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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도봉산 영국사지

기자명 임석규

국내 최초 발굴현장서 출토된 서울 유일 건칠불

보존 처리 순수작업기간만 6개월…영국사 부처님 재탄생
가볍고 뒤틀리지 않는 ‘칠' 특성…과거 ‘행상의식'에 활용
영국사·도봉서원 가치 드러내는 불·유교 상생 정비안 필요

영국사지 발굴 당시 드러난 건칠불상 노출면.
영국사지 발굴 당시 드러난 건칠불상 노출면.

흙 속에 묻힌 채 발견된 건칠불상은 토압에 의해 형태가 찌그러지고 많은 부분이 결실되었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불상은 직물과 옻칠층으로만 구성되었고 재질 또한 취약한 상태여서 수습 단계부터 적절한 응급조치와 보존처리를 하지 않으면 건조로 인한 수축·변형, 균열, 박리 등의 손상이 발생될 것으로 판단되었다.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이 불상의 안전한 수습과 재질안정화는 문화재 보존 전문업체 ‘고창문화재보존’에서 맡기로 했다.

우선 흙 속에서 불상을 꺼내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현재 상태에서 흙으로부터 유물만을 따로 분리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주변 토양과 함께 한 덩어리로 묶어 일괄 수습하는 방법을 택했다. 발굴로 인해 드러난 건칠불상의 노출면에는 물에 적신 한지를 여러 겹 피복하고, 그 위에 흙을 덮은 뒤, 다시 비닐지로 포장해서 보호조치 하였다. 굴착과 제토로 인해 건칠불상 주변 토양이 붕괴될 우려가 있었으므로 수직 경사면의 빈 공간에는 일회용 폴리우레탄폼을 발포 충전하고, 석고붕대를 돌려 감아 보강하였다. 완충포장이 완료된 건칠불상은 포장상자에 넣어 본격적인 보존처리를 위해 고창문화재보존 작업실로 운송하였다. 

우선 건칠불상 표면을 뒤덮고 있는 오염물질들을 정밀세척하는 것으로 불상의 보존처리를 시작하였다. 취약한 부분에 대한 강화처리와 완충제를 보강하였다. 흙에 매장되어 있던 건칠불상은 발굴 출토 이후 건조로 인한 수축·변형, 균열, 들뜸 같은 현상이 발생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표면의 채색과 금박문양은 너무 취약해서 온전하게 남아있는 경우가 드물다. 이런 형태의 손상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가역성이 우수한 폴리머수지를 표면에 피복하여 채색과 금박을 고착시키고, 급격한 건조로 인한 변형을 방지해야 한다. 순수 작업기간만 6개월 정도 걸린 끝에 우리나라 최초로 발굴현장에서 출토된 건칠불상에 대한 보존처리가 성공적으로 완료되었다. 수리가 끝난 불상을 배견할 때는 완전하지는 않지만 700여년전 영국사 법당에 모셔져 있던 부처님을 만난 것 같은 감동이 일었다. 서울지역 유일한 건칠불이 다시 탄생한 것이다. 
 

영국사지 석출 출토 상황 [불교문화재연구소]
영국사지 석출 출토 상황 [불교문화재연구소]

