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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오관게와 연기(緣起) 경제

생산하지도 않은 음식 먹을 자격이 있는가

음식·나 사이의 관계 함축해 ‘탁발 수행자’ 마음가짐 강조
화폐 경제 속 생산자·소비자 괴리감이 빈부·환경파괴 원인
오관게의 연기적 세계관은 현대 경제학자들의 대안과 일치

해탈을 추구하면서도 현세의 몸은 유지해야하는 수행자들에게 음식은 그 모순을 해결해야하는 중요한 문제였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지만 타인에게도 이익이 돼야 한다는 경제의 이상적인 추구와도 맞닿아 있다.
해탈을 추구하면서도 현세의 몸은 유지해야하는 수행자들에게 음식은 그 모순을 해결해야하는 중요한 문제였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지만 타인에게도 이익이 돼야 한다는 경제의 이상적인 추구와도 맞닿아 있다.

경제의 문제는 직접적으로는 의식주의 문제이며, 과거에는 그중에서도 특히 먹는 것의 문제가 가장 핵심이었다. 불교교단의 경영에 있어서도 우선 중요한 문제는 먹는 문제였다. 불교경영의 이해도 이 먹는 문제에서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불교에서는 우리의 몸을 그저 빨리 벗어버려야 하는 짐처럼 인식하면서도, 애써 탁발하며 유지해야 하는 당위성을 여러모로 설명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밥을 먹는 것을 ‘공양한다’고 하는데, 공양하기 전에는 공양게를 읊는 것을 권하고 있다. 여기에 불교에서의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인식이 잘 압축되어 있다. 공양게는 ‘소심경(小心經)’에 나오는 게송인데, 이 ‘소심경’이 언제 쓰여진 것인지는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 다만 이미 1721년에 간행된 ‘천지명양수륙재의범음산보집’의 ‘별식당작법’에 동일한 게송이 실려있고, 그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이 7세기 중국 당나라의 도선(道宣, 596~667) 율사가 쓴 ‘교계신학비구행호율의(敎誡新學比丘⾏護律儀)’에 보이며, 나아가 초기경전인 ‘맛지마니까야’의 ‘모든 번뇌의 경’에서 언급된 수행자의 음식을 대하는 태도 등에서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공양게의 내용을 살펴보기로 한다. 보통 ‘공양게’라고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공양게’는 ‘소심경’에 나오는 전체의 게송을 말하는 것이고, 우리가 공양간에서 읊는 게송은 그 중의 하나인 ‘오관게(五觀偈)’이다.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고(計功多少 量彼來處, 계공다소 양피래처)/내 덕행으로는 받기가 부끄럽네(村己德行 全缺應供, 촌기덕행 전결응공)/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防心離過 貪等爲宗, 방심리과 탐등위종)/몸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正思良藥 爲療形枯, 정사양약 위료형고)/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爲成道業 應受此食, 위성도업 응수차식)’

여기서 첫 두 문장이 가장 중요한데, 바로 부처님의 깨달음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연기(緣起)’론이자, 불교경영의 핵심이다. ‘이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고’로 압축되어 있지만, 한문 원문을 좀 더 풀어보자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공덕을 거쳐 이 음식이 나에게 왔는가” 정도가 될 것이다. 나는 농사를 짓지도, 소를 키우지도, 물고기를 잡지도 않았는데, 매일 이것들을 먹고 있다. 왜 내가 생산하지도 않은 것을 먹을 수 있을까? 그래서 두 번째 문장은 “내가 한 일도 없는데 이런 음식을 대하니 부끄럽다”고 말한다. 특히 불교 승려들은 구걸로 음식을 받았기에 이런 마음가짐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현대 도시인들은 그저 “왜 부끄럽지? 내가 돈을 지불했는데?”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누군들 편히 앉아서 돈벌고 싶지 않을까. 필자만 해도 글 쓰는 일이 힘들다고는 하지만, 먹거리를 생산하는 사람들의 일만큼 고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키보드 두드리는 것만으로 힘들게 생산된 음식을 구입한다. 이런 구조는 단지 돈을 냈기 때문이 아니라, 나 역시도 그런 생산자들에게 무엇인가를 해주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하나의 마을을 축소판 국가라고 가정해보자. 그 마을에는 다친 곳을 치료해주는 사람도 필요할 것이다. 잉여생산물을 다른 마을에 내다 파는 사람도 필요할 것이다. 또한 힘들게 일하고 귀가한 사람들이 피로를 잊을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는 사람도 필요할 것이다.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은 노동에서 면제된 대신 특화된 일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돈을 주고 경작물을 사는 개념이 아니라, 각자 노동을 대신한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 경작물을 받는 시스템으로 봐야 한다. 이것이 연기이고, 인드라망이다.

