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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위빠사나명상 속의 찰나삼매

위빠사나 명상 세계화의 토대

변화 알아차리며 순간에 집중
집중 강해지면 통찰지에 도달
고엔카·마야시 수행방식서도
찰나 삼매, ‘수행의 핵심’ 강조

“동굴이나 숲은 잊어버리세요. 명상은 도시에서도 가능합니다.” 매 순간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삼매를 얻기 위한 장기간의 수행 없이 불교수행이 가능하다는 레디 사야도의 메시지에 수많은 재가 신도들이 고무됐다. 수행에 대한 이러한 주장은 불교 문헌에서 이미 볼 수 있는 것이었지만, 그 이전에는 누구도 이를 적극적으로 설파한 적이 없었다. 레디 사야도는 이것을 자신의 가르침의 중심으로 삼았다. 

영국의 식민 지배로 위기에 처했던 19세기의 미얀마 불교는 명상의 대중화로 재점화하였다. 이것은 나중에 위빠사나 운동(통찰명상 운동)으로 발전하여 20세기에는 위빠사나 명상이 전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미얀마의 위빠사나 운동은 ‘대념처경’과 ‘청정도론’을 토대로 사띠와 순수한 통찰(bare insight)을 강조하면서 엄격한 윤리적 규범의 준수라는 무거운 짐을 들어내어 사원 밖 재가자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삼매는 통찰을 위한 준비단계로 간주되었고, 마음을 안정시키고 집중을 강화하여 무상에 대한 통찰이 일어나 해탈로 이어질 수 있다는 논리가 강조되었다. 위빠사나 운동은 우리가 사는, 쉴 틈 없이 변화하는 바쁜 시대에도 불구하고 깨달음을 향한 길을 걷고 그것을 보호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명상이 도시 생활 속에서도 가능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집중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해석 덕분이었다. 불교명상에서는 집중을 크게 세 가지로 본다. 그중 두 가지는 삼매 수행에서 계발되는 것으로 근접 삼매와 완전 삼매이다. 이들은 하나의 대상에 마음을 고정함으로써 계발된다. 그 대상이란 시각적인 것에서부터 자애와 같은 특별한 느낌까지 다양하다. 이러한 집중의 상태에서는 욕망이나 분노 또는 어리석음이 사라진다. 하지만 번뇌가 일시적으로 사라질 뿐, 집중이 흐트러지면, 행복감은 사라지고 마음은 일상적인 번뇌를 다시 일으킨다. 

위빠사나 지도자들에 의하면 세 번째 종류의 집중은 팔정도에서 말하는 정정(正定)으로서 통찰 명상에서 순간마다 훈련을 통해 발달하는 집중이다. 이것은 오직 마음챙김을 하면서 순간마다 집중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이 집중은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하나의 대상에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몸의 감각, 느낌, 의식 등과 같은 마음의 변화를 알아차리는 집중이다. 즉 세 번째 집중은 마음챙김을 하면서 동시에 할 수 있는 집중이다. 이것이 위빠사나 수행자가 훈련하는 집중이다. 

위빠사나 수행자는 위빠사나 대상에 대한 알아차림, 즉 마음과 몸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정신적, 육체적 현상을 알아차림으로써 발생하는 순간 집중(khanika samadhi)을 사용한다. 그것은 알아차리는 순간에만 발생하고, 위빠사나의 경우 사마타 선정처럼 고정된 대상이 아니라 마음과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하는 대상이나 현상에 발생하기 때문에 ‘순간(khanika)’이라고 불린다. 숙련된 위빠사나 수행자가 알아차리는 힘을 발전시키면, 그의 순간 집중은 끊어짐 없이 진행되어 이 집중이 순간순간 쉬지 않고 일어날 때 매우 강력해져서 다섯 가지 장애를 극복할 수 있고, 마음의 청정을 가져오며, 이를 통해 수행자는 통찰지에 이른다고 경전에서는 설한다. 이러한 고도의 집중은 미얀마, 태국, 스리랑카에서 시작된 모든 위빠사나 운동의 핵심적인 요소이다. 레디 사야도 이후 미얀마 불교 명상의 대표적인 방식인 고엔카와 마하시 전통은 모두 이러한 위빠사나 명상 중에 일어나는 찰나 삼매(khanika samadhi)를 수행의 핵심으로 여긴다. 최상의 결과를 위해 집중 수련 동안 밤낮으로 매 순간의 마음챙김의 유지를 강조한다는 점이 고엔카와 마하시 위빠사나의 공통점이다. 

그런데 현대 위빠사나의 조상인 레디 사야도의 저술을 살펴보면, 그는 선정 수행에서 큰 성취를 이룬 자만이 그것을 통찰의 기초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하면서 선정 수행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리고 사마타는 번뇌 없는 선법(善法, kusala)의 성취와 함께 진정한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통찰의 힘은 모든 쿠살라에서 길러지기 때문이다. 

문진건 동방문화대학원대 교수 cherryhill2736@gmail.com

[1715호 / 2024년 2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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