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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무심정사 주지 도안 스님

보살의 생각·언어로 살아간다면 이곳이 곧 정토

목표한 것 성취해야만 행복할 것 같지만 그 과정에도 행복 있어
불자라면 ‘상구보리 하화중생'으로 중생 살피는 공덕 쌓아야
진흙 속에서도 피어나는 연꽃처럼 세상을 맑히는 삶 살아가길

도안 스님은 일상에서 부처님 가르침을 공부하고 터득하고 실천하겠다는 원을 세우고 매일 이를 점검하는 수행을 하다보면 그것이 곧 행복임을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도안 스님은 일상에서 부처님 가르침을 공부하고 터득하고 실천하겠다는 원을 세우고 매일 이를 점검하는 수행을 하다보면 그것이 곧 행복임을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누구나 자신이 정한 목표를 이루고 나면 행복하다고 느낍니다. 가령 설악산 봉정암에 올라 기도하고자 하던 사람은 봉정암에 도달한 자체로 행복을 느끼게 되고,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목표한 산 정상에 오르면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이처럼 무엇인가 원하는 것을 이뤘을 때 행복을 느낀다고 합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오르는 과정도 행복한 일입니다. 다만 스스로 목적에만 매몰돼 그 과정이 힘들다고만 생각할 뿐, 정작 그 과정에서도 느껴야 할 행복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과정 역시 행복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어떠한 일을 목표로 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한평생을 살다가 가는데, 왜 사람으로 태어났는지, 또한 스스로 이곳에 왔는지 아니면 무언가에 이끌려 왔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어떤 이유로든 이곳에 오게 됐는데, 그렇다면 이곳에 온 목적에 맞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인간으로 이 지구에 온 이유에 맞게 살고 있다면 바른길을 찾은 것이므로 그것으로 진정한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원인도 모르고 결과도 모른 채 한평생 업력에 끄달려 살아간다면 미래가 불투명하여 늘 괴롭고 허무하고 불안정할 수밖에 없어 행복을 알 수 없게 됩니다.

등하불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삶이 그런 것 같습니다. 이미 선조들이 물려주신 생활풍습에 인생의 진리가 다 녹아 있음에도 그것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 꼭, 등잔 밑이 어두운 그런 형국입니다. 

우리는 이곳에 온 날, 즉 생일을 ‘생신(生辰)’이라고 합니다. 한자로 날 생자, 별 신자를 씁니다. 그래서 선조들은 우리를 천손민족이라 했으며 별, 즉 북두칠성에서 왔음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그런가하면 반대로 우리가 가는 날, 즉 사망일을 남은 이들은 기일이라고 하여 추모합니다. 기일을 다른 말로 ‘기신일(忌辰日)’이라고도 합니다. 자손들이 선대의 제사를 지낼 때 지방에 현고학생(顯考學生)이라고 쓰는데, 이때 학(學)자는 ‘臼(의식, 무의식)+ 爻(잠재의식)+ 冖(밀멱, 덮을멱)+ 一(한, 하나, 한번)+ 了(마쳤다, 밝다, 깨닫다)’는 의미로, ‘의식, 무의식, 잠재의식을 밀어(덮어)버리고 한 생을 마친 새로운 일생’이라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입적·열반·적정에 버금가는 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것은 선조들이 ‘북두칠성에서 내려와 열심히 공부하여 터득하고 공덕을 지어 칠성으로 돌아간다는 말이며, 자손들의 염원으로 칠성판을 깔아 칠성으로 돌아가기를 발원했던 것’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지구에 온 목적은 사람(史覽)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역사를 보아야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나, ‘참나를 찾으라’는 말과도 상통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칠성에서 내려와 열심히 진리를 공부하여 터득(깨달음)하고 다시 칠성으로 돌아가야 하니 우리는 이곳에 공부하러 온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현고학생’이라 표현했으며 칠성판을 깔아 발원하며 효도를 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칠성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공부해서 진리를 터득하고, 살아생전에 지은 공덕으로 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곧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뜻이 담겼습니다. 진리를 찾아가는 데는 세 가지의 길이 있습니다. 

첫째는 과학을 통한 지식의 길이고, 두 번째는 철학을 통한 이성의 길이며, 세 번째는 종교를 통한 귀체(歸體)의 길입니다. 귀체는 본체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상구보리는 진리를 탐구하여 터득하라는 말이고, 하화중생은 사섭법으로 중생을 보살펴서 교화하라는 말입니다. 무심정사에서는 법우 간에 서로 “염불합시다” “보살핍시다”라고 인사했던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또 염불에는 공부가 포함됐기에 최근에는 “공부합시다” “보살핍시다”로 바꾼 것입니다. “성불하십시오”보다는 더 와 닿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상구보리 하화중생을 직시한 표현이기도 합니다. 

우리 불자들은 이처럼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목적을 갖고 살아야 참다운 불자라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삼세 인과 가르침인 인과법의 진리를 철저하게 공부하고, 사홍서원과 사섭법, 육바라밀을 실천해야 합니다. 더불어 본인이 태어난 생일날과 칠월칠석 등에 지극한 마음으로 불공을 하여 중생을 보살피는 공덕을 쌓아야 합니다. 

