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형기(성담·48) 사불수행 - 하

기자명 법보

어머니 권유로 불화 공부
불교 교리·기도법 배우며
부처님 그리니 신심 커져
세세생생 부처님 그릴 것

어머니의 한결같은 기도와 정성 덕에 좋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고 왕따를 당한 적도 없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학년이 올라가 반이 바뀔 때마다 어머니가 담임선생님들에게 아들 잘 부탁드린다며 학급을 원조했고, 친구들에게 철마다 간식을 제공하는 등 아주 많은 보시를 했다. 부처님 가피는 항상 있었다. 어머니 덕분이었다. 

나는 생활 자체가 부처님과 늘 함께 였기에 따로 기도를 드린다거나 매일 꾸준히 하는 신행 생활이 없었다. 사실 불경을 읽어도 통역이 없어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한자를 따라 해도 무슨 말인지 어려웠고 우리말 경전을 읽어봐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래도 저래도 답답하고 갑갑한 것이 쌓이고 쌓여 수미산을 이룰 지경이었다. 그래서 나는 절을 많이 했다. 절 수행을 하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스트레스도 사라졌다. 

어머니는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 진학이 어려움을 알고 불화를 본격적으로 배우길 권했다. 스님들의 도움으로 수원의 화실에서 장호걸 선생님에게 불화를 배우기 시작해 만봉 스님의 제자로 들어가 불화를 더 깊이 배웠다. 부처님을 그리고 있으면 저절로 삼매에 드는 기분이다. 귀가 안 들리니 다른 제자들의 말소리나 소음에 신경 쓰지 않고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부처님을 그리며 나는 자유를 느꼈다. 석채를 쓰는 전통불화작업은 매우 힘들고 고도의 정밀함이 필요한 작업이지만 난 몰입의 즐거움을 느끼며 신심이 더욱 깊어졌다. 

마흔이 넘어가자 내가 장가도 못 가고 노총각으로 늙어 죽을까 걱정하던 우리 어머니와 이모들 앞에 지금의 내 아내가 나타났다. 원심회에 수어통역사로 온 청인 여자. 그 여자가 먼저 나에게 결혼하자고 했다. 내 그림을 보고 반해서였다고 한다. 통역사랑 결혼하니 나는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고 어떤 정보든 빠르게 접근하고 해결할 수 있어서 내 삶의 질이 180도로 달라졌다. 열심히 부처님을 그린 복을 이제야 받나보다 싶었다. 그런데 내 아내는 신행활동을 아주 지독하게 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아내를 만나 사경도 해보고 염불도 해보고 참선도 제대로 해봤다. 그 전에 절을 다니고 원심회를 다니면서는 이렇게 지극한 마음으로 신행활동을 해본 적이 드물었다. 결혼 후 제대로 된 기도를 하게 된 셈이다.

불교 교리를 정확히 배우고 기도를 제대로 하며 부처님을 그리니 그 신심의 폭이 더 넓어졌다. 결혼 후 아이가 생겼을 때도 아내가 권하는 대로 온 마음을 다해 ‘지장경’을 사경하며 지장보살을 그렸고 아내는 ‘보현행원품’을 사경하고 ‘금강경’ 독송을 하며 태교를 했다.

아이는 불연이 깊어서 무탈하게 잘 자라고 있으며 스스로 ‘광명진언’을 외며 부처님 그림을 그린다. 내 딸이 나처럼 불화를 그렸으면 하는 바람은 없지만 배우고 싶다면 언제든 가르쳐주고 싶다. 나는 빚이 많다. 특히 공양주를 하며 평생 무주상보시를 실천한 우리 어머니. 우리 어머니가 나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오래 보지 못하고 치매가 와 요양병원에 모시고 있어 더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나의 장애를 잊을 정도로 잘 지내고 있으니 수어통역사 아내에게도 고맙고 미안하다. 사랑하는 나의 딸. ‘아빠 귀가 안 들려서 불편해!’ 라고 하면서도 그림을 가르쳐 달라고, 같이 운동하자고 하는 나의 보물 1호 딸에게도 고맙고 미안하다. 소리가 없는 내 삶은 진공묘유 같다. 앞으로도 가족들과 내 청춘을 잘 지켜준 원심회를 아끼고 보살피며 잘 살고 싶다.

내가 소리가 들리지 않아 고의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 때문에 마음 상하셨던 분들에게 참회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나를 가르쳐준 장호걸 선생님, 그리고 만봉 스님을 비롯한 만봉 화실 식구들, 한국전통문화연수원 동기들, 그리고 원심회 법우들, 나의 가족들…. 나를 이끌어주고 사랑해준 모든 분에게 감사하고 고맙다. 나의 무명과 무지를 참회할 수 있음에 기쁘다. 또 나를 무명과 무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자비로 이끌어준 부처님께 감사드린다. 

귀가 들리든 들리지 않든 부처님의 지혜와 평등을 내게 전부 보여주신 고마운 분들을 생각하며 나는 죽는 그 날까지, 나아가 세세생생 부처님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1713호 / 2024년 1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