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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마조계 선의 개[犬] 선문답 및 무자공안

기자명 정운 스님

‘무자’는 선의 대표적 화두

개에 불성 유무 묻는 화두에
유관은 ‘있다’ 조주는 ‘없다’
‘무자’ 화두의 궁극적 의미는
편견‧분별심 없애라는 가르침

대승불교 경전보다 초기불교 경전에서 코끼리‧사자‧원숭이‧말‧뱀 등 다양한 축생이 등장한다. 코끼리는 경전에 충직‧충실한 이미지다. ‘법구경’에 코끼리를 주제로 하는 ‘코끼리품’이 따로 있을 정도로 홀로 고고하게 정진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이런 것에 기인해 대승불교에서 실천을 상징하는 보현보살이 타고 있는 동물이 코끼리다. 부처님께서 코삼비 비구들의 분쟁을 피해 잠시 숲속에 홀로 머물 때, 부처님을 시봉하며 공양 올렸던 동물이 코끼리다.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코끼리가 홀로 숲속을 거닐듯이’라며, 고고하게 수행할 것을 말씀하고 있다.

또 원숭이는 경전이나 어록에서 잠시도 여일하지 못한 산란한 마음에 비유하고 있다. ‘유마경’에서는 “제도하기 어려운 사람은 마치 원숭이와 같다”고 하였고, 황벽희운은 어록에서 “마음에 장애가 있으므로 계속 (번뇌의) 굴림을 받는다. 마치 원숭이가 무언가를 놓았다가 다시 잡았다가 반복하듯이 쉴 기약이 없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마조계에서 축생을 주제로 하는 선문답에 개‧소‧지렁이‧고양이 등이 등장한다. 마조 제자인 남전의 남전참묘(南泉斬猫) 공안은 널리 알려져 있다. 얼마 전 ‘선사의 대기대용’에서 선기(禪機)에 네 가지를 언급했는데, 세 번째 사물‧불상‧동물‧주장자 등 주변의 물건들을 활용하는 이야기를 언급했었다.

이번에는 개[犬, dog]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펴보자. 개를 주인공으로 하는 구자무불성(狗子無佛性). 무자 화두는 고금을 막론하고 동아시아 선의 대표 화두이다. 또 근자 선객들의 대표 화두가 무자이다. 일반적으로 개 관련 선문답은 조주[마조의 손자뻘 제자]로 알고 있지만, 조주 이전 마조의 제자인 흥선유관(興善惟寬, 755∼817)이 최초로 언급했다. 유관은 마조의 문하 가운데 북쪽 지역에서 활동한 대표 제자이다.

어느 승려가 흥선에게 물었다./ “개에게 불성이 있습니까?”

유관은 ‘있다’고 답했다. 승려가 또 묻기를 “그럼 화상에게도 있습니까?”/ “나에게는 없다.”/ “일체중생에게 모두 불성이 있다고 했는데, 어찌하여 화상 혼자만 없다고 하십니까?”/ “나는 일체중생이 아니다.” 

그러면, 마조의 손자뻘 제자인 조주종심[趙州從諗, 778∼897, 남전의 제자]의 개 이야기를 보자. 어느 승려가 조주에게 물었다. “개에게 불성이 있습니까?” 선사가 ‘없다’고 답했다. “위로는 제불에서부터 아래로는 미물에 이르기까지 모두 불성이 있다고 했는데, 어찌하여 개에게 불성이 없습니까?”/ “그에게는 업식(業識)의 성품이 있기 때문이다.”

이후 남송 시대, 간화선의 제창자 대혜종고(大慧宗杲, 1089∼1163)에 의해 ‘조주 무자’가 최대 화두로 자리 잡았다. 대혜는 모든 의식을 집중시켜 도망가지 못하도록 하는데 마치 늙은 쥐가 소의 뿔 속에 들어가 꼼짝할 수 없듯이 하는데, 가장 적합한 화두가 ‘무자’라고 하였다. 후대 무문혜개(1183∼1260)의 ‘무문관’도 무자 화두를 중심으로 한다. 

이왕 나온 김에 또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일반적으로 무자화두를 말하면서 대혜를 내세우지만, 원래는 종고의 할아버지인 오조법연(五祖法演, 1024~1104)에 의해서다. 법연은 화두 가운데 조주 무자를 수행의 근본으로 삼았다. 

‘오조법연선사어록’에 “마조의 제자 흥선유관이 개의 불성에 대해 문답하면서 유관은 ‘있다’고 답하고, 조주는 ‘없다’라고 답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개에게는 업에 의한 분별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무자 화두가 ‘개에게 불성이 있느냐, 없느냐’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다 알 것이다. 유‧무 대답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불성의 유무에 집착하는 마음을 없애고, 그 ‘유무’라는 편견과 분별심에 떨어지지 않을 것을 말한다.

‘열반경’에 ‘일체중생이 모두 불성을 갖고 있다[一切衆生悉有佛性]’고 한데서 개와 관련해 동아시아 최대 화두 무자이다. 그런데 무자화두의 효시도 마조계 문하에서 발단되었음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정운 스님 대승불전연구소장 saribull@hanmail.net
 

[1718호 / 2024년 2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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