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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진(아율·46) 위빠사나수행 - 상

기자명 법보

유복한 환경 속에 자랐지만
따뜻한 관심 없어 외로움 커
참선 중 특별한 현상 경험해
위빠사나·초기불교 공부 시작

불교를 종교로 만난 건 아니었다. 나에게 불교는 현재의 삶을 내려놓는 해방감과 좋은 사람이 되는 즐거움을 알려주는 가이드로서 다가왔다.

대학 3학년 때 심한 불면증이 찾아왔다. 당시에는 시험기간에 가방을 도난당하고 놀란 것이 시작이었는데 1년간 거의 잠을 못잤다. 마음을 돌볼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아다닐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당시 나는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심리치료에도 익숙한 편이었지만, 도움을 얻지 못했다. 6개월 정도 상담을 받고도 “선생님은 왜 저를 도와주려 하세요?”라는 질문을 해 상담사를 당황하게 했다. “모든 사람은 행복해질 권리가 있으니까요”라는 대답이 더 못미더웠던 기억이 있다. 내가 그런 권리를 가졌다 한들 이 사람은 왜, 무슨 의도로 도와주려 하는 걸까.

돌이켜보니 당시 너무도 외롭고 마음이 황량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매우 유복하고 많은 것을 누리며 살았는데, 물질주의로 가득찬 환경에서 살면서 정작 필요할 때 따뜻하고 진심어린 도움을 충분히 받아보지 못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서로 그런 마음을 쓴다는 생각조차 못했던 것 같다. 다만 마음이 따뜻해 보이는 사람, 사람 좋아 보이는 사람들에게 그냥 끌렸다. 

마음이 왜 고통스러운지는 몰랐지만 더 이상은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것들, 이를 테면 당시 주변에서 당연시 여기던 학위나 고액 연봉, 커리어 계발, 아이 낳아 키우기 등은 도저히 할 자신이 없었다. 삶은 의미가 없어 보였고 그저 자유롭고만 싶었다. 학창시절 내내 공부도 잘했고 많은 기대를 받았기에 나의 이런 상태는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미국에서 뉴에이지 책들을 번역했던 이모가 명상센터를 알려줬다. 당시 나는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라는 책을 낸 현각 스님의 법문을 들으러 다니면서 참선에 막 입문하던 참이었다. 불교는 몰랐지만 스님처럼 이런 사회적 제약들을 버리고 떠난 삶이 해방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마음을 좋게 가꾸려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수행공동체가 좋았다.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인간애를 느낄 때마다 눈물이 났다. 그 이후로는 한국과 미국의 명상·수행 공동체들에 기거하면서 살다시피 했다. 

하던 유학준비도 그만두고 취직준비도 하지 않았다. 다만 나는 내 마음이 자유로워지는 데 집중했다. 명상과 힐링, 대안교육을 위한 공동체에서 봉사하고 배우고 가르치며 살았다. 집에서는 쫓겨났지만 당당하고 열정이 가득했다. 뭐가 되든 마음을 치유하고 자유롭게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다 죽겠다고 마음먹었다. 

본격적으로 수행하기 시작한 건 2004년 호주로 건너간 후다. 당시 달라이라마와 심리학자들이 학교 아이들을 위한 명상프로그램 만드는 연구가 시작되었는데, 그 일이 하고 싶어 대학원에 진학했다. 하루는 에카르트 톨레의 책에서 고통체를 관하면 사라지는 부분을 읽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며 혼자 명상을 하다 온 몸이 주변과 경계 없이 금빛 입자로 가득차면서 한없이 광활해지고 황홀해지는 엄청난 경험을 했다. 나라는 것이 정말 보이는 대로 실체가 있는게 아니라 경계가 없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궁금해서 이것저것 찾다 일전에 제목만 보았던 ‘보면 사라진다’라는 위빠사나 책이 떠올랐다. 마침 미얀마 위빠사나 수행처에서 단기출가를 하고 돌아온 지금의 남편이 쉐우민 사야도의 인터뷰집을 건네줬다. 책에는 ‘느낌은 단지 느낌일 뿐 내가 아니다’ ‘수행은 휴일이 없이 계속해서 마음을 관찰하여 번뇌가 없게 하는 것이며, 좋지 않은 사람들과 있어도 좋은 마음을 갖도록 하는 것’이라는 간단한 가르침들이 지혜로운 수행법과 함께 있었다.

내가 간절히 원했던 가르침을 마침내 찾은 기분이었다. 당시 어떤 공동체나 이념도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없다는 회의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가르침을 받자 아무런 미련이 없어졌다. 이 공부만 하고 싶었다. 그 때부터 위빠사나 명상과 초기불교 공부를 찾아다녔다. 호주의 마하시 명상센터와 고엔카지의 위빠사나 10일 코스를 다니며 명상이 곧 일상이 됐다.

[1716호 / 2024년 2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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