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69. 사성제 관찰 위빠사나명상-2

기자명 일중 스님

괴로움 일으키는 성스런 진리 관찰

집착하거나 지배하려는 욕망
살거나 죽고 싶다는 마음 등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 ‘갈애’
마음챙김으로 부정적 업 제거

사성제 명상에서 두 번째는 고집성제(苦集聖諦)이다. 즉 괴로움의 발생(원인)의 성스러운 진리를 분명하게 관찰하라는 것이다.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을 왜 성스러운 진리라고 했을까? 괴로움이 정말 성스러운가? 성스럽다(ariya, 聖)는 용어가 내포하는 구체적인 의미가 무엇일까? 필자가 스리랑카로 유학 가서 공부하던 초반에 이 문제를 계속 제기한 적이 있었다. 뒤늦게 알게 되었지만 ‘청정도론’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성스러운 분들이 이들(고집멸도)을 통찰하시기 때문에 성스러운 진리이다. 성스러운 분의 진리이기 때문에 성스러운 진리이다. 혹은 이것들을 깨달으면 성스러움이 성취된다고 해서 성스러운 진리”라고 했다. 

그럼 ‘대념처경’에서 괴로움의 원인의 성스러운 진리를 어떻게 설명하는가?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인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인가? 그것은 갈애이니,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고, 환희와 탐욕이 함께 하며, 여기저기서 즐기는 것이다. 즉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 존재에 대한 갈애,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갈애가 그것이다.” 

인용문에 의하면, 괴로움이 일어나는 원인을 ‘갈애(渴愛)’라고 명시했다. 갈애는 빨리(Pāli)어로 딴하(tanhā)라고 한다. 딴하는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 해소되지 않는 갈증, 원하는 것을 얻었음에도 만족함이 없이 계속되는 탐욕이다. 부처님은 세 가지 갈애가 있다고 설명하는데 하나하나 살펴보자.

첫 번째 욕애(欲愛)는 매력적으로 보이는 대상과 소리, 냄새와 맛, 접촉 등 감각적 대상들을 향해 일으키는 강한 욕망이다.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집착하거나 지배하려는 욕망, 명예나 재물을 부당한 수법으로 획득하거나 축적하려는 욕망, 음식의 맛을 향한 과도한 집착…. 이런 것들이 다 욕애에 속한다. 이런 마음이 자신에게 일어났을 때, ‘나에게 갈애가 있구나, 이런 갈망이 있구나’라고 빨리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평정심을 유지하며 명료하게 마음챙겨 관찰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탐진치로 반응하면서 부정적인 업의 굴레를 굴리기 때문이다. 이런 무의식적 자동반응의 패턴에서 벗어나는 길은 마음챙김과 관찰이다.

두 번째는 유애(有愛)이다. 유애는 존재하고자 하는 열망이자 갈망이다. 누구나 죽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존재에 대한 열망은 상대적으로 미세하다. 또는 색계나 무색계 천상에 태어나 오래도록 생존하고자 하는 갈망이라고도 한다. 이런 갈애가 있다면, 재빨리 알아차리고 마음챙김과 지혜로써 관찰해야 한다. 영원한 존재에 대한 동경은 인간적으로는 이해할 수는 있지만, 상견(常見)과 관련된 탐욕과 무지라는 사실도 수행자들은 알아야 한다.

세 번째는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갈애(無有愛)이다. 이것은 두 번째 유애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즉 욕계 색계 무색계 어느 세계에서든 살고 싶지 않고 생존하고 싶지 않은 부정적인 마음이다. 수행자가 수행을 통해 삼계 해탈이라는 추구와는 달리, 죽으면 끝이라는 유물론적인 견해를 가진 단견(斷見)의 부정적인 갈망이다. 이런 마음을 있을 때 자살이라는 행위가 일어날 수 있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거나 괴로움과 절망에서 출구를 얻지 못할 때, 이 마음도 알아차릴 중요한 대상이다. 

이 세 가지 갈애들이 일어날 때 부정적인 업이 만들어진다. 업은 다시 태어나게 하는 재생의 동력이 되어 생사윤회를 반복하게 한다. 우리가 사는 동안 행복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가? 고통의 악순환인 생사윤회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가?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가 일어날 때마다 우리가 할 일은 바로 마음챙김이다.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은 부정적인 새로운 업은 만들지 않고, 묵은 업은 정화하고 소거시킨다. 

모든 욕구를 갈애라고 퉁치지 않아야 한다. 갈애와 추구심은 다른 마음이기 때문이다. 공동체를 발전시키려는 이타적 욕구, 진리를 추구하는 선한 의도, 명상수행에 매진하는 헌신적 노력, 이런 마음은 열심히 추구해야 한다. 명상자에게는 갈애와 갈망이 아니라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이 답이다.

일중 스님 동국대 강사 satiupekkha@hanmail.net

[1716호 / 2024년 2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