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옛 인연을 잊도록, 새 인연을 맺도록

기자명 성원 스님

2월에 백설이 만곤건하다.

멀리 바라보이는 북악산의 설경으로 굳이 눈을 돌리지 않아도 좋다. 빌딩 숲 사이에 놓인 조계사의 대웅전이 눈으로 가득 덮히고 나니 그 고고한 자태를 더 분명히 알 수 있는 것 같다. 세상이 온통 변하고 바뀌어도 천년토록 우리 문화의 숨결이 머무르며 고유의 가치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도심 속 대웅전의 모습은 눈 온 뒤 그 존재의 가치가 더욱 선명한 것 같다. 유구한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우리 불교는 존재 그 자체가 나라의 보물이요, 우리 문화의 원천이 아니겠는가?

우리들은 하나를 얻으면 또 다른 하나를 잃기 마련이다. 잃고 얻으면 남는 것이 없을 것도 같지만 새로 얻은 것의 가치가 진정 크다면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을 것이다. 깨달음의 가치는 그 어떤 것에도 비할 바가 아님을 불자들은 너무나 명백히 알고 있다. 세상의 그 어떠한 가치보다 명확한 깨달음의 가치는 숭고하다. 이러한 깨달음에 대한 확신이 믿음이요, 불자들의 모든 수행의 정점이다. 

그런데 깨달음은 우리들이 쌓아 올리는 지식 같은 것이 아니다. 깨달음은 지금 이 순간까지 우리가 지녔던 모든 가치관을 버려야만 획득 되어지는 것이다. 지식을 더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 완성되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가르치고 있다. 이러한 개념적 가르침을 이해하다 보면 요즘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우리가 매번 부르고 있는 ‘청법가’ 구절이다. 

법회 때마다 부르는 청법가의 가사 중에 ‘옛 인연을 이어서 새 인연을 맺도록’ 이 대목이다. 우리가 법문을 듣는 이유는 삶의 지혜를 일구어내기 위함도 있지만 보다 분명한 것은 성불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강의가 아니고 진리의 가르침, 법문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러한 법문에서 설파하는 것이 기존 자신의 지식에 더하여 새로운 인연을 맺도록 하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예전 일타 스님과 지관 스님께서 ‘옛 인연을 잊어서’로 수정해야 한다고 하신 법문이 생각이 났다. 옛 문헌들을 찾아보니 정말 초기에는 달랐다. 청법가를 작사한 이광수의 시는 ‘옛 인연을 잊도록 새 인연을 맺도록’이라고 되어있다. 청법가 곡이 붙여졌던 초기에도 ‘옛 인연을 잊도록’으로 되어있다. 이후 법요집을 중심으로 ‘옛 인연을 잊도록’으로 바뀌어 발간되기 시작하다가 점차적으로 ‘옛 인연을 이어서’로 바뀌었고, 무엇보다 청법가를 영상으로 보급하면서 ‘옛 인연을 이어서’로 대중에게 고착되었다.

일반적으로 보면 ‘옛 인연을 이어서 새 인연을 맺도록’으로 하는 것이 내용적으로 더 거부감 없이 받아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법문을 듣고자 하는 마음가짐은 이래서는 안 될 것이다. 결단코 지금까지 본인을 깨달음으로 이끌어 주지 못한 일체의 모든 지식과 모든 사상, 인연을 잊도록 이끌어 주는 가르침을 받아서 새로운 부처님의 가르침을 맺도록 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잊혀지기 싫어하는 존재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잊혀지지 않은 자신의 과거로 인해 또한 얼마나 많은 괴로움을 가지고 살아가는가! 잘 생각해보면 잊고 사는 행복이 더 클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현재까지의 자신의 사상과 인연은 성불로 이끌어 주지 못하였으므로 법문을 듣기 직전에 일체를 버리고 텅 빈 마음으로 법사의 법문에 귀를 기울이며 새로운 인연을 굳게 맺어야 할 것이다. 총선이 다가오고 있다. 이때쯤이면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과거가 잊혀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어떤 이들은 자신의 과거에서 힘을 보태고 싶어 안달이다. 우리들이 누구를 만날 때 아무런 선입감 없이 텅 빈 마음으로 대해보면 좋겠다. 우리가 상대의 과거를 잊고 선입감 없이 다가선다면 상대도 아이들처럼 해 맑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우리가 모든 과거사를 버릴 때 새로운 세상은 눈처럼 깨끗이 우리를 맞아 주고, 깨달음은 또한 눈처럼 우리의 모든 과거를 덮어버리고 거듭나게 해 줄 것이다.

성원 스님 sw0808@yahoo.com
 

[1718호 / 2024년 2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