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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파도가 늘 있듯이

기자명 하림 스님

마음 경직되면 생각도 굳어
순간 엄청난 감정 받더라도
이후엔 기억조차 나지 않아
마음 생멸 제대로 통찰해야

월요일 저녁 명상센터에 홀로 앉아있습니다. 잔잔한 음악이 운율을 따라 허공 속에 흘러 다니고 따뜻하고도 부드러운 느낌의 불빛이 꼭 필요한 곳만 비추고 있습니다. 

어둠은 밝음을 빛나게 합니다. 지금 마음은 고요하고 평화롭습니다. 마치 깊은 바닷속에 들어와 누워서 바다 위를 바라볼 때의 느낌이 이와 같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마음은 신통력이 있습니다. 그곳을 생각하고 그 장면을 떠올리면 마음은 그대로 느낌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바다에서 생명이 시작되었다고 하듯 우리의 마음도 여기에서 시작되었지 싶습니다. 곧 우리 마음의 고향은 지극히 고요하고 평화로우며 우리가 찾는 바로 그곳이라 믿습니다. 

그리고 수행과 정진은 그곳으로 가기 위한 노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노력은 한 사람의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 매 순간 끊임없이 지속해야 할 과제며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이정표로 삼아 걸어가야 할 길이라고 봅니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중요한 진리를 짚고 가야 합니다. 바다의 파도는 바람이 없이는 있을 수 없습니다. 바람으로 인한 파도가 늘 있듯 우리의 마음도 고요하고 평화로움에서 일어나는 분별심이 없을 수 없습니다. 파도의 변화는 결국 바다일 뿐인 것처럼 우리의 변화무쌍한 마음도 그대로 마음에서 일어나는 파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아침에 아주 사소한 부딪힘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느 분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비롯됐습니다. 이 대화를 계기로 경험한 마음을 떠올리니 지금은 피식 웃음이 납니다. 하지만 그때는 심각했습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일을 맡기는 것이 더 편해요.” 이 말을 듣는 순간 불편한 감정이 시작됩니다. ‘어차피 사람은 알아가는 것인데 모르는 사람에게는 함부로 해도 된다는 말인가?’ 하는 생각이 일어납니다. 그 순간 그 마음에 고정되고 얼어붙고 맙니다. 

마음이 경직되고 곧이어 생각도 경직됩니다. 목소리도 높아지고 힘이 들어갑니다. 그리곤 다음 순간 대화의 문을 닫아버립니다. 그 생각에 걸려서 부드러운 대화를 이어가지 못합니다. 그 생각이 틀렸고 고쳐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커져만 갑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그 순간 다시 이토록 마음이 눈덩이처럼 순식간에 커지는 것이 보입니다. 얼굴에 열도 나고 화가 났다는 것도 느껴집니다. 예전 같으면 더 크게 말하며 당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더 나의 주장을 늘어놓았을 겁니다. 또 그러느라 정작 본래 하려는 이야기에서는 저만큼 멀어져 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보이고 느껴지니 진행을 더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불이 타려고 하는 곳에 더 불쏘시개를 넣으려던 것을 멈추었습니다. 

한숨 돌리니 진정이 됩니다. 다행히 대화가 끊어지진 않았습니다. 진정하고 대화를 다시 진행합니다. 그분이 그렇게 말한 것에 대해서 한 번 더 들어봅니다. 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음을 인정하게 됩니다. 조금 전에는 전화도 했습니다. 훨씬 부드러운 분위기로 이야기가 진행되었습니다. 통화를 마무리할 때는 미소로 인사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이 느껴졌습니다.

분명 위기는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음을 보면서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이번 대화는 오히려 위기를 잘 넘기는 아주 훌륭한 연습이었고 수행이 되었습니다. 보람과 성과도 있었습니다. 저녁이 되어서는 그 당시의 생각이나 기분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경험하는 마음들은 엄청나게 큰 스트레스인 것 같고 그 생각을 꼭 고집해야 할 것 같지만 한나절도 지나지 않아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 일이 됩니다. 마치 번개를 소리로 들어 놀라고 눈으로 보고 놀라지만 금방 사라지는 것과도 같은 이치입니다. 그래서 ‘금강경’의 말씀을 더 절실히 받아들이게 됩니다. 

오늘도 모든 것은 마음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현상이라는 것을 또 한 번 확인하고 통찰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모든 인연에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고맙습니다.

하림 스님 부산 미타선원장 whyharim@hanmail.net

[1716호 / 2024년 2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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