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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와의 아침

기자명 하림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24.01.16 09:15
  • 수정 2024.01.16 09:17
  • 호수 1712
  • 댓글 0

강아지 간절함에 풀어준 목줄
이내 사라져 걱정·불안만 가득
마음작용 끄달려 발생한 결과
상황에 맞는 행동 깨달은 계기

함께 살고 있는 일봉 스님과 아침공양을 하는데 봄이(함께 사는 강아지)의 짖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려다가 자꾸 마음에 걸립니다. ‘뭐가 나타났나?’ ‘고양이를 보고 짖는가?’ 그러다가 결국 설거지를 부탁하고 봄이를 보러 갔습니다. 갔더니 얌전하게 앉아있습니다. 지금 돌아보니 거기서 멈추었어야 했습니다.

좀 더 다가가니 봄이가 반응을 보입니다. 반갑다고 뛰며 나가서 놀게 해달라고 끙끙거립니다. 그 모습을 보고 참지 못해 결국 목줄을 해 내려왔습니다. 아래층 공양간에서 놀면 되겠지 싶어서 데리고 들어갔더니 그 정도로 만족하지 못하나 봅니다. 다시 바깥으로 나가자고 문 앞에서 시위합니다. 또 그 마음을 견디지 못해서 다시 데리고 나갔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달리고 싶다며 풀어달라고 난리입니다. ‘이건 안 되는데!’라고 생각하다가 조르는 봄이의 모습에 고민이 길어집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직 아침 7시 반이라서 사람들 왕래가 안 보입니다. ‘그래. 그렇게 원하는데 잠시 풀어주자!’ 절 앞 명상센터에 데리고 들어가 결국 목줄을 풀어줬습니다. 그리고 얼른 나가 보았더니 이미 흔적이 없습니다. 어디론가 멀리달려가 버렸습니다. 

시내라서 주변에 산책을 나오거나 불편해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 ‘다른 작은 강아지와 만났을 때 다투지 않을까?’ ‘길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누가 데려가지는 않을까?’ 온갖 걱정이 일어납니다. 집 나간 자식 걱정하는 부모 마음 같습니다. 갑자기 예전에 차에 치이는 바람에 많이 다쳐 치료했던 기억이 걱정과 불안을 더 부추깁니다.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으로 나가서 불러도 봅니다. 주변에 모텔도 있고 내가 주인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면 창피하다 싶어 아주 작은 소리로 불러봅니다. “봄이야, 봄이야!” 당연하게도 아무 기척이 없습니다. 애쓰는 마음만 안고 다시 센터로 들어왔습니다. 

잠시 나의 행동을 돌아봅니다. 내가 무엇을 참지 못하나 살펴보니 누군가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볼 때입니다. 그때 일어나는 ‘그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크고, 그것을 하지 못할 때는 애가 쓰여 견디기 힘들어합니다. 반면 도와주었을 때는 ‘기분이 좋고’ 뭔가 ‘내가 역할을 해냈다’라는 존재감이 느껴지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았다’ 하고 믿는 겁니다. 이 마음이 작용을 일으켜서 결국 강아지를 풀어주게 되었고 풀어주고 나서는 그런 나를 후회하고 자책하는 마음과 동시에 걱정과 근심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까지 온 것은 어떤 순간에 내가 마음을 멈추지 못해서였을까요? 돌아보니 봄이가 나가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볼 때 내 안에서 일어나는 ‘그를 도와주고 해결해 주고 싶어 하는 마음’에 걸리고 집착하여 벗어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마치 물고기가 헤엄치다가 미끼를 보고는 그것이 괴로움으로 가는 것임을 알아차려서 멈추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끌려가는 것과 같아 보입니다.

이 과정을 붓다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실까요? 모든 근심과 걱정으로 가는 길은 갈애, 즉 즐겁고 기분 좋은 느낌을 다시 경험하고 싶어서 시작된다는 ‘고집멸도’로 설하고 계십니다. 내가 봄이를 풀어준 이유는 풀어주었을 때 봄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도와주었을 때의 기분 좋은 느낌을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을 반복하게 된다면 근심과 탄식을 경험하는 삶은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붓다의 명상은 내가 봄이의 나가고 싶다고 조르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 마음이 일어난 것을 알아차리고 그 마음에서 그 마음이 사라질 때까지 그 마음을 놓치지 않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마음은 사라져갑니다. 그 후 상황에 맞게 행동한다면 지혜로운 판단과 행을 할 수 있습니다.

한동안 걱정과 불안 속에 빠져 있는데 봄이가 돌아왔습니다. 불안과 걱정은 사라졌지만 이것을 계기로 원인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다음에는 어떻게 대처할지 알게 되었습니다. 왜 그런 것을 반복하는지 보고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붓다에게 감사드립니다.

하림 스님 부산 미타선원장 whyharim@hanmail.net

[1712호 / 2024년 1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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