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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구통 수좌’ 효봉 스님 법구 이운 행렬

1966년 10월 15일 좌탈입망
영결식 후 조계사서 화계사로
법구 이운 행렬 3km 이어져
교복 입은 학생들 선두 눈길

“스님! 화두(話頭) 들리십니까?”
“응, 응…”
스님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이셨다. 내내 곁을 지키고 있던 제자는 조용히 다시 묻는다.
“스님! 지금도 성성(惺惺) 하십니까?”
“무(無)라, 무라, 무라!”

1966년 10월 15일 오전 10시 정각. 효봉 스님은 그렇게 저 언덕 넘어 피안으로 가셨다. 그것도 앉은 채로!

효봉(曉峰, 1888~1966) 스님은 1925년 38세의 나이에 석두(石頭, 1982~1954)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당시로서는 ‘늦깎이’였다. 그래서인지 엉덩이 살이 헐고 진물이 흘러나와 ‘살점이 좌복에 달라붙을 정도로 수행한다’고 해서 ‘절구통 수좌’로도 불렸다. 해방 이후 불교정화운동에 참여했으며, 가야총림의 초대 방장과 통합종단 초대 종정 등을 역임했다.

사진 속 장면은 조계사에서 효봉 스님의 영결식을 마친 뒤 다비장이 마련된 화계사로 법구를 운구하는 행렬의 모습이다. 당시 ‘중앙일보’ 기사에서는 “법구장의 행렬은 선두에 불교기, 태극기, 영정, 5백개의 만장 등의 순서로 장장 3킬로의 긴 행렬을 지었고, 효봉 스님의 법구가 지날 때 화신 앞 종로 이화동 로터리에 이르는 길은 차량 통행이 금지됐으며 장의 행렬에 참가한 1만여 명의 승려 및 신도 이외에도 연도에는 까만 리본을 가슴에 단 일반 신도들이 염불과 묵념으로 극락길의 효봉 스님을 애도했다”고 전했다. 가히, 당시 한국불교의 위상을 보여주는 단적인 장면이라 하겠다. 특히 불교기와 태극기를 들고 선두를 이끄는 남녀 학생들은 교복을 입은 것으로 미루어 고등학생으로 보인다. ‘청소년·대학생 포교에 불교의 사활이 걸렸다’는 이야기가 회자되는 요즘으로서는 참으로 감회가 새로운 풍경이다.

효봉 스님의 장엄한 행렬을 보고, 당시에는 불교신자가 많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1966년 문교부(현 교육부)의 ‘종교통계요람’을 보면, 당시 불교 신자는 93만8096명으로 전체 인구의 약 3.2%였다. 반면에 당시 개신교는 89만5768명, 천주교는 78만7650명으로 기독교 인구는 약 5.7%, 불교의 거의 두 배였다. 2023년 한국리서치의 종교인구 현황에 따르면, 불교 17%, 개신교 20%, 천주교 11%라고 한다. 즉 그때나 지금이나 전체적인 추이에는 큰 변화가 없는 셈이다.

그러나 그때는 있었고, 지금은 없는 것이 있다. 바로 한국불교의 ‘위상’이다. 효봉 스님의 장례 행렬 사진에는 당시 국민들로부터 존경받고 사랑받던 한국불교의 위상이 담겨있다. 1960년대 타종교에 비해 불교신자가 적음에도 불구하고 한국불교의 위상이 높았던 것은 효봉 스님과 같은 분들의 ‘스님다움’ 때문일 것이다. 효봉 스님은 한평생 삼학(三學)을 실천하셨다. 그중에서도 계학(戒學)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고 한다. 물론, 오늘날 불자 인구가 감소하고 불교의 위상이 예전과 같지 않은 것이 모두 스님들의 탓만은 아니다. 하지만 계율을 가벼이 여기는 모습, 일부 막행막식하는 스님들의 행위가 한국불교의 위상을 저해시키는 또 하나의 원인인 것은 분명하다.

황정일 동국대 대우교수 9651975@hanmail.net

[1714호 / 2024년 1월 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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