다. 간절하게 절수행에 매진했다. 그리고 얼마 후 아내의 가슴을 빠는 꿈을 꿨다. 젖이 아닌 검정 물이 철철 흘렀다. 암 덩어리는 그 이후로 더 이상 커지지 않았다.

복통으로 힘들어하던 매형은 2020년 췌장암, 폐암, 뇌암 판정을 받았다. 2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매형은 갈수록 혈색을 잃어갔다. 그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냥 묵묵히 기도를 하는 것뿐. 퇴근 후 조계사를 찾아 절을 올렸다. 같은 발원이었다.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하길 단지 그 앞에 매형의 이름만 붙였다. 소름이 돋았다. 2개월이 지나도 멀쩡했다. 다시 웃음을 찾은 매형은 2년 후 가족의 곁을 떠났다.

“산에서 굴러떨어졌는데 나무에 걸려서 구사일생했어요. 우리 가족 일도 그렇고 이 모든 게 부처님 가피라고 생각해요. 보이지 않지만 언제 어디서나 불보살님이 나를 바라봐주고 지켜준다는 느낌을 받곤 하죠. 신심은 굳건해지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주근호 불자가 100만배 회향을 맞아 도반들과 절을 올리고 있다.
주근호 불자가 100만배 회향을 맞아 도반들과 절을 올리고 있다.

100만배 회향과 함께 그는 새로운 활동에 나섰다. 산 중턱에 위치해 식재료 조달이 힘든 사찰을 찾아 반찬 재료를 전달하기로 했다. 매주 제철 나물들을 한아름 들고 찾아갔다. 티는 내지 않았다. 조용히 공양간에 내려놓고 돌아섰다. 문수사, 만월암, 천축사 등 8곳의 사찰에 올해까지 총 301회의 반찬거리를 전했다. 빵을 구매해 퇴근 후 서울역 노숙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10년간 들인 비용의 총액을 보면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다. 그는 “절수행을 하면서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남에게 조금이라도 베푸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서원했다. 단순하다. 그냥 작은 도움이 되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150만배를 회향한 올해 그의 나이 77세다. 곧 여든을 바라보는 그에게 앞으로의 수행생활을 물었다. 그러자 그는 성치 않은 무릎을 만지며 “관절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엎드리고 또 엎드리겠다”고 눈이 휘어지도록 웃었다.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노래도 있잖아요. 수행에 나이가 어디있나요? 10년 후에도 15년 후에도 나는 오늘과 똑같은 모습일 겁니다. 남을 위해 기도하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니까요.”

동도 트지 않은 새벽, 그는 어김없이 방 한구석에 좌복을 깔고 향을 사른다. 한 배 한 배 정성껏 올린다. 모든 이들이 행복하길 발원하면서.

김민아 기자 kkkma@beopbo.com

[1712호 / 2024년 1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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