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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무소주 이생기심 

기자명 김예진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열심히 불교 동아리 활동하면서도 ‘금강경’을 읽어본 적이 없다. 변명해보자면, ‘경전’이라는 단어가 주는 압도감이 상당했기에 선뜻 읽어보자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제 부처님의 가르침이 어떤 것인지 배워가는 참인데, 널리 쓰는 말로 ‘맨땅에 헤딩’ 식으로 읽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언젠가 읽어보겠노라는 목표만 간직한 채 아직은 때가 아니겠거니, 하는 식으로 미루어두기만 했다. 

하지만 아는 구절이 딱 하나 있다.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즉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어라’이다. 불자라면 익히 들어보았을 유명한 구절이다. 그러나 마음이 머무르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잘 와닿지 않았다. 이 문장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가는 작은 에피소드가 있었다.

2월 초, 선배들의 졸업 여행을 겸해 법우들과 부산 여행을 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행이 즐거웠던 것과는 별개로 생각만큼 순조롭게 진행되진 못했다. 당연할 것이라 방심하고 준비해두지 않았던 것들이 변수가 되어 크고 작은 문제가 있었다. 다행히 일정을 무사히 소화하긴 했지만, ‘이런 상황은 미리 준비했다면 좋았을걸’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여행 마지막 날, 출가한 선배님이 주지스님으로 있는 양산 내원사를 방문했다. 여기서도 문제가 생겼다. 인터넷으로 보기에 주차장의 규모가 꽤 됐기에 당연히 대형 버스로 방문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길이 넓지 않아 버스로 올라갈 수 없었다. 게다가 걸어가도 1시간이 소요됐다. 다행히 사찰에서 차를 보내주셨기에 무사히 사찰로 올라갈 수 있었지만 또 한 번 나의 부족했던 준비성을 통감했다. 여러모로 폐가 된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스님과 차담 중, 지도교수님이 우리 동아리가 신기하다고 말씀하셨다. 지도 교수님 역시 경불회 출신의 선배님인데, 교수님의 말씀으로는 당신께서 동아리 활동하실 당시와 다르게 우리 동아리는 ‘쿨’하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뜨끔, 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마 지도교수로 역임하시는 몇 년간 동아리를 죽 지켜보시며 이런 결론을 내리셨을 것이리라. 하지만 나는 이런 ‘쿨’함과는 거리가 있는 듯했다. 앞에서 일어난 일을 흘려보내지 못하고 마음속에서 계속 곱씹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자 스님께서 그것이 ‘응무소주 이생기심’, 곧 ‘응하여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는 것’이라 하셨다. 그리고 마음이 한 곳에 머물러 무언가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바로 ‘금강경’의 가르침이라고 덧붙이셨다. 이 말씀을 듣자 오래전 마음 한편에 두었던 ‘금강경’의 한 구절이 비로소 부처님의 음성처럼 와닿았다. ‘지난 일에 계속해서 마음을 묶어두고 머무르게 했구나’ 하는 자각이 일었다. 

물론 과거 성찰은 반드시 해야 한다. 그러나 내가 ‘이랬다면 좋았을 텐데’ 하고 지난 일을 가정하기만 하는 것은 반성이나 성찰이라기보다는 집착에 더 가깝다. ‘사찰같이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동아리’를 만들겠노라 이야기했지만 사실 나부터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다.

개강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전처럼 마음이 무겁진 않다. 실수했던 점은 반복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라고, 그렇게 지난날에서 마음을 놓아주고 나니 한결 편안해졌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지난날을 열심히 성찰하면서도, 마음을 묶어두고 있기보단 앞으로의 일을 더 많이 생각해야겠다. 회향하는 버스 안에서 처음으로 ‘금강경’을 읽어보며, 그렇게 마음을 다져보았다.

김예진 경북대 불교동아리 회장 yyy7195@naver.com

[1716호 / 2024년 2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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