옻(漆)은 재료가 갖고 있는 내산성, 내알카리성, 내부식성, 내열성 등의 물리적 우수성과 풍부한 광택 등으로 인해 오래전부터 동양 각국에서 애용해온 도료이다. 물론 천연 옻칠이 귀해서 가격이 상당히 높았고,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물자였기에 일반인들이 보편적으로 사용할 수는 없었다. 중국에서는 약7000년전 유적으로 평가되는 하모도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칠완이 출토되었는데 지금까지 알려진 최초의 칠기이다. 그리고 옻칠공예기법 중에서도 가장 어렵고 뛰어난 기술이라고 하는 건칠기법도 전국시대(기원전 5세기~기원전 3세기)부터는 사용되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불상은 늦어도 남북조시대(4세기~6세기)부터는 제작되었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일본에는 7세기 무렵 하쿠호시대(白鳳時代)에 이 기법이 전해져서 주로 나라시대(奈良時代)와 헤이안시대(平安時代)에 제작된 건칠불상들이 상당수 남아 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 건칠불에 대한 자료는 지극히 빈약한 편이다. 다만 ‘삼국사기’에 칠전(漆典)을 두어 국가가 칠기를 관리했다는 기록이나 1078년에 송나라에서 흥왕사에 건칠불을 전했다는 기록 등에서 우리나라에서도 오래전부터 건칠불상을 제작했으리라 짐작은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미 나무, 흙, 돌, 청동 등 수많은 재료로 불상을 만들어 왔으면서 하필 비싸고 다루기도 어려운 옻칠로 불상을 만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당나라 고종 때 도세 스님이 편찬한 불교백과사전인 ‘법원주림(法苑珠林)’에는 동진의 조각가 대규가 건칠불로 행상(行像) 5구를 조성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그리고 양나라의 문제는 ‘백성을 위해 1장 8척의 건칠불상을 만들었다’는 기록도 있어서 중국에서는 4세기 경부터 건칠로 대형불상을 만든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행상이라는 신앙의식을 행할 때 대형건칠불상을 사용한 것이다. 

행상의식은 고대 인도에서 성립된 것인데 불상을 받들고 아름다운 행열을 지어 가는 것을 말한다. 이런 의례에 사용하는 불상은 크고 아름다워야 할 것은 물론이고 무겁지 않아야 한다. 완성된 건칠불의 재료는 옻칠로 부착된 몇 겹의 헝겊뿐이므로 상당히 가벼울 뿐만 아니라 칠의 특성 때문에 나무처럼 터지거나 뒤틀리지도 않아 재질상의 문제는 거의 없다. 즉 행상의식을 치르기에는 가장 적합한 불상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동진의 법현 스님이 4세기 초 인도를 방문해 기록한 책이 ‘불국기’이다. 이 책에는 행상의식이 진행되는 모습이 자세히 나온다. “네 바퀴로 된 큰 수레를 비단으로 된 깃발과 우산을 달아 장식했다. 불상을 그 안에 안치하고 두 보살이 모시게 했다. 이 수레는 성 밖 멀리까지 순행하고 성문으로 들어와 다시 시내를 순행했다. 왕은 손에 꽃과 향을 들고, 양쪽에 시종을 거느리고 맨발로 걸어 나와 맞이했다. 왕비와 시녀들은 여러 가지 꽃을 뿌려댔다. 이렇게 장엄한 행상 축제는 모든 곳에서 14일이나 걸렸다. 또한 행상 날에는 밤새도록 연등과 기악으로 공양했다”고 한다. 이런 모습은 매년 부처님오신날 즈음하여 조계사 일대에서 거행하고 있는 연등축제를 연상케한다. 이 축제에 참가하는 단체들도 연등을 가능하면 크고 화려하게 꾸미는데 재료는 당연히 가벼운 것을 사용한다. 

 2) 영국사 혜거국사비.
영국사 혜거국사비.

도봉산 영국사지에서는 정밀한 발굴조사를 통해 건칠불상을 포함해서 다수의 청동공양구, 혜거국사비편. 석각 천자문과 석경편 등 수많은 중요문화재가 출토되었고, 고려시대 명찰 영국사가 천 년 만에 빛을 보게 되었다. 출토 유물 중 의식공양구 10점은 보물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 도봉서원이 있었던 자리라고만 생각했던 곳에서 고려시대부터 있던 중요한 사찰 영국사가 존재했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 유적에 존재했던 전혀 다른 성격의 두 유적을 어떻게 정비할 것인가에 대해서 각계각층은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2023년 7월에는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영국사지를 방문한 바 있고, 도봉구청장과 만나 불교와 유교가 상생하는 방향으로 보존사업이 추진되길 바란다는 당부를 하시기도 했다. 이제 영국사와 도봉서원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드러내고 불교와 유교가 상생할 수 있는 미래지향적인 정비안을 작성하는 일은 우리 모두의 과제이다.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 수석연구관 noalin@daum.net

[1716호 / 2024년 2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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