우리가 온 곳과 갈 곳, 해야 할 일 있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 공부하고 터득하여 공덕을 짓고 중생을 보살펴야 합니다. 그리하여 허공을 배회하는 중음신으로 낙오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과정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삼계의 도사이시고 사생의 자부이시며 우리의 본사이신 석가모니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면 진리를 터득하고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모든 부처님은 우리가 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안내자입니다.

백두산에 오르는 목적이 같다면 북파나 서파나 각자 인연 따라 가는 길로 가면 됩니다. 내가 가는 길만이 옳다고 고집하지 않고, 집착하지도 않으며, 또한 남의 길을 비난하지도 않으면서 꾸준히 올라가다 보면 천지(진리)는 하나인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 불자들은 헛된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공부하는 불자, 터득하는 불자, 보살피는 불자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공부하고, 터득하고, 보살피는 불자가 되겠다는 세 가지 목표를 세우고 나면 수행이 필요합니다. 

첫 번째는 사마타(止, 명상) 수행으로, 막혀버린 자신의 생각을 뚫어서 마음을 자유롭게 하는 수행을 해야 합니다. 마음을 자유롭게 놓아두면 마음이 위험한 곳으로 갈 수 있으나, 수행의 힘으로 이를 직면하게 되면 별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쓸데없는 생각과 고민을 덜어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위파사나(觀, 문법) 수행으로, 부처님 말씀에 따라 삶을 관하는 것입니다. 즉 부처님의 말씀(법문)을 듣는 것으로, 그것이 내 생각과 내 상식을 넓혀줘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할 것입니다.

세 번째는 천업공덕(穿功, 보시) 수행으로, 사마타를 통해 원이 명확해지고, 위빠사나를 통해 지혜로워졌다면 말과 행동으로 현실을 바꿔야 합니다. 하지만 집착이 말과 행동을 방해하기 때문에 집착을 버려야 하는데, 천업(穿業) 보시만이 집착을 버리게 하므로 천업보시와 함께 불공으로 공덕을 쌓아 돌아갈 길을 밝혀야 합니다. 

네 번째는 해신천도(度) 수행으로, 조상님과 신들을 풀어 드려야 됩니다. ‘아바 로기데 스바라(常談)’라고 하는데, 여기서 아바는 부모·창조·능생이며, 로기데는 수호천, 스바라는 감시·감독입니다. 이분이 우리의 부모이며 관세음보살이고 마고할머니입니다. 이분의 가피력에 의해 우리의 뿌리인 조상님과 신들을 풀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심정사에서는 매월 일주일은 해신기도를 하고 회향일 천도재를 올리며 연중 8회의 칠성하강일 불공을 올리는 공덕 수행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사마타로 쓸데없는 생각을 날려 보내고, 진짜 자기 생각(원, 양심)만 남게 하여, 위파사나로 넓어진 상식을 갖게 하며, 천업공덕을 바탕으로 말하고 행동하게 해 원하는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 공덕을 쌓아 내가 나의 구원자가 되며, 해신천도로 조상님과 신들을 풀어 드려 모든 나의 존재 원인에 대해 보은하는 수행을 해야 합니다. 무심정사에서 진정한 행복(진리)을 찾는 수행을 권하는  이유입니다. 

‘모든 악을 짓지 말고 모든 선을 봉행하며 그 뜻을 스스로 맑게 하라. 이것이 불타의 모든 가르침이라 하셨으니 명심하겠나이다. 사람 몸 받기 힘드나 지금 받고 있으며, 여래 법 듣기 힘드나 지금 듣고 있으니 이 몸 받은 금생에 제도 못되면 언제 또 생을 받아 제도 될소냐. 스스로 부처님께 귀의하여 받들어 모시고 서원하오니, 중생들과 더불어 대도를 체득하여 무상의 뜻을 이루겠노라. 스스로 가르침에 귀의하여 받들어 모시고 서원하오니, 중생들과 더불어 경장에 들어가 지혜를 바다같이 하겠노라. 스스로 승가에 귀의하여 받들어 모시고 서원하오니, 중생들과 더불어 대중을 통리하여 매사 막힘없게 하겠노라’는 서원을 세우고 실천하도록 권하는 것도 여러분이 올바른 불자의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인과관계를 강조하셨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만나기 전에는 진흙만 있는 삶이었으나, 부처님 가르침을 만난 후에는 그 진흙에서 피어난 연꽃이 돼야 할 것입니다. 가족과 이웃, 또는 사회생활에서 빚어지는 갈등 역시 스스로 연꽃임을 생각하며 상대한다면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연꽃이 되고자 했으면, 진흙에서 피어난 연꽃처럼 살아가면 될 일입니다.

살아가면서 수없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번뇌의 마음은 진흙이요, 연꽃은 부처입니다. 꽃이 피면 진흙도 정화되는 것처럼, 우리의 삶이 수행하기 전의 진흙에서 수행 후에 연꽃으로 피어나면 당연히 진흙이었던 우리 자신과 주변도 함께 정화되게 됩니다. 진흙 없는 연꽃이 없음을 알아 자만하지 말고, 오로지 보살의 생각과 언어 그리고 행동으로 살아가면 가족과 이웃의 아픔과 눈물을 닦아줄 수 있고 연꽃 낙원을 만들 수 있습니다. 연꽃 낙원을 만들기 위해 함께 공부하고 보살핍시다. 감사합니다.

정리=강태희 충청지사장

이 법문은 청주 무심정사 주지 도안 스님이 불자들이 올곧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설한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1712호 / 2024년 1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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