결국 생산직에 종사하지 않는 모두는 생산자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육체노동에서 면제된 만큼 무형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그 빚을 갚는 길이다. 불교에서의 업보나 기독교에서의 원죄를 현대의 경제개념으로 풀어보자면 곧 이렇게 우리가 생태계 먹거리에서 진 원초적 부채인 셈이다. 그런데 그러한 경작물과 서비스의 교환과정이 돈을 매개로 이루어지고 시스템이 너무 거대해지다 보니 그렇게 연결된 세계는 보이지 않는다. 그저 내가 하는 일은 나의 부를 축적하기 위해 하는 일일 뿐이며, 그렇게 축적된 부로 무엇을 구입한다는 것은 당연한 권리로 여겨진다. 

뿐만 아니라 이런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오로지 농수산물을 싸게 구입해 비싸게 판매함으로써 이익을 극대화하려고만 한다면 결국 농수산업은 버티지 못하고 생산은 중단될 것이다. 그 결과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누구도 농사를 짓지 않아 식탁에 밥이 올라오지 않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마치 미국 옐로스톤 숲에 늑대가 너무 많아 사슴을 보호하기 위해 늑대를 사냥해서 멸종시켰지만, 이로 인해 너무 늘어난 사슴이 마구잡이로 식물을 먹어치우면서 오히려 숲이 파괴됐다는 이야기와 마찬가지다. 숲의 생태계가 곧 연기법인 것이고, 우리는 이익이라는 사슴을 위해 늑대를 멸종시키고 있다. 다만 그것이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은, 그러한 착취와 폭리로 국내의 생산자들이 파산해도 다른 나라에서 다시 싸게 사들이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다른 나라들에서도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수입해올 곳이 줄어들자 비로소 전 세계적으로 환경문제, 식량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다음 게송은 이렇게 이어진다. “마음의 욕심을 버리고, 이 음식을 약으로 삼아 도업을 이룬다.” 불교경영은 가난해지자는 것이 아니다. 연기법으로 이루어진 사회를 보고 지속가능한 경제를 구축하자는 것이다. 욕심을 버리고 약으로 삼는다는 것은 과도한 욕심으로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익을 추구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도업을 이룬다는 것은 나 스스로도 이 생태계의 일원으로서 이 생태계가 유지되는데 일정 부분 기여하겠다는 마음가짐인 것이다. 

이 게송을 오관게, 즉 다섯 관법(觀法)이라 부르는 것은 결국 음식의 유래를 보고(어디서 왔는가), 나를 돌아보고(나는 어떤 공덕을 쌓았나), 현재를 보고(공양을 받는 자격), 그 관계를 보고(몸과 약), 다시 미래를 보는(덕업을 쌓는 목적) 다섯 관점이 실려있기 때문이다. 이를 경제 시스템에 적용해보자. “이 돈은 어디서 왔는가, 내가 준 것에 비해 받은 것이 더 많은 것 같네. 더 좋은 서비스로 보답하여, 모두가 이익을 얻을 수 있게 함으로써, 지속가능한 경제에 이바지하리라.”

현대 경제학자들이 자본주의 경쟁사회가 가져온 극도의 빈부격차, 환경파괴를 지적하며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 사실상 이 내용이고, 부처님은 그 얘기를 이미 2600년 전에 하셨던 것이다.

주수완 우석대 경영학부 교수 indijoo@hanmail.net

[1713호 / 2024년 1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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