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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화생, 왕생 그리고 원생

백세시대를 살고 있다. 사회적 정년을 지나고도 연명해 나갈 시간이 수십 년 남아 있다는 의미이다. 생명체가 자신의 생명이 단멸되지 않고 영속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일단은 안도할 일이다. 우리가 안부로 묻는 ‘안녕(安寧)’이라는 인사말의 함의가 ‘아무 탈 없이 편안한가’를 묻고 있기에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그러나 장수하고 있는 노인들에게 있어 단순히 생명현상의 연장이라는 사실 그 자체가 꼭 달가운 일이라 할 수 있을까. 

필자의 부친은 무병장수하시다가 92세에 돌아가셨는데 90세가 되니까 “하루하루의 시간이 지루하다”라는 말씀을 가끔 하셨다. 주변에 연배가 높은 선배들을 만나면 그런 류의 얘기를 자주 접하곤 한다. 단지 경제적 문제나 심적 외로움의 문제가 아니라 반복되는 일상에 대한 본질적 물음을 동반한 회한이고 성찰의 말씀이 아닐까 하고 느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백세시대가 아니라 다생(多生)이 무한히 재생(再生)된다고 말씀하신다. 유정은 업에 의해 육도를 전생(轉生)한다고 한다. 그런 가운데 극락정토에 왕생(往生)을 소원하면서 살아간다. 아라한은 구차제정(九次第定)의 선정 수행을 통해 색계·무색계에 화생(化生)을 한다고 한다. 불·보살은 중생구제와 불국토를 이루고자 원생(願生)한다고 한다. 그렇게 보면 우리는 무한재생(無限再生)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정이 생사유전을 거듭하는 힘들고 괴로운 삶 속에서 선업을 짓고 보시를 행하는 이유는 육도 가운데 가장 좋은 곳인 천상에 나기를 소원하기 때문이다. 또 사후에는 불·보살이 상주하고 계시는 정토에 왕생하여 불법 신행을 지속해서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괴로움을 여의고 즐거움을 얻고자 하는 이고득락(離苦得樂)의 소망은 인지상정이다. 그렇다면 이왕이면 일시적 즐거움을 얻기보다는 온전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천상이 아무리 좋은 곳이라고 해도 선업의 과보가 소멸하면 또다시 육도를 전생(轉生)해야 하며, 정토도 상·중·하의 구품왕생을 얘기하고 있지 않은가.

온전한 즐거움의 시작은 구차제정의 선정 수행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구차제정의 시작인 색계사선(色界四禪)을 닦아 가면 얻어지는 체험에 이생희락(離生喜樂), 정생희락(定生喜樂), 사념낙주(捨念樂住), 사념청정(捨念淸淨) 등 ‘즐거움’이란 명칭이 붙어 다니는 데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아라한은 구차제정의 선정을 닦아 나감으로써 화생하여 적멸위락(寂滅爲樂)의 온전한 즐거움을 성취하게 된다고 한다. 불·보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성취하여 일체 분별망념이 사라진 평등심과 평정심을 얻음으로써 온전한 즐거움을 성취하게 된다고 한다.

삼사라(samsāra)는 ‘흐른다’는 뜻으로 생명이 있는 것은 죽어도 다시 태어나 생이 반복된다고 하는 생명주기의 끊임없는 순환의 전생(轉生)·재생의 개념이다. 이를 윤회라고 부른다. 그런데 구차제정의 사무색정 처음에 예류(srotā-āpanna)가 있다. 세 가지 결박의 번뇌(신견·계취·의)를 끊고 범속한 생활에서 성스러운 흐름에 들어간 사람을 가리킨다. 우리의 생에 두 가지 방향의 흐름이 있음을 시사해 준다고 하겠다. 이처럼 불교의 세계관은 중층적이다.

이쯤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하나는 이번 생이 마지막이 아니라 무수한 생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며, 다른 하나는 전생이든 화생이든 왕생이든 원생이든 모두 흐름을 가리키는데 그 흐름이 두 갈래라는 사실이다. 

불행히도 백세시대에 ‘지루한 여생’은 없다. 어떤 생을 선택하여 채워나가는가에 따라 다음 재생의 고락을 결정해 주지 않겠는가. 그 핵심에 업과 선정 수행이 있다.

이욱태 (사)한국수소에너지기술연구조합 이사장 satdharma@naver.com

[1716호 / 2024년 2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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