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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시공간과 청법 대중

시간은 중생 업에 따라 달라진다

경전에서 ‘한때’라 한 것은
부처님 설법한 장소와 관련
지옥·천상계 시간 모두 달라
부처님 내면서 펼쳐지기도

세상의 모든 일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발생한다. 불교 역시 2600여 년 전 인도에서 태어났다. 부처님의 위대한 여정들과 깨달음·설법·반열반 등 모든 일들이 시간과 공간 위에서 펼쳐진 사건들이다.

앞서 밝혔듯 육성취 중에는 경을 설한 시간과 장소가 소개된다. 하지만 경전에서 언급하는 시간은 그리 분명치만은 않다. 막연히 ‘한때’라고만 할 뿐 아침인지 저녁인지 자세한 시간은 알 수 없다. 이렇게 시간을 명확히 말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부처님께서 설법하신 장소와 관련이 있다.

경전을 보면 부처님의 설법은 우리가 사는 인간 세상에서만 행하시지 않으셨다. 때로는 도솔천·도리천·야마천 등과 같은 천상계에 올라 설법하셨다. 천상계는 인간 세상과는 시간의 흐름이 사뭇 다르다고 한다. 도리천에서는 인간 세상의 백 년이 천상계에서는 하루다. 또 지옥에서의 백 년은 인간 세상에서는 하루다. 불교에서의 시간은 중생의 업이 만든다. 똑같은 시간이지만 중생들의 업에 따라 하루가 백 년이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본다면 부처님의 설법 시간을 딱히 인간계를 중심으로 정하기 어려운 일이다. 시간 기준이 다르다 보니 설법 시간을 특정할 수 없게 된다.

또 한 가지는 부처님의 설법 중에는 인간계도 아니고 천상계도 아닌 부처님의 자내증(自內證), 즉 부처님이 깨달아 누리시는 경지에서 행해지는 경우가 있다. 자내증의 경지에서 행해지는 설법은 초기경전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대승경전에서만 만날 수 있다. 소승의 성자들은 부처님의 자내증에서의 설법을 듣지 못한다. 사리풋타 같은 최고의 성자도 부처님의 자내증 설법에는 참여하지 못한다. 설법하신 시간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한때’라고만 말한 것은 이런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자내증은 ‘해심밀경’의 설법 장소와 청문 제자들과도 연관된다. 대부분 경전은 인간 세계나 천상 세계를 설법의 장소로 삼고 그곳의 중생들을 향해 설법한다. 그러나 이 경전은 부처님의 자내증으로 시간과 장소와 설법 대상이 만들어진다.

‘해심밀경’과 같은 상승의 가르침은 세상 누구도 물을 수 없는 내용이기에 부처님은 자신의 내면에서 ‘해심밀경’ 법회 요건들을 만들어 놓고 이 경전을 설하신다. ‘화엄경’ ‘원각경’ ‘능가경’ 등이 이런 이치에서 설해진 경전들이다.

‘해심밀경’의 설법 장소는 뛰어난 칠보의 빛으로 장엄된 곳이다. 부처님의 몸은 비록 중생들이 사는 더러운 예토에 담고 계시지만 자내증의 경지는 갖가지 공덕으로 장엄되어 있다. 지혜와 자비와 원력은 찬란한 칠보 광명처럼 빛난다. 천상 세계보다 아름답고 행복한 그곳에서 ‘해심밀경’은 설해졌다.

‘해심밀경’의 용어를 빌리자면 부처님의 자내증은 곧 원성실성(圓成實性)의 자리이다. 일체의 번뇌가 사라진 대열반의 경지인 불성으로 자내증을 삼는다. 부처님의 자내증 경지에서는 시간과 장소만 출현하는 것이 아니다. ‘해심밀경’의 청문 대중들도 출현한다.

상식적인 차원에서는 부처님의 설법을 들으려면 청문 대중들이 부처님 계신 곳으로 찾아가야 한다. 그러나 ‘해심밀경’에 출현하는 청법 대중은 다른 곳에서 찾아온 인물들이 아니라 부처님이 자내증에서 만들어 낸 권화신(權化身)들이다. 대보살을 비롯한 천(天)·용(龍)·야차(夜叉)·건달바·아수라·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 등 팔부신중과 그밖에 한량없이 많은 인물이 모두 부처님인 것이다.

약간 다른 이야기지만 사찰에 모셔진 신중단의 화엄성중 탱화는 일반적인 신중들이 아닌 부처님 경지서 나타낸 신중들로 그 본래 모습은 부처님이다. 이를 이해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름과 모습을 달리했을 뿐 그 본질은 하나라는 사실이다. 역사 속에서 일어난 불교가 역사를 초월하는 교리를 설한다는 것은 참으로 난해한 일이다. 많은 사람이 불교가 어렵다고 말하는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이제열 불교경전연구원장 yoomalee@hanmail.net

[1716호 / 2024년 2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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