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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마조계 ‘소[牛]’주제 선문답 및 십우도 

기자명 정운 스님

선문답 속 소는 번뇌 상징

송나라 때 등장한 십우도는
마조계 선사들 문답서 비롯
일상서 소 길들이는 것처럼
본래 자리 찾으라는 가르침

그동안 일상에서 전개된 선사상을 소개했다. 이번에는 선문답에 등장하는 소[牛]에 대한 언급인데, 일상성의 선과 관련된다. 소는 경전이나 어록 등에 자주 등장한다. 동양의 숲속 문화와 농경사회에서 소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숫타니파타’에 “자식이 있으면 자식 때문에 근심이 생기고, 소가 있으면 소 때문에 걱정할 일이 생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소는 중생들 삶에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  ‘불유교경’에는 “목동이 소[牛]가 남의 곡식을 함부로 짓밟지 않도록 단속하는 것처럼, 수행자는 5근[눈‧귀‧코‧혀‧몸]이 탐욕에 빠지지 않도록 단속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렇게 소는 번뇌를 상징하며, 소 길들이는 것을 마음 단도리하는 것으로 경전에 전하고 있다.

선에서도 소는 번뇌를 상징하고, 목동을 수행자에 비유해 깨달음으로 향해 나가는 여정을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심우도(尋牛圖) 혹은 목우도(牧牛圖)라고 한다. 우리나라 법당 벽화에는 남송 시대 곽암 선사의 십우도가 보편적이다. 그런데 이 십우도가 송나라 때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다. 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마조와 마조계 선사들이다. 

마조계 조사선은 시골[江西省‧湖南省] 농촌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선사들의 선문답에는 소가 등장하는데, 일상의 삶과 관련된다. 하루는 석공혜장이 공양간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마조가 다가와 물었다. 

“무엇을 하고 있느냐?”/ “소를 돌보고 있습니다.”/ “어떻게 돌보고 있느냐?”/ “한 번이라도 번뇌에 떨어지는 일이 있으면 단번에 코끝을 잡고 끌어당깁니다.”/ “너는 소 기르는 법을 제대로 알고 있구나.”

혜장이 소를 돌보는데, 미망에 떨어지면 코뚜레를 잡아당기는 것으로, 번뇌를 잘 다스리고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소는 일상에서 늘 가까이 있는 존재였던 점을 감안할 때, ‘소 기르는 법’이란 번뇌에 가득 찬 자신을 청정본원 자리로 되돌아가게 한다는 뜻임을 알 수 있다. 다음 마조의 제자 백장(749∼814)과 서원대안(793∼883)의 선문답을 보자. 

“부처를 알고자 하는데, 무엇이 부처입니까?”/ “소를 타고 있으면서 소를 찾는 것과 같구나.”/ “그런 줄 안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소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것과 같다.”/ “처음과 마지막에 어떻게 보림해야 합니까?”/ “소치는 사람이 막대기를 들고 소를 감시해서 남의 밭에 침범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소를 타고 있으면서 소를 찾는 것’이란 ‘본래 평상심이 곧 부처[卽心是佛]’인데, 굳이 밖에서 찾고 있느냐는 스승의 핀잔이다. ‘소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것과 같다’는 십우도에서 여섯 번째 그림인 기우귀가(騎牛歸家)이다. 기우귀가는 소와 사람이 하나가 되어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이다. 대혜종고(1089∼1163)는 ‘대혜서’ ‘이보문에 대한 답서’에서 “자기의 집에 돌아가 편안히 안주하는 곳[歸家穩坐之處]”이라고 하였다. 무자를 들고 참구하는 그곳이 바로 생사의 번뇌심이 끊어진 당처요, 깨달음의 근원지에 도착한 것을 자기의 본래 집으로 돌아가 편히 쉬는 장소로 묘사하고 있다.

이어서 마조의 제자인 남전보원(748∼834)의 선문답을 보자. 남전이 열반할 무렵, 한 수좌가 물었다. 

“화상께서 세상을 떠나면 어디로 갑니까?”/ “산 밑 마을, 검정 암소가 되련다.” 

또 남전의 ‘수고우욕(水牯牛浴)’ 선문답에도 소가 등장한다. 남전이 목욕탕 앞을 지나다가 욕두[목욕탕 담당 소임자]가 목욕물을 끓이고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목욕물을 데우고 있습니다.”/ “잊지 말고 수고우를 데려다가 목욕을 시켜라.”/ “네” 
밤이 되자 욕두가 방장실로 찾아왔다. 남전이 물었다. 

“무엇하러 왔는가?”/ “어서 수고우께서 욕실로 가시지요.”/ “소고삐를 갖고 왔는가?”

욕두는 말문이 막혀 버려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이와 같이 살펴본 대로 소와 관련된 마조계 선문답은 송나라 때 십우도가 탄생하게 만든 근원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정운 스님 대승불전연구소장 saribull@hanmail.net

[1717호 / 2024년 2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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